이인엽 목사

이인엽 목사

[ 역대하 12장 14-16절 ]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르호보암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행적은 선지자 스마야와 선견자 잇도의 족보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

르호보암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다윗 성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비야가 그를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역대하 12:14-16

저는 지금 1년 반이 넘게 성경속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한 강해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인물강해를 할 예정이고요. 설교는 보통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거기에 맞는 성경말씀을 적용해 전하는 주제 설교와 성경내용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하는 강해 설교로 나뉘어지지 않습니까. 그 강해설교 중에서도 지금 제가 꾸준히 해오고 있는 인물을 중심으로 성경말씀을 이해하는 설교방식이 인물강해 설교이지요.

우리가 성경을 보고 이해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을텐데 그 중에서도 제가 인물 강해를 하는 이유는 실제로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보자는 거죠. 그러니까 그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가에 대한 기준을 조금 더 선명하게 확인해보자 하는 소망이 있는 겁니다.

가끔 하나님께 대놓고 어긋나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맞는지 틀리는지도 몰라서 짓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몰라서 죄를 지면 괜찮습니까. 안 그렇잖아요. 그러니 잘 알아야지요. 그런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 흑백 논리 같아서 너는 흑, 너는 백, 이러면 참 쉽겠지만 그게 어디 그렇습니까. 그러기에 성경속에 나오는 다양한 인물들을 다양한 각도로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한지도 벌써 20년이 넘었는데요. 처음에 저는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아유.. 이 성경 한권을 가지고 어떻게 평생 설교를 하나.. 금시 바닥나지 않을까’ 하는 쓸데 없는 걱정을 했었습니다.

성경이요,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어요. 정말 신비롭게도 8살 먹은 어린아이도 성경을 알 수 있지만 성경은 평생을 배워도 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 놀라운 것이 성경말씀의 깊이이죠.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솔로몬을 이어 왕위에 오른 르호보암인데요. 이 사람은 인생에서 뭐가 맞고 뭐가 틀리는 지도 잘 모르고 많이 헤매면서 산 사람입니다. 아버지가 솔로몬인 사람이 나이 40이 넘어서 왕이 됬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모를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를 잘 몰라요.

사실 르호보암뿐만 아니라 그 뒤로 나오는 많은 왕들이 그랬습니다. 솔로몬 이후 남쪽으로는 유다와 북쪽으로는 이스라엘로, 한 민족이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지 않습니까. 남 유다는 르호보암부터 시작해 20명의 왕이 있었고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으로부터 시작해 19명의 왕이 있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 왕들이 대부분 하나님 앞에서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도 모르고 왔다 갔다 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신정국가의 왕들이 이 모양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오늘을 사는 크리스찬들도 뭐가 맞고 뭐가 틀린지 모르고 헤맬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정말로 말씀앞에 겸손함을 가지고 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수박 겉핧기만 하다가 끝나는 겁니다. 남들은 다 달다고 하는데, ‘어.. 별로 안 달던데 나는…’ 이런 소리나 하다 끝나는 겁니다. 르호보암이 그랬어요.

왕이 될 당시 르호보암은 하나님께 붙들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몰랐습니다. 할아버지는 어땠죠.

…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

사무엘상 16:13

아버지는 어땠습니까.

솔로몬이 여호와을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열왕기상 3:3

르호보암은 어땠습니까?
모르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이 어디있는지. 희미하지요. 아버지인 솔로몬이 죽자 르호보암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세겜으로 갔습니다.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

역대하 10:1

자, 거기 세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무리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불렀더라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이 와서 르호보암에게 말하여 이르되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

역대하 10:3-4

이 말을 들은 르호보암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음, 3일만 기다려 줘 봐요. 생각좀 해보고 결정합시다.’ 그러고는 자신의 아버지 솔로몬을 섬겼던 원로들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르호보암의 질문에 원로들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 만일 이 백성을 후대하여 기쁘게 하고 선한 말을 하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 하나

역대하 10:7

원로들이 바른 길을 알려준 거죠. 그러나 르호보암은 젊은 신하들의 말을 따랐습니다. 역대하 10:10-11의 말씀입니다.

함께 자라난 젊은 신하들이 왕께 말하여 이르되 이 백성들이 왕께 아뢰기를 왕의 아버지께서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우리를 위하여 가볍게 하라 하였은즉 왕은 대답하시기를 내 새끼 손가락이 내 아버지의 허리보다 굵으니
내 아버지가 너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게 하였으나 이제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가죽 채찍으로 너희를 치셨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하리라 하소서 하더라

역대하 10:10-11

르호보암이 그대로 전하지요.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열 지파가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나라를 쪼개지 않습니까. 그러고 나서 르호보암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왕의 역꾼인 하도람을 돌로 쳐죽이는 것을 보고 놀라서 예루살렘으로 도망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사건의 개요를 설명한듯한 이 구절들은 생각보다 많은 정보들을 품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솔로몬의 죄로 인하여 이스라엘을 둘로 가르시기로 작정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둘로 나누어지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는 거죠. 그것은 솔로몬의 죄에 대한 값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방금 나누신 성경의 구절들은 이스라엘의 분열이 단지 솔로몬의 죄 뿐만 아니라 르호보암의 죄가 얹쳐져 있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무 죄 없는 르호보암이 너무너무 억울하게 아버지 솔로몬의 죄만으로 그저 망하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그저 나라가 둘로 쪼개지지는 않았다는 거죠.

아니 그렇다면, 르호보암이 무슨 죄를 졌습니까? 노인들의 권고 대신 젊은이들의 말을 들은게 무슨 잘못입니까. 노인을 공경하지 않은 죄를 진 걸까요. 노인은 항상 올바른 선택을 할 수있는 능력이 있는 겁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노인의 말을 들으라는 권고를 하고 있는 겁니까.

그럴리가 없습니다.

솔로몬과 함께 살아왔던 원로들은 하나님을 인식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반면에 르호보암과 같이 성장한 젊은이들은 솔로몬의 후기 그러니까 하나님을 망각하고 우상에 빠져 성장한 자들을 상징합니다. 르호보암의 선택은 노인들의 말이냐, 젊은이들의 말이냐의 선택이 아닙니다. 그의 선택은 하나님의 권고인가 사람의 권고인가에 대한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르호보암은 사람의 권고를 따랐어요. 그리고 그것은 르호보암의 죄가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은 하나님의 계획위에 자신의 죄를 더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지는데 사용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사용되었다고 해서 르호보암에게는 죄가 없는걸까요…?

그럴 수가 없죠.
르호보암은 자신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계획에 사용되어졌는데,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보존하는 역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를 잘 압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달리심은 이미 계획되어 있었던 일이죠. 그럼 가룟 유다는 억울하게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악인이 되는 봉변을 당한겁니까?

아니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하나님의 계획안에 유다는 자신의 죄를 더하여 그 일을 이루는것에 일조를 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저 죄인이었고 이 경우에도 하나님의 공의로움은 훼손되어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앞에 아브라함이 했던 간구를 기억하십니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세기 18:25, 개역한글

르호보암이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더라면, 르호보암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영이 가득했더라면, 르호보암이 솔로몬처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윗의 법도를 행했더라면, 그 위기를 넘길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르호보암은 어리석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획대로 분열되었습니다.

둘쨰로, 이스라엘의 분열과정에서 이스라엘 열 지파와 여로보암의 행동은 많은 의문점을 제기합니다.

아니, 왕을 세우려면 자신들의 하나님이 선택한 다윗왕조가 성전을 세운 예루살렘으로 올라와야지, 왜 거꾸로 르호보암을 부릅니까? 의도가 매우 의심스럽죠!

더군다나, 하나님이 세우신 다윗왕조를 돕는데 어디감히 조건을 답니까. ‘이렇게 이렇게 해주면 당신을 섬기겠나이다…’ 이건 말이 안되는 이야기죠. 하나님의 권위보다 자신들의 입맛을 찾겠다는것 아닙니까.

또 하나는, 솔로몬이 자신들에게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매게 했다는데, 사실 솔로몬의 왕궁과 성전은 주변 점령국들의 사람을 사용하고 유대인들은 주로 감독을 하지 않았습니까. 뭐가 그렇게 힘들었습니까. 물론 솔로몬 후기 지방 성읍을 지을 때 힘이 들었을수는 있지만요.

지금 그걸 가지고 하나님이 세우신 왕조를 따를지 말지를 거래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들로 보기 어려운 행동들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는거죠.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의 분열에 이스라엘 열 지파와 여로보암의 죄가 더하여 졌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나라를 분열시킨 북이스라엘은 순수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들 북 이스라엘과 여로보암이 저지른 일들을 성경은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2장에 나오는 내용들은 대략 이렇습니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열 지파의 왕이 되었어요. 왕이 되었으니까 세겜에 왕궁도 짓고 왕이라고 살기는 했는데, 이게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질 않는 거예요. ‘불안해, 너무 불안해..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데 사람들이 절기마다 성전을 찾아 들락거리다가 유다 왕 르호보암을 좋아하면 어떡하지? 다시 통일하자고 하면 어떡하지? 다윗의 자손에게 나라를 맡겨야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날 죽이면 어떡하지?’ 걱정이 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은 아주 원천봉쇄를 하기로 작정합니다. 먼저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벧엘과 단에 두었죠. ‘자, 봐라 이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니까 예루살렘 갈 생각 하지말고 그냥 여기서 제사지내면 된다.. 너희들의 하나님이 여기에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말을 하면 누가 제일 먼저 반발할까요? 하나님을 잘 모르는 보통사람들은 그런가.. 이래도 되나보다.. 그러겠지만 하나님을 잘 아는 레위지파들은 제일 먼저 반발 하겠죠.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저렇게 하냐.. 그러고 맞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레위인 대신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았버렸어요. 하나님을 잘 모르는 엉터리들을 이용하는 겁니다. 레위인들은 순식간에 제사장의 직분에서 쫓겨났습니다.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도 모자라서 여로보암은 절기 날짜도 다 바꿔버렸어요. 자기 마음대로 정한 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 분향하였습니다. 마치 기독교의 모양만 갖춘 이단처럼 자기 이익에 맞게 엉터리를 셋업한 겁니다.

이런 말도 안되는 여로보암의 행동은 남 유다 왕국의 르호보암이 하나님 앞에 올바로 행하며 나라를 바르게 세우는 기회가 되어집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 마음을 굳게 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레위 사람들을 따라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고자 한지라
그러므로 삼 년 동안 유다 나라를 도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을 강성하게 하였으니 이는 무리가 삼 년 동안을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하였음이더라

역대하 11:16-17

르호보암이 신실해서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한게 아니라, 르호보암이 하나님의 영에 충만해서 다윗과 솔로몬의 길로 행한게 아니라, 르호보암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께 충성한게 아니라, 여로보암을 피해 나온 레위인과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 덕분에 하나님을 섬기며 그 나라가 강건하여 졌다는 겁니다.

내 믿음이 좋아서 교회에 나가고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 앞에 나가며 주일성수를 한게 아니라, 믿음 좋은 친구덕분에, 믿음 좋은 아내덕분에, 그저 따라가다 보니까 좋은 성도처럼 보여지는 사람들. 믿음 좋은 사람들 덕분에 함께 복을 누리는, 거저 누리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가끔 보면 정말 아닌데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는 사람들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 물어 보잖아요. ‘하나님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어떻게 저럴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그 아내가 기도한다. 그 아버지가 기도한다. 그 친구가 그를 위하여 기도한다.

르호보암이 그 복을 누렸어요. 그러나 그 시간, 그 복을 누리는 삼년이라는 시간은 르호보암이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습니다. 금시 지나갈 세상의 복이 중요한게 아니었습니다.

르호보암은 그 기회를 잘 사용하였습니까? 레위인의 하나님. 오직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고향 땅에서 떠난 신실한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을 르호보암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잘 섬기지 못했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곧 우상을 섬겼고 애굽에게 짓밟히는 징벌을 받았습니다. 남들 덕분에 잠시 하나님께 돌아왔던 르호보암. 그러나 나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끝까지 헤맸던 르호보암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무엇이었습니까.

르호보암이 악을 행하였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구하는 마음을 굳게 하지 아니함이었더라

역대하 12:14

르호보암은 하나님 앞에서 악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은 신실한 친구의 손을 굳게잡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신실한 목사님의 손을 잡고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한없이 사랑하는 아내의 손도, 남편의 손도 나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나 스스로 주님의 손을 굳게 잡을 때, 십자가에 못 박혀 피흘리시는 그 손을 굳게 잡을 때, 오직 그 분만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심을 르호보암의 인생을 바라보시며 다시 한번 확인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