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목사

이용표 목사

[ 요한복음 8장 31-36절 ]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요 8:31-36

소설 “아큐정전”의 정신승리

‘정신승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요즘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또는 뉴스에서 종종 듣는 말이지요.
※ 사전적 의미 : 경기나 경합에서 겨루어 패배하였으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은 지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을 이르는 말.(출처 : 다음 국어사전)


이 말은 본래 중국 근현대문학을 대표하는 루쉰의 소설 ‘아큐정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주인공 아큐는 중국 농촌의 일용직 막노동자입니다. 그는 고향도 모르고 글자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면서도 자신을 과시하길 좋아했고, 강자 앞에서는 약하고 약자 앞에서는 강하게 구는 비굴한 사람이었으며, 도박을 좋아했고, 도둑질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존심이 강해서 지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과 시비가 붙으면 대들다가 얻어 맞고 조롱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는 자신의 모습과 처지를 돌아보고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당한 패배와 굴욕감을 자신만의 논리로 정당화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들에게 진 것이 아니라 승리를 한 것으로 자기합리화를 합니다. 그런데 그 정당화라는 것이 남들이 볼 때는 근거도 없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어처구니 없는 자기합리화였습니다.


이를 테면, 자신을 과시하는 성격 탓에 사람들 앞에서 그 마을의 유력한 지주집안의 친척이라고 거짓말로 떠벌리고 다니다가 지주에게 매를 맞고 돌아와서는 자신이 항렬자로 아버지격이니까 되먹지 못한 아들에게 맞은셈 치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다든가, 도박을 하다가 사람들한테 흠씬 두둘겨 맞고는 집에 와서 억울해하다가 갑자기 자기 스스로 자기 뺨을 때리더니, 자기도 때렸으니 맞은 것이 아니다라고 엉뚱하게 합리화를 하는 식입니다.


아큐의 그런 자기합리화를 저자 루신은 정신승리라고 표현합니다. 아큐는 정신승리라는 삶의 방식을 고치지 않고 살다가 결국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합니다. 루신은 중국이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을 받았던 근대화 시기에,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대국이라는 공허한 자존심으로 변화를 거부했던 중국사람들의 무지함과 무기력함을 깨우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
이 아큐정전은 중국의 고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들은 오늘날도 존재하는 자신 또는 이웃의 내면에 잠재된 아큐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그와 같은 정신승리가 유대인들에게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시간에는 유대인들이 정신승리를 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고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오늘 본문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8장 1절부터 11절까지는 간음하다 붙잡혀 온 여자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12절에서 20절까지는 자신을 세상을 빛으로 표현하시면서 이를 트집잡는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의 증언이 참됨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21절부터 30절까지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시고,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밝히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과 동격의 의미로 자신을 표현하기도 하지요. 24절에서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그리고 28절에서 “내가 그인 줄을 알고”라는 말씀은,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 대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출3:14).”라고 표현하신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 30절을 보면 이 가르침을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오늘 본문 말씀의 3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라고 나옵니다. 이 표현을 보면,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갖기 시작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이어서 가르침을 주시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31절과 32절에서 예수님은 믿음을 갖기 시작한 그들에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그리고 만일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며 그러면 그들이 비로소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믿음을 갖기 시작했지만,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거부합니다. 거부할 뿐 아니라, 오히려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예수님께 반문합니다.

[본문 33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요 8:33

자신들은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기에 자유롭게 될 필요도 없다고 하는 유대인들의 이 말은 옳은 것일까요? 유대인들은 정말 남의 종이 된 적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의 정신승리

일찍이 그들은 애굽에서 종 노릇을 하였었고, 가나안에 나라를 세운 뒤에도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해서 그들의 종 노릇을 하며 살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도 그들은 로마의 식민 지배 하에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왜 자신들이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유대인들의 정신승리를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유대인들이 나라를 잃었을 때, 그들은 성전이 이방인들에게 짖밟히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은 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아큐가 사람들에게 얻어 맞고 무시당하면서 느꼈을 모욕감과 패배감, 그리고 무기력감에 비할수 없는, 자기분열적인 정신적 충격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이 붙잡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이었습니다. 비록 성전은 무너졌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사실을 부여잡고, 정신승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때문에 그들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은, 이방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패배와 굴욕을 느낄 수밖에 없는 현실을 부정하고 자신들은 남밑에서 종노릇이나 하는 민족이 아니라는 자기합리화를 이끌어 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들의 정신승리는 매번 선지자들을 통해 그들의 죄와 불순종을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거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처지를 똑바로 직시하고 생각와 행동을 바꿔야 함에도, 정신승리법으로 어리석고 무능한 삶의 방식을 고치지 않은 아큐와 같이 유대인들도 죄와 불순종의 삶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속으로는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자부심으로 정신승리하면서, 현실은 여전히 이방민족의 종으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참된 자유에 대해 가르치시면서, 믿음을 갖기 시작했으니, 기꺼이 내 제자가 되기를 결단하고 참된 자유를 누리라는 말씀을 본문에서 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그들 나름의 정신승리를 내려놓지 못하고 끝끝내 이 말씀을 외면합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정반대 결과를 낳습니다.

[요한복음 8:43-47]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46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도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요 8:43-47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깨닫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예수님은 아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신승리로 부여잡고 있었던 하나님과의 연결고리가 허상임을 가르쳐주십니다. 47절에서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는 말씀이 그 뜻입니다.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주목해 봐야할 부분이 한 군데 있습니다. 31절입니다.

[본문 31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요 8:31

오늘 읽은 본문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모르는, 예수님을 전혀 믿지 않는 이방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라,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예수님은 지금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있는데, 그 가르침을 듣고 믿음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오늘 말씀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이 말씀이 바로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듣고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유대인들이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알고 참된 자유를 누리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냥 단지 이르지 못한 것일 뿐아니라,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탄의 자식들로 결론내려지고 있습니다. 사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과 가르침은 몇몇 이방인들을 빼고는 전부다 하나님을 알고 또한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이 가르침을 듣고 믿음을 갖기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그들 중 일부는 진리를 알지 못하였고, 참 자유에 이르지도 못하였으며, 결론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들도 아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을 대적하여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까닭은 자신들의 생각과 삶을 고집하는 그들의 정신승리와 자신들이 언제나 옳다는 교만과 아집을 내려놓지 못한 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소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진리를 알고 참된 자유를 누리기를 권하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그저 적당히 종교생활을 하면서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니 구원을 받았다고 정신승리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열매 없는 죽은 믿음을 갖고 있으면서, 꼬박꼬박 주일예배에 참석하고, 적당히 헌금하고 적당히 봉사하면서, 정작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주시는 메시지는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리는 우리 몸의 골격과 같은 것입니다. 만일 우리 몸에 뼈대가 없으면 우리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할 것이며, 음식도 입으로 가져가지 못할 것입니다.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자유는 우리 몸에 골격이 잘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기꺼이 예수님이 제자가 되기를 결단하고 진리를 알아 참 자유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