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엽 목사
[ 누가복음 17장 20-21절 ]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7:20-21
마태 복음 9장에 보면 그 유명한 예수님이 중풍병자 고치시는 장면이 나온다
친구들이 침상에 메고 와야만 할 정도로 몸이 불편한 사람이다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죄사함을 선포하신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화를 낸다
감히 인간으로서 죄사함을 선포하다니
그건 하나님만 할 수 있는 일인데…
참람하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교만하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그들의 속을 뚫어 보시고 이렇게 되묻는다
죄 사함을 받으라 vs 일어나 걸어라
어느 말이 더 쉽겠는가?
.. 당연히 죄 사함 받아라 하는 말이 쉽다
당장 확인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말이다.
반면에 ‘일어나 걸어라’는 말은 쉽게 하기 어렵다.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는 현장에서 섣불리
침상에 메여온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라 말했다가
행여 못일어나면 낭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얼마든지 ‘일어나 걸으라’ 하실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멋지게 중풍병자를 일으켜 세우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어나 걸으라 하지 않으셨다
대신에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죄사함 받으라’ 는 뻔한 말씀을 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관심은 오로지 그사람의 죄사함에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는데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지금
죄사함 받으라 하신 말씀에 트집을 잡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환자의 고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신기한 기적 행함과 예수님 트집잡는 것이다
그들의 악함을 꿰뚫어 보시고
이번에는 중풍병자에게
인간이 도무지 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신다.
‘얼어나 네 침상을 들고 걸어가라’ 하신 것이다
그리자 친구들에 의해 침상에 메여서 지붕을 뚫고 들어온 중풍병자는
주섬주섬 일어나 침상을 메고 걸어 나간다
사람들은 경악을 하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은 애초에 중풍병자가 일어나 걷는 것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다만 그의 영혼에 관심이 있으셨다.
일어나 걷는 것과 구원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일어나 걸을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목말라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복또한 ‘일어나 걷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위의 수많은 사람이 일어나 걸을 수 있지만 그들 중에 행복해 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라’ 하고
기적을 베푸신 이유는
선포하신 죄사함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즉 예수님이 기적을 베푸신 이유는 우리의 믿음을 위해서 엿습니다.
우리의 ‘믿음 없음’을 위한 예수님의 배려였던 것이다
‘죄사함’이란 마음속의 자유함이요 평온함을 가져다 주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이 자유함과 평온함이야 말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전해 주고 싶은 진정한 행복이요 구원이다.
우리가 목숨걸고 원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중 그 아무도 이것을 진정으로 구하는 사람이 없다
우리는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드라마틱 한 것을 원한다.
불구자가 일어나고 장님이 눈을 뜨는 것이 , 부도난 사업이 일어나고…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주 가족 예배를 하면서 식구들에게 물어보았다.
월 천만원 평생 보장과 영혼 구원중에서 무엇을 택하겠냐고
모두들 ‘월 천만원 평생 보장’ 을 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목사 남편, 목사 아빠에게 단련이 되어서였는지
예상외로 쉽게 넘어 오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유혹을 하기 시작했다
“월 천만원이 너무 작어? 그러면 월 1억원씩 평생 동안 현금으로..
물가 상승률에 맞춰서 죽을 때까지 보장 받는 다면 기분이 어떨까?”
“아무 조건도 없어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다 할 수있어
그렇다고 영혼 구원을 포기 하라는 것도 아니야
네가 원한다면 그 돈으로 헌금도 하고 교회도 얼마든지 나갈 수 있어..”
이쯤 하자 큰 아들이 조금 흔들렸다.
평소 설교 때마다 뻔한 결론이 아닌 반전이 있었던 경험을 자주 했던 터라
“음.. 정답은 분명 영혼 구원인데 아빠의 답은 월 천만원 일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일도 열심히 하면서 신앙도 챙겨라
뭐 이런 결론이 날 것 같다면서
월 천만원을 선택했다.
스마트한 큰 아들은 아빠 설교의 반전을 예상햇지만
나는 또다시 그 예상의 반전을 했다
아빠 선택은 영혼 구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돈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돈 다발 자체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 돈으로 누릴 수 있는 무엇인가를 원해서 돈을 선택하는 것인데
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가치는 만족함 일테고
만족함은 다른 말로 평온함, 행복감, 즉 영혼의 구원상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선택할 수 있다면
단번에 가장 확실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이지
한 단계 거쳐서 마음에 평안을 줄지 안줄지 확신이 안서는
돈을 선택하는 것은 어리석지 않겠냐고..
아빠가 비록 미끼로 돈을 이용해서 헌금도 내고 교회도 나갈 수 있다고 했지만
헌금과 교회 생활 자체는 사실 영혼의 평안함,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오히려 진정한 신앙 생활을 원한다면 많은 돈은
커다란 장애물이요 매순간 도전거리가 될 뿐이라며
반전을 마무리 지었다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는 늘
일관되고 뚜렷하다
영혼의 구원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혼은 곧 생명이다.
이때의 생명은 육체적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육체적 생명은 에고를 말하는 것이다
이 에고의 새명은 언제가는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영혼의 생명은 영원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중에 영원한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
예수님이 영원하시고
하나님 자체가 (알파와 오메가) 영원하신 분이다.
천국 / 하나님 나라가 영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천국을 찾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요 바로 너희 마음 가운데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자꾸만 천국을 내가 도달해야 할 곳, 성취해야 하는 것, 즐겁고 신나는 곳, 중풍병자가 일어나는 곳, 눈먼자가 눈뜨는 곳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천국을 열심히 찾아 헤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그럿을 열심히 찾아 헤매이는
너의 마음 속에 이미 와 있다고.
다만 네가 알아 보지 못할 뿐이다.
왜냐하면 너는 장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