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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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5장 1-12절 ]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1-12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설교의 처음 부분입니다. 여기에는 여덟 가지의 복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팔복’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복은 명확합니다. 바로 천국입니다. 8 가지의 복을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3절에서 첫 번째 복으로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시고, 10절에서 마지막 여덟 번째 복을 말씀하실 때도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십니다. 천국으로 시작해서 천국으로 끝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머지 2 번째에서 7 번째까지의 복에 대해서도 결론적으로 그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 심령이 가난해야 하고, 애통해야 하며, 온유해야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를 수 있어야 하며, 긍휼이 여겨야 하고, 마음이 청결해야 하며, 화평하게 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에 대한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른다면, 우리는 인생 최대의 복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 천국이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천국에 별로 관심이 없다면?

  사실 우리는 인생 최대의 복이 천국을 소유하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천국에 대해 정말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인생 최대의 복이 천국이라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머리로 이해하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마음으로 그렇게 느끼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를 테면, 천국에 가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실상 천국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그런 마음으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본다면,  예수님께서 팔복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복을 받기 위한 여덟 가지 조건을 알려주셔도, 별로 감흥이 없을 것입니다. 천국에 관심이 없으니, 천국에 가는 조건에도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므로 본문 말씀을 나누기에 앞서, 먼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는 천국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가?”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크리스천들에게 당연한 질문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성경 말씀을 보면, 예수님도 천국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에 무관심한 사람들

1) [마태복음 22:1-6]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비유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르되 청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하였더니

그들이 돌아 보지도 않고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가고

그 남은 자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이니

마태복음 22:1-6

  이 말씀에서 예수님은, 천국을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베푼 혼인 잔치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계십니다. 임금이 사람들을 청하여 혼인잔치에 오라고 했다는 것은, 천국으로 초대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청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돌아보지도 않고 자기 밭에 가거나 사업하러 간 사람도 있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청함을 전달하는 종들을 잡아서 모욕하고 죽이기까지 합니다. 이들은 천국에 관심이 없으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천국을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기까지 합니다.

2) 눅 14장을 보면, 또 다른 느낌으로 이 내용을 접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4:16-20]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누가복음 14:16-20

  이 말씀을 보면, 천국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다 일치하게 사양하면서 각각 이유를 대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밭을 사서 밭에 나가 보아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소 다섯 겨리를 사서 소를 시험하러 가봐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마태복음 22장과 누가복음 14장 말씀을 보니, 천국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신자들에만 해당하는 것일까요? 우리들은 어떨까요?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밭에 나가는 일이나, 소를 시험하는 일을 천국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결혼을 했으니 천국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면, 그렇게 천국보다는 이 땅의 삶에 대한 관심이 더 많다면, 위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천국에 대한 우리들의 진심은 무엇일까?

 그래서 잠시 천국에 대한 우리들의 마음 속을 살짝 들여다보았으면 합니다. 이 점을 점검해 보지 않으면, 예수님의 팔복이 정말 복인지 분간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의 천국에 대한 관심을 짚어보기 위하여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1) 질문1 / 나는 천국에 가고 싶은가? 아마도 이 질문에는 누구나 주저없이 당연히 가고 싶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질문에는 답이 좀 다를 수 있다.

2) 질문2 / 그렇다면 나는 천국에 언제 가고 싶은가? 지금? 아니면 5년 뒤, 또는 10년이나 20년 뒤에?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답을 하셨나요? 혹시 천국에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나,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요? 제 아들은 결혼은 해보고 가야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천국 가기 전에 좀 더 누려도 보고, 가져도 보고, 해 보고 싶은 것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사람들, 즉 여러 가지 핑계로 천국을 거부한 사람들의 모습과 좀 비슷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그런 생각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천국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우리 마음속에 천국은 추상적으로만 존재하거나, 그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보증보험 정도로 여겨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땅에 좀 더 누려보고 싶은 것들, 가져도 보고, 해 보고 싶기도 한 것들에 비해, 천국은 우선순위에서 계속 밀려나게 됩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천국은 정말 행복한 곳일까요? 천국은 예배와 찬양만 하는 곳이라는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별로 가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 사실 가장 기대가 되는 순서는 예배가 이니라, 밥 먹는 점심시간일 수 있습니다. 천국은 정말 어떤 곳일까요?

3) 질문 3 각자 천국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경건함, 찬양과 예배, 온 갖 보석, 대궐 같은 집, 평화, 건강, 기쁨 등등. 아마 각자 떠오른 단어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천국에 대한 이미지, 느낌일 것입니다. 이런 단어는 어떨까요? 재미, 설레임, 가슴을 뀌게 하는 흥분, 맛난 것, 성취감 등등 이런 것이 천국에도 있을까요? 사실 이런 단어들은 우리를 실질적으로 행복을 느끼게 되는 단어입니다. 생각을 해보면, 천국은 근심걱정이 없고, 질병도 배고픔도, 슬픔도 눈물도 없는 곳이긴 한 데, 재미는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걱정입니다. 만일 천국이 그런 곳이고, 그런 삶을 영원히 살아야 한다면 얼마나 지루할까요? 천국의 삶에 싫증이 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제가 어려서부터 듣고 배웠던 천국은 풍요하고 평화롭긴 하지만, 재미있는 곳 같지는 않았습니다. 과연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 천국은 재미있는 곳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천국이 재미있는 곳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사야 65:17,18]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운 성으로 창조하며 그 백성을 기쁨으로 삼고

이사야 65:17-18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회복과 미래를 말씀하시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고 합니다. 먼 미래로 보면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이전 것들이 잊혀질 정도로 새롭게 창조되는 곳입니다. 단지 잊혀진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것, 그리고 생각하며 상상하고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새롭고 놀라운 것들이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천국은 예배와 찬양만 있는 곳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18절의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씀의 원어에는 유쾌함, 기뻐 날뜀, 환희 등의 뜻도 있습니다. 천국은 놀이동산에서 느끼는 흥분과 쾌감,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길의 설레임과 같은 재미와 유쾌함이 있고, 흥이 넘쳐나는 곳입니다. 좋아하는 물건을 사서 돈을 지불할 때의 기쁨, 맛 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의 즐거움, 좋은 음악을 듣는 순간의 감성, 좋아하는 스포츠를 할 때의 쾌감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금 천국에 올래?”라고 하신다면, “아니요 잠깐만요”,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될까요?”, “요것 좀 해보구요.”라고 말하고 싶게 만드는 것들이 사실은 천국에 다 있습니다! 타락한 죄성에서 비롯된 즐거움이 아니라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모든 감정들을 느끼며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 반복되는 천국의 삶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그런데 18절에 눈여겨 볼 단어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원히”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누릴 기쁨과 즐거움이 영원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아무리 기쁘고 즐겁더라도, 그것이 매일 반복이 된다면, 그래서 어는 순간부터는 질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혹시 이런 생각을 해보신 적은 없나요? 저는 천국을 생각할 때 어느 날 문득 이점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천국의 행복한 삶에 싫증을 느끼면 어떻게 하지?” 여러분의 경우는 어떤가요? 혹시 이런 생각에 답을 주실 분이 있을까요? 저는 나름 답을 얻었습니다. 제가 얻은 답을 짧게 설명드리겠습니다. “모모”라는 동화 같이 소설책이 있습니다. 독일의 아동문학가 미하엘 엔데가 1973년 발표한 책으로, 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모모라는 소녀가 있는데, 어느날 회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서 모모의 친구들에게서 돈을 주고 시간을 사갔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그 친구들을 갑자기 바쁘게 살기 시작했고, 모모는 친구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되찾기 위해 모모가 시간 나라로 여행을 갑니다. 마침내 도착한 시간 나라에서 모모는 시간 꽃을 보게 되는데, 소설에서 묘사하는 시간 꽃의 모습에서 저는 천국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책에서 시간 꽃에 대해 묘사하기를, 시간 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향기로운 모습으로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데 다시 필 때마다 그 전에 피었던 꽃보다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피어납니다.  그것이 영원히 무한반복 됩니다. 만일, 천국이 그렇다면, 지루할 수 없지 않을까요? 천국에서 누릴 기쁨과 즐거움은 매일 매일이 최상급 기쁨과 즐거움의 무한반복입니다. 우리가 가게 될 천국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이 땅의 삶에 아무런 미련을 둘 필요가 없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본질이요 가치입니다. 그래서 이 가치를 바로 알고 느끼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언제 천국에 올래?”라고 물으신다면, 아마도 “지금이요!” 라고 답하지 않을까요? 물론, 꼭 천국에 데리고 갈 사람이 있어서, 또는 꼭 화해하고 용서를 구할 사람이 있어서 하나님께 시간을 좀 더 달라고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밭에 가야하고, 소를 시험하러 가야하고, 장가갔으니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이 땅에서 누려볼 것이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천국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의 반응

  예수님은 천국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의 행동이 어떤지를 우리에게 비유로 보여주십니다.

[마태복음 13:44]말씀입니다. 다같이 읽어볼까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 13:44

  이 말씀은 예수님의 천국 비유 말씀입니다. 우연히 남의 밭에 갔다가 그 밭에 엄청난 가격의 보화가 묻혀 있는 것을 자기만 발견하게 되는 그 순간, 그 사람이 느꼈을 신체적인 변화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일단은 심장 박동이 엄청 빨라지겠지요. 설렘과 흥분이 교차해서 손발이 다 떨리겠지요? 그리고 그 순간부터 온 정신이 그 밭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 밭에 있는 보화만 생각하면, 밤에 잠도 오지 않겠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그 밭을 가질 수 있을까에 골몰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처분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밭의 주인을 만나고, 거부할 수 없는 금액, 그러니까 평당 100만원이라면 평당 천만원, 일억이라도 자신이 지불할 수 있는 최대의 금액을 제시했을 테지요. 그리고 그 밭의 주인이 매매계약서에 도장을 찍기까지 마음이 조마조마하기도 했겠지요? 왜요? 그 밭의 보화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밭의 가치를 제대로 알게 된 순간부터는, 그의 인생의 최우선순위는 그 밭을 사는 것이 됩니다.

* 우리에게 천국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우리에게 천국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곳인가요? 머릿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낌으로, 이미지로, 온 인격으로 그 가치를 느끼며 살고 있나요?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천국을 소유할 조건을 알려주시는 예수님의 팔복에 대한 말씀이 우리 마음에 다가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천국의 가치는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좋은친구교회 모든 성도들이 천국에 대해 생각하고, 필요하면 고민도 좀 하면서 천국을 꿈꾸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