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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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12장 1-4절 ]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 12:1-4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고 난 뒤의 삶의 여정은 믿음의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삶의 여정이 탄탄대로와 같이 모든 일에 막힘없이 형통하기를 바라는 것은 모든 사람의 바람일 것입니다.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도 환난과 고통을 겪지 않고 형통한 길을 가기를 원하며 늘 그것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하지만, 믿음의 길이라 하더라도 늘 우리 바람대로 형통하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는 믿음이 흔들리고, 우리가 가는 이 길이 과연 나에게 좋은 길인가, 과연 이 길이 옳은 길인가라는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길이란 과연 어떤 길일까요? 믿음의 길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그런 의심이 들 때,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길잡이가 돼 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이 걸었던 믿음의 길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가고 있는 믿음의 길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첫째, 아브라함이 갔던 믿음의 길은 떠남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길입니다.

[본문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창 12: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길을 가기 위해서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따라 지금까지 그가 살아왔던 곳을 떠남으로써 믿음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떠나야 했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 그에게 어떤 곳이었을까요?

그곳은, 그전까지 아브라함에게 삶의 기반이 되는 곳이었으며,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곳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익숙한 곳이었기 때문에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고, 먹고 사는 문제에서 오는 근심걱정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삶의 기쁨과 슬픔으로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기에 삶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러한 익숙한 환경과 친밀한 인간관계는 다가올 미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알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어느 정도 씻어주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익숙한 곳을 떠나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마 아브라함의 마음을 조금은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멀리 이사를 했던 세 번의 경험이 있습니다. 대안학교 사역을 위해 서울에서 충북으로 이사를 했고, 교회 사역을 위해 충북에서 더 멀리 남동쪽 바닷가에 있는 울산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했다가, 지금하는 사역을 위해 다시 서울로 이사를 왔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이사를 할 때마다 제 두 아들은 친구들과 헤어지고,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에 적응해야 하는 일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었습니다. 물론 제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과정에서 저희 가족과는 비교할 수 없는 심적, 육체적 고통을 겪어야 했던 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땠을까요? 지금은 사전에 정보를 검색해서 미리 준비를 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아브라함 당시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사전 정보를 지금처럼 자세하게 알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리고 도적떼와 맹수의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고, 마땅한 이동 수단도 없어서 육체적 고통도 감안하고 떠나야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목적지도 모른 채 떠나야 했습니다. 12장 5절에 그가 가나안 땅으로 갔다고 나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곳이 최종 목적지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 땅이 1절에서 말씀하신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이었음을 깨닫고, 처음으로 제단을 쌓게 됩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믿음의 길은 여러 가지 위험과 고통, 어딘지 알지 못함에서 오는 불안감을 무릅쓰고 떠남으로써 시작된 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길은 익숙한 것을 떠남에서 오는 심적, 육체적 고통을 감내하기로 결단하는 일에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우리에게 떠나야 할 곳은 무엇일까요?

이 떠남은 당연히 물리적으로 멀리 이사를 가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그동안 익숙하고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었던 것들에서 과감하게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사도 바울의 고백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믿음의 길을 가기 위해 떠나고 버렸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7,8]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빌 3:7-8

사도 바울은 믿음의 길을 가면서 과거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기고 심지어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유익을 주던 것들은 무엇일까요? 그는 유대 민족의 강한 정체성과 해박한 율법 지식, 유대교에 대한 신념과 열정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아브라함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과 같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의 삶을 지탱하는 단단한 기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로 하여금 스데반의 살인에 증인이 되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서기를 주저하지 않고 오히려 그 일에 자부심을 느끼도록 만들어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나고 진정한 믿음의 길을 시작하면서 그는 그 모든 것에서 떠났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자신과 같이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길 강하게 권면합니다.

[에베소서 4:21-24]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1-24

사도 바울은 이 말씀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그동안 그들이 세상의 욕심을 따라 살던, 결국에서 썩어서 사라질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강권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길은,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옛 사람의 모습을 떠나서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겠다는 결단을 하도록 촉구합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

하나님을 만나기 전까지 지니고 있었던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의 모습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는 떠나야 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죄악 된 행동이나, 세상의 가치관과 신념과 기질과 성품일 수도 있으며, 세상의 기쁨과 즐거움일 수도 있으며, 우리가 마음으로 의지했던 어떤 대상이나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기 전까지는 그것이 유익인 줄 알았지만, 예수님을 알고부터는 해가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이 바로 믿음의 길을 가기위해 버리고 떠나야 할 우리들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일 것입니다.

둘째, 아브라함이 갔던 믿음의 길은 무한도전이었습니다.

“무한도전”이라는 한국 예능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무한도전은 원래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했었습니다. 멤버들이 나와서 말 그대로 여러 가지 컨셉의 “무모한” 도전을 시도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많은 웃음을 안겨줬던 장수 예능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브라함의 믿음의 길도 무모한 도전과 같은 길이었습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과 같이 처음에는 목적지도 모른 채 안정된 삶에서 불안과 두려움의 미지의 세계로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의 길이 얼마나 무모했으면, 하나님께서도 히브리서에서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8]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 11:8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도 무작정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2-4절]을 읽어보겠습니다.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 12:2-4

그런데 사실, 이 약속 역시, 아브라함의 당시 형편에 비추어 보면, 세상적 관점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약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1장 30절을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다고 나옵니다. 큰 민족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하셨지만, 실상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75세의 나이에, 고향을 떠나 나그네요 이방인의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이름이 창대하게 될 가능성을 더 떨어뜨리는 상황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모든 족속이 받을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약속도 당시로서는 막연하게만 드릴 수 있는 약속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의 믿음의 길은 한편으로는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를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는 그에게 가지 말라고 조언했을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마도 그를 어리석고 미련하다는 말로 조롱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 그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믿음의 길을 갈 때 의지했던 것은, 세상의 지혜와 경험과 힘이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4절은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읽었던 히브리서 11장 8절에서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였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믿음의 길은 말 그대로 믿음을 가지고 가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무모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자신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자신의 나이가 75세라는 점도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미지의 세계로 무작정 떠나야 하는 무모한 도전이었음에도 그는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을 갈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포함하여 우리 주변에는 믿음의 길을 간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주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내가 믿음의 길을 가고 있는가? 또는 내가 믿음의 길 가기를 과연 시작했는가를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만일 아직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에 머물고 있다면,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른 옛 삶의 모습에서 조금도 나아감이 없다면, 세상에서 유익을 주는 것들에 여전히 손에 쥐고 놓지 못하고 있다면, 어쩌면 우리는 믿음이 길을 시작도 못한 것인데, 스스로 믿음의 길을 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믿음의 길을 갈 때, 자주 방황하고 흔들리고 있다면, 믿음이 아닌 다른 것을 더 많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조건과 처한 상황 때문에 말씀을 의지하지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이 길은 떠남과 오로지 믿음으로 시작하는 길임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신 복된 삶을 함께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