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 목사

이인엽 목사

[ 민수기 12장 1-2, 9-10절 ]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민수기 12:1-2, 9-10

여러분, 미리암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미리암은 모세의 누나입니다.
오늘 읽으신 이 본문은 모세의 누나인 미리암이 모세의 형인 아론과 함께 구스 여인과 결혼한 모세를 비방한 이유로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문둥병에 걸리는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구절은 사실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요, 그 본질적인 메시지와는 상관없이 오늘날 이 구절이 아주 이상하게 사용되어지곤 합니다.

이런 말 들어보셨나요? ‘목사님 욕하면 벌 받어, 목사님 욕하면 병 걸려, 목사님이 아무리 잘못해도 성도가 나서면 안되지, 하나님의 종을 건들면 안되는거야.’ 그러면서 민수기 12장, 이 성경구절을 예로 들지요. ‘봐라,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하는 죄를 졌지만 모세가 혼난게 아니고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이 문둥병에 걸리지 않았냐.. 목사가 바람을 피던, 목사가 교회를 아들에게 세습하던, 교회 돈을 빼돌리던 그건 하나님이 상관할 일이지.. 성도가 거기에 나섰다간 미리암처럼 벌 받는다.. 병 걸린다.. 망한다.. 죽는다..’ 이런 말들을 하지요.

여러분들도 이렇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도 일부 타락한 목사들의 불의 앞에서 이를 악물고 침묵해야 한다고 여기시나요. 그게 말씀을 따라 사는 성도의 온유함인가요. 아니요, 아닙니다.

성도의 온유함은 불의에 대한 침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또한 오늘날 타락한 목사들이 모세와 견줄만한 사람들도 전혀 아닙니다. 그 수준이 안된다고요. 오늘 우리가 함께 읽으신 이 성경구절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구절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성경구절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성경구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더라

민수기 12:1

여러분은 이 구절에 무슨 질문을 던지시겠습니까?

저는 이런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한게 죄인가?
미리암은 무슨 자격으로 모세를 비방했나?
비방은 아론과 같이했는데, 왜 미리암만 문둥병이 걸리나?
미리암의 비방이 왜 하나님 앞에 죄가 되었는가?

어떤 사람들은 여기 나오는 구스 여인이 사실은 모세의 원래 아내인 십보라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건 좀 무리한 해석이고요, 구스 여인은 에티오피아 여인을 의미합니다. 구스 여인이 십보라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모세가 이방인과 결혼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는 것을 받아들이가 어려운 거죠.

이방여자와 결혼하지 마라!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한 원인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를 보면,

또 네가 그들의 딸들을 네 아들들의 아내로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며 네 아들에게 그들의 신들을 음란하게 섬기게 할까 함이라

출애굽기 34:16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신명기 7:3-4

이 구절들은 유대인들에게 이방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인데요, 여기서 말하는 그들은 유대인 빼고 전부 다 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갈 땅에서 우상을 섬기며 살고 있는 헷 족속, 기르가 족속, 아모리 족속, 가나안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일곱 족속을 말합니다. (신명기 7:1)

구스 여인은 가나안 땅이 아닌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여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이렇게 이방 여인과 결혼을 금지한 이유는 이방인 아내때문에 유대인들이 우상에 빠질까 봐 막으신거죠. 그런데 애굽 신들의 몰락을 목도한 모세가 고작 가나안의 우상 신에 빠지겠습니까.

미리암이 하나님의 명령을 너무 문자적으로만, 너무 피상적으로만, 너무 맹목적으로만 믿은 거죠. 잘못된 신앙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예수님 오셨을 때 누가 가장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대적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너무 문자적으로만, 너무 피상적으로만, 너무 맹목적으로만 믿은 유대인들이 율법을 아예 모르는 이방인들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비방하고 공격했습니다.
오늘날 이단들이 즐겨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성경 말씀을 전후 사정, 역사적 배경, 다양한 신학적 관점을 다 무시하고 몇몇의 입맛에 맞는 구절을 자기들 생각대로 가져다가 ‘야.. 성경에 이렇게 써있지 않냐..’ 하면서 사람들을 유혹하지 않습니까.

첫번째 질문, 모세가 구스 여인과 결혼한 것은 죄 인가? 대답은 아니오 (No) 입니다.

두번째 질문이 뭐였죠? 미리암은 무슨 자격으로 모세를 비방했나 입니다.

모세에게 미리암이 누구입니까? 그냥 누나입니까? 아닙니다. 생명의 은인입니다. 누나가 아니었으면 모세는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미리암을 사용하셔서 어린 모세를 살리고 도우셨습니다.

모세가 태어난 때는 애굽 왕 바로가 유대인의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져 있던 때였습니다. 죽어야 할 모세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강에 띄워 보냈지요. 그 갈대 상자를 바로의 딸이 발견하고 건져 올립니다. 이때 멀리서 지켜보던 소녀, 미리암이 나서죠.

그의 누이가 바로의 딸에게 이르되 내가 가서 당신을 위하여 히브리 여인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기에게 젖을 먹이게 하리이까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가라 하매 그 소녀가 가서 그 아기의 어머니를 불러오니

출애굽기 2:7-8

모세의 생존과 모세의 유년시절의 삶에 그의 누나 미리암의 역활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누나 덕을 톡톡히 본거죠. 그 누나 덕에 모세는 친 엄마를 유모삼아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모세에게 미리암은 그저 누나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의 은인이자, 큰 빚을 진 고마운 누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계는 한가지 위험성을 갖기 쉽습니다. 도움을 준 사람이 도움을 받은 사람을 컨트롤 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지요. 자식을 위해, 정말 남들과는 비교할수 없는 헌신을 한 부모들, 남편을 위해, 혹은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 힘없는 친구를 오랫동안 아낌없이 도운 친구들, 가난하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손길들..

그냥 거저 주고 헌신하고 아껴주고 나눴으면 그만인 것을, 깔끔하게 ‘그래 내가 저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였으면 그냥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었을 것을, 그러나 그러지 못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내가 널 도왔으니까 넌 내 말을 잘 들어야지..’ 도움을 준 사람이 도움받은 사람을 핸들하려고 하는 순간, 조정하려고 하는 순간, 훈계하려고 하는 순간, 사랑은 거래로 변해 버립니다.

미리암은 모세를 도왔습니다. 거기서 끝났으면 딱 좋았습니다. 그러나 미리암은 모세의 지극히 개인적인 일인 결혼 문제를 가지고 모세를 비방합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민수기 12:1

여기서 ‘비방하니라’라고 쓰여진 말의 원어 ‘다바르’는 ‘명령하다, 위협하다, 경고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너 이놈, 너 혼 날래..’ 라고 말했다는 거죠. 모세는 명령받고 위협받을만한 어린아이가 아니었습니다. 모세의 나이는 80이 한참 넘은 성인이었습니다. 아니 사실은 노인이었죠.

미리암은 모세를 살린 사람, 모세에게 큰 도움을 준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세를 핸들할 권리가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미리암은 자기가 모세를 비방하고 훈계할 권리가 있다고 느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내가 모세를 살렸잖아.. 내 덕에 모세가 잘 컸잖아.. 그러니까 내 말 잘 들어야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왜 누군가를 돕기 위해 애를 씁니까?

마태복음 10:8의 ‘..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기꺼이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입니다. 도움과 구제는 이처럼 거저 주는 모습을 갖추었을 때 아름답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알려준 사랑의 모습입니다.

미리암은 모세를 도왔고, 자신이 모세를 훈계할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리암의 착각이었을 뿐입니다.

자 이제 세번째 질문을 보죠.

왜 모세를 비방한건 미리암과 아론인데 미리암만 문둥병에 걸렸을까?

민수기 12:1의 ‘…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에서 비방하다는 동사가 취한 주어는 여성형입니다. 쉽게 말해서 모세에 대한 비방을 주도한 자가 여성, 즉 미리암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모세를 비방한 사람의 이름도 미리암과 아론이라고 미리암이 먼저 나오죠. 미리암이 확실히 아론보다 적극적으로 모세를 비방한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주범인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리고, 따라가서 거들기만 한 종범인 아론은 무사히 넘어간거라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조금 부담스럽죠. 하나님이 죄의 경중에 따라 마치 사람들이 하는 것 처럼 다르게 처벌한다고 하는 것 같아 보이잖아요. 사람들이야 물론 경범죄도 있고 중범죄도 있고 죄의 경중에 따라 징벌도 크게 차이나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의 죄도 경중에 따라 어떤 사람은 살면서 조금 아프고 말고,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1년형, 어떤 사람은 지옥에서 10년형, 정말 나쁜사람은 지옥에서 종신형.. 이렇게 나뉘나요?

로마서 6:23을 보겠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이 말씀은 죄 때문에 죽거나 예수때문에 살거나 오직 두 길만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이러한 태도는 작은 죄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고 함부로 행동하려는 어리석은 태도, 어리석은 선택을 경계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론은 죄가 작아서 그냥 넘어가고, 미리암은 죄가 커서 문둥병에 걸리고 그런게 어딨습니까. 여러분, 세상을 보세요. 엄청난 죄를 짓고도 장수하면서 잘먹고 잘사는 사람 많습니다. 큰 죄를 져도 당장 벌을 안 받을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왜 그렇지요? 언젠가는 누구나 죽고 그 뒤에 사망의 벌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죄의 경중으로 미리암만 문둥병에 걸렸다는 생각은 모순이 많습니다. 그보다는 필요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해석이 좀 더 맞을 겁니다. 아론은 대제사장이었고 유대인들을 위해 감당해야 할 중책을 중단할 수가 없었죠. 그에 반해 미리암은 여 선지자라고는 하지만 아론과는 달랐습니다.

아론과 같이 혼나든지, 미리암이 혼자 혼나든지, 하나님의 징계의 메시지는 똑같이 전해진다면 하나님이 미리암만 문둥병으로 징계하신다고 한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필요에 따른 하나님의 선택, 필요에 따라 같은 일에 대해서도 다르게 대응하시는 하나님의 선택과 주권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세번째 질문, 왜 미리암만 문둥병에 걸렸나요에 대한 답은 하나님이 그렇게 선택하셨다 입니다.

마지막 질문은 뭐였죠? “미리암의 비방은 왜 하나님 앞에 죄가 되었는가“ 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민수기 12:2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아, 모세만 대단해? 우리도 잘났어..’ 이런 말이에요. 이 구절에서 우리는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한 본심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의로운 척, 겉으로는 올곧은 척, 겉으로는 하나님을 바로 섬기려고 최선을 다하는 척 하였지만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사람들이 왜 모세만 따르지?’
‘나도 열심히 하는데 왜 나를 알아주지 않지?’
‘나도 이정도면 중요한사람 아닌가?’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왜 모세만 대단하다고 하지?’ 하는 시기심, 질투심이 숨겨져 있었던 겁니다.

모세를 향한 시기심으로 가만히 따져보면 별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비방하고 분노하며 모세를 곤란하게 만든 것입니다.

우린 가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주변사람들과 나를 비교하고 시기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선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데, 분명히 나는 바른 잣대로 남을 평가한다고 생각이 드는데, 가슴 깊은 곳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 자신의 믿음에 대한 우월감, 나 자신이 더 돋보이고 싶은 욕심에서 남들의 신앙을 깍아내리고 시기할 때가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그런일이 있어요, 여러분.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한 이 행동이 모세의 타락과, 모세의 부족함을 질타하는 의로움이 아니라 자신의 시기심과 질투를 이기지 못한 행동이라는 말씀입니다. 모양새는 그럴듯 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 뿌리는 더럽기 짝이 없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상황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 이 세사람을 회막으로 부르시지요.

이르시되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민수기 12:6-8

‘너만 잘났냐, 나도 잘났어.. 너만 하나님 만나냐, 나도 하나님 봐..’

시기심과 질투심에 미리암이 아론이 모세를 평가했습니다. 비방하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가족인데, 그렇게 오래 모세를 봤을텐데, 그렇게 함께 하나님의 일을 서로 도와가며 애를 썼는데, 홍해를 건너고 미리암이 모세와 함께 여호와를 찬양하며 노래했는데, 시기심과 신앙적인 질투심 앞에 실족하고 만 것입니다.

그렇게 실족한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와 그들의 차이를 분명하게 구분지어 말씀하십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은 “어찌하여 내가 세운 나의 종, 내가 높이는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하는 자라”, ‘모세는 너희와 다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지막 질문, 미리암의 비방은 왜 하나님 앞에 죄가 되었는가?

우리는 이제 그 답을 압니다. 미리암은 자신의 시기심, 질투심을 이기지 못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모세를 대적했죠. 그런데 그것은 단지 모세를 대적하는 일을 넘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 12장의 이 구절들은 타락한 목사라도 하나님의 종이니까 함부로 대적하면 미리암처럼 병걸린다, 망한다, 이런 유치한 논리를 우리에게 전하는 구절이 아니라 신앙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하는 중에서도, 나도 모르게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누군가를 비방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구절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못된 동기에서 시작된 비방은 타인에 대한 비방을 넘어서 그를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타인의 믿음을 평가하고 잣대질하지 맙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만 제대로 하나님 믿고 있다는 교만에도 빠지지 맙시다. 내 위치가 미리암의 위치면 어떻고, 내 위치가 아론의 위치면 어떻고, 내 위치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위치면 어떻습니까.

시기심과 교만함의 덫에 걸려 실족하지 마시고, 낮은데로 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예수님의 지체, 교회를 세워가 봅시다. 그런 능력이 여러분 안에 가득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