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목사

이인엽 목사

[ 출애굽기 14장 13절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출애굽기 14:13

잘되면 내가 잘해서 잘 됐고, 잘못되면 네가 잘못해서 잘못됐다는 말.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네 탓. 도대체 왜 그런지 모르는데 우리는 참 그럴 때가 많지요. 부부끼리 흔하게 싸우는 이유 중 하나도 아이들이 잘못하면 다 당신 닮아서 그렇다고 서로 원망하다 그렇게 아옹다옹하지 않습니까.

요즘도 그런 말을 쓰는 줄 모르겠지만, ‘다 내탓이요..’ 라는 말이 한국에서 유행 했었어요. 참 그럴듯한 이 말은 우리가 얼마나 남 원망하기를 잘하는지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단어 같습니다.

원망.
원망은 자신의 심적인 짐을 덜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무지 아무런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원망은 사람끼리 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예전에 어떤 분을 뵀는데, 자신의 삶이 참 형편없고 망한 삶이라며 너무 속상해서 자기는 하나님 안 믿는다고, 어떻게 자기 한테 이럴 수가 있냐고 그렇게 원망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을 제대로 믿어나 본거예요? 제대로 믿지도 않으면서 원망은 무슨..“ 용감하게 호통을 쳤습니다. 그분이 가게 주인이었는데, 어떻게 됐을까요 저는? 쫓겨났죠, 그 가게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시간이 흘러갈수록 더욱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완전히 노예였죠. 그 고통의 간구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광야에서 양떼를 치며 초라하게 늙어가던 모세를 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내는 엄청난 역사를 시작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4장 29-31절의 말씀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출애굽기 4:29-31

아름다운 모습이죠.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이 일은 그렇게 순조롭고 만만하게 풀려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달라는 모세와 아론의 간청에 바로는 놓아주기는 커녕, 벽돌을 만들 때 필수적인 짚이 있어야 하는데, 이 지푸라기, 즉 짚을 주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만들기 어렵죠. 그런데 벽돌은 전과 같은 양으로 만들어 내라고 억지를 부립니다. 일이 힘들어 지는 거지요. 더욱 고단해진 일상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을 합니다. 모세와 아론을 향하여 맹렬히 원망을 퍼붓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를 바로의 눈과 그의 신하의 눈에 미운 것이 되게 하고 그들의 손에 칼을 주어 우리를 죽이게 하는도다 여호와는 너희를 살피시고 판단하시기를 원하노라

출애굽기 5:21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보냈는데, ‘너희 정말 잘못한 거야. 너희 때문에 힘들어 죽겠어. 너희 정말 여호와 하나님께 혼나야되.’ 이런 욕을 먹으니까 얼마나 기도 안막혔을까요, 모세는.

모세는 자신을 원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공감 한거예요.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그럴만 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아, 하나님 믿으면 더 잘되야지. 아, 하나님 믿으면 더 편해져야지. 아, 하나님 믿으면 더 쉬어져야지. 어떻게 더 어려워지나, 어떻게 더 힘들어지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을 공감했습니다.

‘그러게, 뭔 일이래 이게.. 왜 더 어려워지지..’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은 릴레이 경주에서 바톤 체인지 하듯 모세가 받아서 하나님께 전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출애굽기 5:22-23

이런 생각, 이런 원망이 모세 만의 것이었을까요? 저도 여러번 그랬어요. 성도가 고통받는 모습, 죄 없는 어린아이가 아프거나 죽어가는 모습, 하나님을 믿어보겠다고 어렵게 교회에 발을 디딘 초신자가 여러가지 이유로 삶이 고단해지는 모습.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저도 모세같이 하나님께 원망했습니다.

아니, 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돌보지 않으시나요. 모세의 이 원망에 여호와 하나님이 답하십니다.

… 이제 내가 바로에게 하는 일을 네가 보리라 …

출애굽기 6:1

‘하나님 왜 이래요, 하나님 더 어려워 졌잖아요… 하나님 왜 안도와 주세요…’
이 질문과 원망앞에 “네가 내가 하는 일을 보리라! 나의 하는 일을 보리라, 나의 하는 일을 보리라”

그 뒤로 무슨 일들이 일어납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더욱 고통스럽게 괴롭히던 애굽 왕 바로는 어마어마한 재앙을 만나게 됩니다.

애굽은 여러 종류의 신들을 섬겼는데,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을 전해들은 바로왕은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출애굽기 5:2) 하면서 겁없이 하나님을 대적하지요.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여호와, 그게 무슨 신이야, 우리 애굽을 지키는 신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호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 애굽왕 바로는 잘못된 판단을 한거야요. 온 애굽을 재앙 속에 빠지게 만듭니다. 바로는 듣도 보도 못한 여호와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엄청난 재앙을 보게 되지요.

이 엄청난 재앙은 그러나 바로만 본게 아니었습니다. 모세도 이 재앙을 보게 되었죠. 백성들의 원망 앞에 그 원망을 공감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던 모세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황실에서 자라난 모세가 애굽인들이 섬기는 신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었을 것은 분명한 사실 아니겠어요.

여호와 하나님이 일으키신 재앙들은 많은 의미들을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는 소위 말하는 애굽의 신들과도 깊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애굽 사람들이 자신들을 돌본다고 생각하는 신들의 무력함을 여호와 하나님이 재앙을 통하여 보여주고 계신다는 겁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출애굽기 7:19

이 구절에는 나무 그릇과 돌 그릇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출애굽 당시에 주로 사용했던 애굽의 그릇은 나무 그릇, 돌 그릇이 아닙니다. 주로 흙으로 구운 질그릇이나 청동기시대인 만큼 놋그릇을 사용했지요. 나무 그릇 돌 그릇은 실생활에 사용하는 그릇을 말한다기 보다 구약 전체에서 우상을 상징할 때 말하는 나무와 돌들이라는 얘기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애굽의 온 땅과 우상들을 치시겠다는 말씀이죠.

피의 재앙은 나일강의 수호신인 ‘크놈’과 나일강의 영인 ‘하피’가 여호와 앞에 무력함을 보여줍니다. 개구리가 온 땅에 덮이는 재앙은 부활과 다산을 주관한다는 신인 ‘헤크트’를 누르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줍니다.

티끌이 이가되는 재앙은 땅의 신이라는 ‘셉’에 대해서, 파리 떼가 가득해지는 재앙은 곤충의 신인 ‘하트콕’에 대해서, 가축에게 돌림병이 돌아 몰살하는 재앙은 황소의 신인 ’아피스’와 암소의 신인 ‘하도르’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뛰어나심과 응징하심을 상징합니다.

사람과 짐승에게 일어난 악성종기는 의술의 신인 ‘암호텝’에 대해, 불덩이가 섞여 내리는 엄청난 우박은 하늘의 여신인 ‘누트’에 대해, 모든 곡물을 먹어 없애는 메뚜기떼의 공격은 곡물의 신인 ‘셋’에 대해, 그리고 흑암이 온세상을 덮는 재앙은 태양의 신인 ‘호루스’에 대해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강하시며 애굽의 신들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 우상에 불과한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제외한 온 애굽의 장자가 죽는 재앙은 그들이 그렇게도 섬기는 생명의 여신 ‘이시스’가 얼마나 하챦은 우상인지를 보여주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고통과 원망 앞에 그 고통을 공감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던 모세는 자신이 알던 애굽의 신들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한없이 무력하게 주저앉는 모습을 보았어요.

오직 유일하신 신, 여호와 하나님!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상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권능과 영광의 하나님! 그 크신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직접 보면서 모세는 자신의 이해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지요.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고 하나님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놓던 모세는 엄청난 재앙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더욱 더 깊은 믿음의 수준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나 너무도 심지가 얕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원망을 이어갑니다. 모세와 같은 변화는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모세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홍해바다 앞에 섰습니다. 뒤로는 애굽왕 바로가 병거를 이끌고 맹렬한 속도로 쫓아오고 있었어요. 앞은 바다, 뒤에는 애굽의 칼날. 무서울만 하죠.

두려움은 이스라엘 백성의 연약한 믿음을 순식간에 조각내어 버립니다. 원망이 다시 쏟아져 나왔어요. 열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누르신 하나님,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다 잊어버렸어요.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출애굽기 14:11-12

아니, 애굽 병사가 쫓아오면, 맞서 싸우려고 하는 게 맞지 않나요. 하나님의 권능을 봤잖아요. 그러면 좀 담대하게 나가는게 맞지 않나요. 그냥 노예 근성에 찌들어서, 주는 대로 받아먹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그냥 먹고, 그냥 살고 그러면 되는,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노예인 이스라엘 백성은 남자 장정이 60만명이나 되는데 싸워보지도 않고, 맞서보지도 않고, 그저 원망만 하는 거예요.

이 원망 앞에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출애굽기 14:13

백성의 원망을 릴레이 바톤 체인지 하듯 하나님께 전했던 모세가 이제,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하시는 일을 서서 보라!”
이렇게 담대히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에 동조하여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원망하는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눈물로 울부짖으며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믿는 자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그 크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를 신뢰하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온전한 성도는 원망보다는 기도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것이 맞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하심에 힘입어 무사히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이 놀라운 기적이 주변에 있는 여러 민족들에게 전해져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스라엘 백성은 이제 주변국의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죠.

완전히 뜬 겁니다. 유명해 진거죠.

‘야, 하나님이 애굽을 치시고 이스라엘을 살리셨데.. 애굽의 군대가 홍해에 전부 빠져서 몰살을 당했데.. 야, 저사람들 건들였다간 큰일나겠어..’

여호와 하나님,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이스라엘은 두려움과 부러움의 대상이 된거죠.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 백성은 어땠을까요?

원망과 불평이 끊이지를 않았습니다. 이건 이래서 싫고, 저건 저래서 짜증나고, 목말라 죽을 지경인데 간신히 찾은 마라의 물은 써서 먹을 수가 없고, 배가 고픈데 광야에서 먹을 것도 없고, 돌산을 지나가는데 물을 찾을수가 없고..

끝나지 않는 불평, 원망을 들으면 모세는 그냥 엎드려져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드리고, 또 엎드려져 하나님께 울부짓으며 기도드리고, 하다 하다 나중엔 만나만 먹으니까 너무 질린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장막 문에서 우는 백성의 소리를 모세가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낍니다.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이 너무도 빈약한 이스라엘 백성을, 감사가 없고 욕심이 끝이 없는 그 백성들을 앞에 두고 모세가 이렇게 하나님께 하소연 합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오되 어찌하여 주께서 종을 괴롭게 하시나이까 어찌하여 내게 주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게 아니하시고 이 모든 백성을 내게 맡기사 내가 그 짐을 지게 하시나이까
이 모든 백성을 내가 배었나이까 내가 그들을 낳았나이까 어찌 주께서 내게 양육하는 아버지가 젖 먹는 아이를 품듯 그들을 품에 품고 주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가라 하시나이까

민수기 11:11-12

하나님, 내가 저 사람들 아버지입니까? 하나님, 내가 저 사람들을 배 아파서 났나요? 내가 저 사람들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라고.. 이 원망과 이 불평을 들어야 하나요.. 저들이 죽던 살던 나하고 뭔 상관이라고.. 저들이 고통받던 말던 나하고 뭔 상관이라고.. 저들이 가나안을 가던 말던 나하고 뭔 상관이라고.. 저들을 구원하는 일을 감당하라 하십니까.

하나님이 만나를 주셨잖아요. 그런데 이제 저한테 고기를 구해 내라고 하네요..

밑도 끝도없는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 앞에 위대한 민족의 지도자 모세가 좌절합니다. 그 좌절감으로 모세 또한 하나님 앞에 다시 원망을 집어 듭니다. 모세의 믿음의 한계가 드러납니다.
자신의 욕심과 불신앙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죄를 짓는 것을 넘어서 모세까지 하나님을 원망하게 만들죠. 죄는 이렇게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의 악함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체 오히려 가나안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에 원망함이 극에 달했어요. 모세와 아론을 없애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자고 난리를 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말렸으나 소용이 없었죠. 그들까지 돌로 쳐 죽이려 합니다.

이때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전염병으로 그들을 쳐서 멸하고 네게 그들보다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리라

민수기 14:11-12

모세에 대한 원망,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일이라는 겁니다. 원망하는 그 일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광 받기 위하심 아닙니까? 영광 받으시기 위해 선택한 백성이 원망을 끊임없이 내뱉는다는 것은 그 존재의 가치를 상실해 버렸다는 말입니다.

오늘을 사는 성도들도 똑같습니다. 선택받은 성도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 있습니까? 가난하다고 존재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고요, 몸이 아프다고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고요, 나이 들었다고 존재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고요.

하나님 앞에서 늘 원망과 불평이 끊이지 않는 사람. 삶 속에 수없이 많은 기도의 응답과 기적을 보았는데도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은 아무리 세상 속에 중요해 보이고 아무리 세상 속에 성공한 사람 같아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 존재 가치를 상실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존재 가치가 없는 이스라엘 백성들, 당장 몰살을 당함이 타당한 이스라엘 백성들,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인 모세에 대한 원망으로 하나님을 멸시한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을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징계하심이 시작하려는 순간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매어 달립니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 같이 사하시옵소서

민수기 14:19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중보자 모세입니다. 방금 전까지 자신을 죽이려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여호와 하나님 앞에 중보자로 나선 모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도 죄 지은 적이 많은데,
나도 하나님 원망한 적이 있는데,
나도 하나님 의심한 적이 많은데,
난 지금 어떻게 이렇게 살아 있습니까.
난 지금 어떻게 이렇게 예배드릴수 있습니까.

중보자, 나의 죄를 위하여 나의 죄로 인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 그럼에도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간구하시는 그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나의 중보자.
그분의 중보자 되심으로 오늘 나와 여러분이 삽니다. 모세의 삶을 바라보며 나 스스로의 죄인 됨과 죄인인 나를 위해 중보하시는 예수를 기억하시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