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 목사
[ 히브리서 3장 15-19절 ]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 3:15-19
체험과 믿음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기적적인 체험을 했다는 기독교인의 간증을 듣곤 합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는 국수집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 중에도 그런 자신의 체험이나 타인의 체험을 나누고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체험으로,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거나, 병을 고치는 신유의 은사를 받아 사람들의 병을 고쳤다거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을 계기로 신앙을 갖게 되었다는 등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그들의 그런 체험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면서, 체험이 없는 자신에 대해 괜히 주눅이 들기도 합니다. 방언을 신앙 성숙의 지표로 삼는 교단에 속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방언을 받은 사람들은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기적을 이루어 주시길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 기대감은 때때로 간절한 소망이 돼서, 그 순간에 기도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하심으로 이루어지길 바라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체험을 하면 하나님께 대한 더 큰 확신과 믿음을 갖게 되고, 신앙생활도 더 잘할 것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을 체험하고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 시간에는 그들의 모습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주변에서 듣거나 직접 경험하게 될 신앙의 신비한 체험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지 못한 사람들
히브리서 3장은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안식에 들지 못한 사람들을 예로 들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안식에 참여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 18절 말씀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에서 안식은 가나안 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16절 말씀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로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입니다. 17절 말씀에서는 그들이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을 노하게 하여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18절과 19절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까닭은 그들의 순종하지 아니함과 믿지 아니함에 있었다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출애굽 백성들의 놀라운 체험들
그런데 출애굽 백성들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였다는 그 사십 년의 기간 동안에, 사실 그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수없이 체험했습니다. 그들이 체험을 한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사건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떠올려 볼까요?
먼저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애굽의 바로왕 앞에서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이 있습니다. 나일강의 물이 피로 변한 것부터 시작하여, 수많은 개구리 떼가 올라오고, 먼지가 이로 변하고, 갑자기 파리가 많아지고, 가축들이 죽고, 애굽 사람과 짐승들의 피부에 악성 종기가 생기고, 큰 우박이 내리고, 메뚜기 떼가 몰려오고, 애굽 사람이 사는 곳에 흑암이 덮이고, 결국에는 애굽 사림과 가축의 처음 난 것이 죽는 재앙이 내렸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광경을 고스란히 목격하였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엄청난 사건을 체험한 것인데, 하나님은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하셨으며, 그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으며, 쓴 물을 달게 하시고, 반석에서 물이 솟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변변한 무기도 없음에도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하기도 하셨습니다.
성경 역사상 예수님의 제자들 다음으로 기적적인 체험을 가장 많이 한 사람들이 바로 모세를 따라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함으로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 중요한 순간은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일까요?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
그들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불순종 사건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났습니다.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 땅에서 가까운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12명의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 땅이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곳이긴 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장대하고 그들의 성곽은 하늘에 닿아서 자신들이 도무지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비관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요하여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신명기에서 이 사건을 회고하면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는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신명기 1:25-35]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5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28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34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소리를 들으시고 노하사 맹세하여 이르시되
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26절에서 그들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했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32절에서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설교 본문 18, 19절 말씀과 같이 그들이 그렇게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였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35절에서 그 불순종과 불신 때문에 그들이 가나안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과 같이 출애굽에서 나온 첫 세대는 모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기적을 경험하도고 하나님께 불순종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그들은 그런 놀라운 체험을 하고도 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당장 눈 앞에 놓인 현실에 대한 두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두려움을 잘 표현해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민수기 13:33]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
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장대한 모습과 그들의 성읍의 크기와 견고한 성곽을 보고는, 그만 자신들은 그들 앞에 한낱 메뚜기와 같이 보잘 것 없고 나약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도무지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크고 놀라운 현실의 벽 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들에게 그들이 무수히 경험했던 기적적이 체험들은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현실의 벽 앞에서 그들은 이제 과거 자신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약속은 제쳐두고 자신들이 의지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은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민수기 14:1-4]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
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
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사실,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것은 이번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은 홍해 앞에서 자신들을 추격해오는 바로왕의 군대를 보았을 때도 차라리 애굽에 있는 것이 낫겠다고 했고,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도 툭하면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 살던 때를 그리워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안식을 상징하듯이 애굽도 영적으로 상징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것은 죄로 물든 세상을 상징합니다. 광야 생활은 그 세속의 삶을 떠나서 천국으로 향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이 땅의 삶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것은 애굽왕 바로의 밑에서 종살이 하듯, 죄로 물든 세상에서 죄의 노예로 살아가는 삶으로 되돌아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놀랍고 기적적이며 신비한 체험을 많이 했다 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으면, 교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과 그들의 방법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 들게 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느낀 현실적인 문제와 두려움과 근심걱정을 그렇게 해결하려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출애굽 백성들의 체험을 지금 우리가 한다면 어떨까요? 그들이 체험한 것들 중 한 가지만 경험하여도 우리 하나님을 향한 우리 믿음이 확고해지고 절대 하나님을 떠나거나 배신하지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기적을 우리에게 한 가지만이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리들이라고 끝까지 하나님의 배신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의 안식을 누리는 가나안 땅에 모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도 그들과 같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역사를 체험하더라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체험의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경험해보았으면 하는, 때로는 남을 부럽게 만들고, 때로는 나를 주눅 들게 만들어서 나도 한 번 경험해 보았으면 하는 신앙의 신비스런 체험들은, 그것을 경험한 순간에는 놀라운 감격과 믿음을 주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서 있는 믿음이 없으면, 삶의 여정에서 큰 시련과 고난을 만나 마음이 무너지기 시작하는 순간에 직면했을 때는, 그 체험은 한낱 추억으로 남을 뿐입니다. 이 점은 각자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기도응답과 같이 이런 저런 모양의 신앙 체험 한 두가지 정도는 각자에게 있지 않은가요? 그런데 그 순간의 감동과 결단의 모습을 여전히 지키고 있나요?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감동은 미지근해지고, 우리는 어느새 애굽 즉 세상으로 돌아가려는 마음과 싸우고 있지 않은가요?
출애굽한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가나안의 안식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때, 그들 중 유일하게 가나안 땅에 들어간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이지요. 그 두 사람은 기골이 장대한 가나안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는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서 자신들의 두려움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집중했기에, 불순종에 빠지지 않았고, 믿음이 약해지지도 않았습니다. 삶 속에서 크고 두려운 현실의 벽을 만나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말씀을 굳게 붙잡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그런 상황에 놓일수록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기적을 베풀어 주시길 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체험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체험에 의지하는 신앙은 더 큰 현실의 벽을 만나면 힘을 쓰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그래서 과거의 놀라운 체험을 하고도 교회를 떠나고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사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됩니다. 물론 신앙의 신비한 체험들도 믿음에 도움을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신앙의 신비한 체험들이 있다면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더 복되게 하는 것은, 시편 1편 기자의 고백과 같이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신앙의 신비한 체험보다 말씀을 더 사모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