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 목사

이용표 목사

[ 고린도전서 12장 29-31절 ]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29-31

이야기를 들어주는 국수집에서 이야기 손님과 대화를 나눌 때,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을 풀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그 분들 중 자신이 잘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남은 삶을 잘 살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말씀과 더불어서 나눠보고자 합니다.

잘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잘 산다는 것을 사람들은 보통 성공적인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잘 살기 위해서 또는 성공하는 삶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나 신념, 마음가짐, 또는 소유물 등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지나온 삶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삶을 것입니다. 그 기준으로 볼 때, 과년 나는 잘 살아 왔는가? 또는 잘살고 있는가? 또는 남은 생을 잘 살아낼 수 있다는 여유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공적인 삶에 대한 두 가지 기준

내가 과연 잘 살았는가? 또는 잘 살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기준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속적인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적인 기준입니다. 세속적인 기준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들입니다. 재산을 많이 모았는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명성이나 업적을 이루었는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삶을 살았는가? 등등의 기준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반면에 신앙적인 기준은 믿음을 잘 지켰는가?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면서 살았는가?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봉사하고 구제하며 살았는가? 복음을 전하면서 살았는가? 등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삶을 평가할 때, 그 조건이 세속적일수록, 우리 마음에는 실패와 좌절의 마음이 더 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기준은 늘 남들과 경쟁하고 비교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월감을 갖거나 열등감을 갖게 만들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시기하고 질투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때 신앙적인 기준들에 초점을 맞추면, 세속적인 성공이 주는 실패와 좌절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속적인 성공의 기준들은 매우 현실적이며 피부에 와 닿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느냐 하면, 신앙적인 기준들로 세속적인 성공을 이루려고 하는 잘못을 저지르게 됩니다.

신앙적인 기준으로 세속의 성공을 꿈꾸었던 고린도교회 성도들

그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의 모습을 고린도교회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 흔히 은사장이라고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성령강림 사건이 있은 후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강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성령님의 선물로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린도교회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는데, 문제는 그들이 받은 은사들로 인해서 그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기 보다는 오히려 교회에 분란을 일으켰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셨던 은사들의 목록이 고린도전서 12장 7-10절에 나옵니다.

7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 12:7-10

은사를 주신 목적

7절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은사를 주신 목적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유익하게” 하시는 데 있었습니다. 한편, 고린도전서 14장 26절에서는 그 모든 은사들이 덕을 세우기 위함에 있다고 부연하고 있습니다.

26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까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 14:26

즉,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주신 까닭은 교회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가지 은사들을 가지고, 서로 자랑하고 경쟁하면서, 자신을 높이려고 하고, 시기와 질투로 서로 다투고 분쟁하였던 것입니다. 그 은사들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유익과 덕을 세워야 했는데, 그들은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왜 분쟁하였을까요?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한 셈입니다. 그 능력으로 자신을 높여서, 좀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남들에게 좀 더 인정을 받고, 자신의 이름으로 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을 높이기보다 깎아내리고,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분란을 일으키고 다투었던 것입니다. 이런 마음은 사실,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마음과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점을 우리가 마음에 잘 새겨야 합니다. 신앙을 가지고도,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도 우리는 얼마든지 세속의 영광과 성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방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이 그 방언을 은근히 과시하면서, 방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난한다면, 그는 그 은사로 자신의 세속적인 성공을 이루려는 마음을 품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그런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더욱 큰 은사는 무엇일까요? 그것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설명해 주시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는 말씀은 바로 사랑할 수 있는 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사모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은사가 다른 은사와 다른 점

이 사랑의 은사,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다른 은사들에는 없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교회의 분란을 끝내는 힘에 있습니다. 사랑은 모든 은사들이 그 목적대로 사람과 교회에 유익하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사랑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다른 모든 은사는 쓸모가 없는 것이 됩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사랑이 없으면,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해도 쓸데없는 소리가 되고 맙니다. 사랑이 없으면 예언의 능력이 있어서 모든 비밀과 지식을 말하고 산을 옮기더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들여 구제를 하고, 자신의 몸을 희생하더라도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왜요? 사랑이 없으면 그 모든 것들이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겉으로는 신앙적인 성공을 추구한다 하여도, 실제로는 세속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둘째, 사랑은 다른 은사들과 달리 영원히 지속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 13:8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데 사용했던 하나님의 은사들은 결국 그 끝이 있고, 결국 사라져 없어지는 것들입니다. 신앙적인 성공의 조건들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사람들이 좇는 세속적인 성공의 조건들은 어떻겠습니까? 결국에는 모두 사라지는 것들이지요. 물질이 주는 만족과 즐거움도 끝이 나고, 유명세를 얻고 권세를 누리더라도 그 모든 것은 썩어 사라지는 것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치거나 폐하거나 끝남이 없습니다. 8절 말씀에서 하나님을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다른 은사들과 달리 영원히 지속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마지막에 성공하는 사람은, 잘 살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사람은 사랑의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 사랑은 삶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사랑이 드러나는 모습을 보면, 사랑이 어떻게 사람과 교회에 유익을 주고 덕을 세우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랑은 참아 주되, 오래 참아줍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며, 자신의 것을 자랑하지도 않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부족하고 힘이 없더라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피해를 보고 손해를 보더라도 분노하고 성질을 내지 않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불의를 기뻐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입니다. 그래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참고 인내하며 견뎌낼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을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우리 삶을 본다면,

정말 잘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성공하는 삶이 무엇일까요? 행복한 삶이 무엇일까요? 살아 온 삶을 평가하는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며, 남은 생을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세속의 성공과 행복은 무엇인가 잘 하는 능력과 재능, 그리고 무엇인가를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유리합니다. 그래서 사실 세속의 성공은 소수의 사람들이 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소수에 들어가지 못하면, 실패와 좌절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그 성공이 가능성은 희박해질 것입니다. 세속의 성공 조건을 얻기기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젊은이들은 불안과 우울감에 시달립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신앙적인 관점에서의 성공과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은사로 세속적인 성공을 이루고자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속의 성공을 이루지 못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의 성공은 세속의 것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은사, 즉 사랑하는 것은 세속의 성공에 필요한 조건들이 없어도, 우리는 그 능력을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고, 남들이 알아주는 위치에 있지 않아도, 많은 지식과 경험이 없어도, 건강이 없어도, 나이가 많아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금도 성공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나의 삶에서 사랑이 부족했다면, 이제라도 열심히 사랑하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해도 늦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월이 단 하루일지라도 우리는 사랑하며 살 수 있습니다. 만일 사랑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오늘 주신 말씀과 같이 그 사랑의 능력을 사모하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느 때이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참된 성공과 행복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남은 생은 사랑함으로 성공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