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 목사

[ 요엘 2장 27-28절 ]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엘 2:27-28

과학이 발전한 오늘날에는 수많은 자연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바람은 왜 불고, 비는 왜 오는지, 파도는 왜 치고, 계절은 왜 바뀌는지 많은 것들이 과학적으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이런 과학의 발전은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바꿔놓았어요. 그래서 기우제를 드린다던가 배를 띠우기 전에 용왕에게 제사를 지낸다거나 하는 일들은 신앙적으로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굉장히 어리석고 무식해 보이는 일이 되지 않았습니까. 과학적인, 즉 원인과 결과가 있는 자연현상을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어 보이는 거죠. 그래서 이런 샤머니즘과는 많이 다른 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이 죄를 져서 자연적인 재앙이 왔다는 종류의 이야기를 아주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인 이야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자연은 그냥 과학적인 자연법칙에 따르는 것이지, 거기에 어떤 신적인 힘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성경적이지 못하고 기독교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자, 그렇다면 요엘서 1장 3-4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 보시겠습니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말하고 그 자녀는 후세에 말할 것이니라

요엘 1:3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을 철저하게 기억하라는 말씀이죠. 자 그렇다면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요?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요엘 1:4

팥중이, 느치, 황충이는 모두 메뚜기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바람을 타고 날라온 메뚜기 떼가 유다의 모든 곡식을 먹고 또 먹고 또 먹는 재앙을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메뚜기 떼가 많아진 것, 바람이 유다 땅으로 불어서 메뚜기 떼를 옮겨간 것 모두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겠지만, 성경은 이것을 하나님이 내린 징벌이라고 요엘 선지자를 통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요엘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남유다의 선지자였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은 이 요엘의 시대와 같이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던 때에만 일하셨을까요?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자연현상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어질수 있을까요?

과학자들은 자연법칙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즉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간다는 것을 발견하고 설명할 수는 있지만, 왜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는 자연법칙이 생겼는지 그 법칙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답을 줄 수는 없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요.

온 우주 만물의 법칙, 지구가 돌고 낮과 밤이 오고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파도가 치고 태풍이 오고 하는 모든 법칙은 하나님이 정하셨고 하나님이 이 모든 자연법칙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시는 성경의 저자인 요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이름을 가진 요엘은 하나님이 그 자연법칙을 이용하셔서 패역한 백성인 유다의 자손들을 징벌하고 계심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메뚜기 떼로 인한 재앙을 설명한 요엘은, 동시에 가뭄으로 인한 재앙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연현상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잊은 유다 백성들을 각성시키시고 징계하시고 자신들의 죄를 돌아보게 만드셨다는 것을 요엘이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수없이 많은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과학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는 이유로 자연재해의 원인에 대한 과학적 설명, 예를 들면 “온실가스가 너무 많아져서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고 그로 인해서 자연재해가 생긴다” 라고만 생각하며 그저 손놓고 남의 탓만 하면 되는 걸까요? 그저 무심하게 중국 탓, 미국 탓만 하고 있으면 되는 걸까요? 우리는 이처럼 무시무시한 자연재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일까요.

요엘은 이처럼 무서운 자연재해 앞에서 매우 비과학적이어 보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한 징벌로 인한 자연재해 앞에, 먹을 것이 끊어지고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린 백성들에게 요엘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그 뒤에 복을 내리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요엘 2:12-14

자, 무서운 자연재해 앞에서 애통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회개할 것을 요청하는 요엘 선지자는 자연법칙이라고는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 무식한 옛날사람에 불과한 것일까요. 과학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옛날 사람일 뿐일까요. 혹시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 우리가 악해서 이렇게 날씨가 더워지고 빙하도 녹고 홍수도 나고 토네이도에 태풍에 난리가 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등져서 전염병도 생기고 가뭄과 기근이 세상을 덮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혹시 하나님이 마음을 돌리시고 용서하실 줄 누가 압니까” 라고 이야기 한다면 이 말에 여러분은 과연 몇 퍼센트나 공감하십니까. 공감하신다면 어느부분에 공감하십니까. 나의 죄 때문에 오늘날의 자연재해들이 생겼다는 것에 공감하십니까. 아니면 내가 회개하고 기도하면 자연재해가 멈출 수도 있다는 것에 공감하십니까.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이 자연현상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 정도에만 공감하십니까.

자, 이제 엄청난 자연재해 앞에서 자신들의 죄악됨을 인정하고 눈물로 회개할 것을 촉구한 요엘은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온 백성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응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금 긴 성경구절이지만 함께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회개한 백성이 하나님께 어떤 응답을 얻었는지를 생각하시며 화면을 보시고 함께 읽으시길 권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나라들 가운데에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내가 북쪽 군대를 너희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니 그 앞의 부대는 동해로, 그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갈 것이라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하시리라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요엘 2:18-26

자, 이 말씀은 무엇입니까. 유다 백성이 패역하고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여서 자연재앙으로 징계하셨는데, 이 백성들이 이제 돌아와 회개하며 하나님께 긍휼을 요청하며 금식하며 애타게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신다는 겁니다. 재앙이었던 자연이 회복되고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하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시는 거죠. 재앙이었던 자연환경은 변하여 복이 되어지고 유다를 공격하던 적들도 물러가는 그러니까 자연뿐만 아니라 삶의 주변 환경도 변화하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재앙과 고통, 회개와 기도로 인한 회복과 풍요, 이것을 경험한 유다인들에게는 이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요.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

요엘 2:27

하나님과 연결된 백성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삶속에서 경험함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자,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게된 이들. 죄와 재앙과 회개와 기도와 그에 따른 회복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안 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납니까.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요엘 2:28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2000년전 패역한 이스라엘, 나라도 빼앗기고 고통스럽기 짝이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는 커녕 형식적인 율법주의에 빠져있던 그들에게 성자 하나님 예수께서 가난한 목수로 그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선택하여 부르시고 함께 먹고 마시며 그들과 동행하셨고 그들을 가르치시며 3년간의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과 함께 산 것입니다. 그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지 3일만에 부활하사 40일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알리셨지요.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1:3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고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배운 제자들, 즉 하나님을 알게 된 제자들은 승천하시는 예수님을 본 후 무엇을 합니까?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지요.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사도행전 1:13-14

고통. 죄로 인한 고통, 자연적인 고통, 환경적인 고통.
만남. 여호와 하나님과의 만남, 성자 예수님과의 만남.
경험. 재앙과 회복을 통해 얻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 함께 살아감으로 얻는 예수님에 대한 경험.
배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배움, 예수님을 통한 하늘나라에 대한 배움, 성경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배움
그리고 기도.
자 이러한 과정들의 끝은 무엇입니까.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사도행전 2:1-4

하나님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알게 된 자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 설때에 얻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그리고 이제 성령이 충만한 베드로가 성령님의 임하심을 받고 요엘 선지자가 했던 말, 그 예언의 말들을 예수님을 죽였던 수많은 군중앞에 서서 담대하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사도행전 2:17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를 알고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베드로가 만민을 향하여 성령의 충만함이 자신이 받은 것처럼 당신들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베드로가 선포한 그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요엘이 선포한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그 전에 하나님에 대한 앎, 하나님을 아는 것이 있어야 할 것임은 두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지금 그것을 살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지극히 잘못된 풍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앎과 성령의 충만함을 분리하려는 시도입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에 대한 앎이 중요하다고 해요. 성경에 대한 언어적 이해, 신학적인 고찰, 역사적인 맥락등에 열심을 다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성령의 충만함이 중요하다고 해요. 성령의 많은 은사, 눈물, 감동, 찬양등에 열심을 다하죠. 자, 여러분은 어느쪽이십니까. 어떤 크리스찬이 더 온전한 크리스찬일까요.

우린 이미 그 내용을 살펴보았어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성령의 충만함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자가 기도를 안 할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성령의 충만함과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분리하려는 시도는 참으로 어의없는 무의미한 시도인 것입니다.

이제 끝으로 요엘과 베드로가 함께 선포한 그 말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는 성경구절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내 영”은 하나님의 영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구약에서는 히브리어 “루아흐” 신약에서는 헬라어 “프뉴마”로 쓰였는데요. 둘다 호흡, 숨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마른뼈를 살리는 생기도 이 단어 “루아흐” 입니다. 하나님의 호흡, 성령은 죄로 인해 죽은자, 마른 뼈를 살리는 생명의 호흡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 성령이 임하면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너희 자녀들은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여기서 너희 자녀들은 그냥 어린이를 말하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 아닙니까. 성도는 하나님의 자녀죠. 이 하나님의 자녀가 장래 일을 말한다라고 했는데, 여기쓰인 단어는 예언하다라는 뜻인 동시에 선지자 노릇을 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령이 충만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요, 선지자와 같이 마지막 때를 예언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의 다시오심을 선포한다는 말입니다.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늙는다는 것 자체가 구약에서는 복을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또 존경받는 자를 뜻하기도 하고, 지도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교회내에서 존경받는 자, 선함으로 복받은 자, 리더들이 성령이 임하면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다는 겁니다.

“젊은이는 이상을 본다”

젊은이는 일꾼을 의미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젊은이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하나님의 일꾼들입니다. 우리 말 “이상”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하지욘’은 하나님께 아주 특별하게 선택된 자들만 받았던 직접적인 계시인 환상을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이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일꾼들을 이끌어 가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 말들을 종합해 보면, 하나님을 알고 기도하는 자가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과 교통하며, 선지자처럼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면 마지막 때, 예수님의 다시오심과 세상끝날이 오는 겁니다. 그 마지막 날에 우리 좋은친구교회 모든 성도님들은 요엘이 말한 것처럼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두려움과 슬픔이 아닌 기쁨과 감사함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