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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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기 2장 10-12절 ]

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룻 2:10-12

룻기의 교훈
룻기는 모압 지방의 이방 여인 룻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룻기의 내용은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습니다. 그 스토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베들레헴에 살던 유다 족속 엘리멜렉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살던 곳에 흉년이 들자, 그는 자신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이주를 하였습니다. 그의 가족은 모압 지방에서 십 년 정도를 살았는데, 그 사이 엘리멜렉이 먼서 생을 마감하였고, 두 아들은 모압 여인 오르바와 룻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만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어머니와 아내를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의 가정은 먼저 과부가 된 나오미와 역시 과부된 며느리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나오미의 고향 땅에 하나님께서 풍년이 들게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는 모압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그러면서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에게 각각 친정으로 돌아가서 새로운 남자를 만나 재가를 하고 새로운 삶을 살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이에 오르바는 처음에는 시어머니와 함께 하겠다고 하다가, 마음을 돌이켜 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룻은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룻 1:16).”라고 고백하며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도착하였습니다. 베들레헴에 돌아왔지만, 과부 신세인 나오미와 룻은 살길이 막막한 처지였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보리추수를 시작할 시기였기 때문에 룻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 보리를 추수할
때 떨어지는 이삭을 주우러 보리밭으로 나갔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율법을 주실 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추수를 할 때,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남겨두라고 하셨습니다. 룻은 그렇게 남겨진 이삭을 주우러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룻이 나간 밭은 우연히 보아스라는 사람이 소유한 밭이었습니다. 이 보아스라는 사람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그 지역의 유력한 가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룻이 그의 밭으로 간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보아스는 처음 보는 여인에 대해 부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고, 그들은 그 여인이 모압지방에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온 모압 출신의 여인이라고 알려줍니다. 이에 보아스는 이미 나오미와 그 며느리 룻에 대해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룻에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그 상황에서 보아스와 룻이 나눈 대화 내용입니다. 룻은 이방 여인인 자신에게 왜 친절을 베푸냐고 물어봅니다(10절). 그러자 보아스는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11절).”고 말하며 “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12절).”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보아스의 이 말은 그의 입을 통하여 룻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과 다름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룻이 행한 일에 보답하시고 상을 주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룻이 행한 일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과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입니다. 룻은 비록 과부이지만 아직 젊었기에 새출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시어머니가 친정으로 돌아가 새로운 남편을 만나 재가를 하라는 기회를 주었음에도, 가족이 된 시어머니에 대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자신의 희생하여 기꺼이 모압 지방에서 베들레헴까지 시어머니와 동행하기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르면서 한 고백으로 볼 때, 룻은 시어머니 뿐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실함도 지키고자 노력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룻에게 하나님은 보아스의 말대로 룻이 행한 일에 보답해 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룻이 밭에서 있었던 일을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말하자,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신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율법에 따라 엘리멜렉 가문의 기업을 이어줄 인물인 것을 알고,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지 말고 추수가 끝날 때까지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당부합니다. 이에 룻은 시어머니의 말에 따랐고, 추수가 끝나고 보아스가 곡식의 낟알들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느라 타작 마당에 머물 때에 룻이 단장을 하고 가서 보아스에게 자신의 가문의 기업을 이어주길 부탁하였습니다. 그러자 보아스는 기꺼이 그 기업을 이어주겠다고 하였고, 자신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음을 알고 그에게 먼저 의사를 물어보았으며, 그가 거절하자 룻의 요청대로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엘리멜렉의 가문이 이어지고, 룻에게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이라는 인생의 뜻밖의 반전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두 며느리의 인생을 먼저 걱정해주는 시어머니 나오미의 따뜻한 인간미와 그런 시어머니에 대한 도리를 다함으로써 사람과 하나님을 정성을 다해 섬기려고 하는 룻의 신실함과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에 따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친족나오미와 룻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보아스의 모범적인 신앙과 윤리의식을 볼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나오미와 룻, 보아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과 그 믿음의 실천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하며 믿음의 사람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음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룻기 1장 1절을 보면,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룻기의 시대적 배경
[룻기 1:1]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룻1:1

이 말씀에서 주목해서 볼 부분이 있는데, 바로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입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의 상황은 사사기를 읽어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사사기를 생각하면 우리는 삼손과 기드온, 드보라와 같은 영웅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사실 사사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를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실패도 그냥 실패가 아닌 참혹하고 절망적인 결과에 다다른 선민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를 보여줍니다. 룻의 이야기가 바로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은, 나오미와 룻, 보아스의 이야기가 절망의 시대를 비추는 하나님의 희망의 메시지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가 보여주는 이스라엘 민족의 실패는 무엇이지요? 사사기 1장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나안 원주민을 몰아내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 사후 영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지도자가 없는 이스라엘 민족은 각 지파별로 분배받은 지역에서 가나안 원주민과 전쟁을 지속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다 몰아내지 못하고 그들을 종으로 부리는 것에 만족합니다. 그리고 그들과의 공존을 택하게 됩니다. 그 결과 약 300년의 사사 시대 기간에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는 일정한 패턴이 자리 잡게 됩니다. 사사기 2장은 그 패턴이 어떤 것이었는지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2:16-19]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6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17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
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18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삿2:16-19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가 죽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놀라운 기적을 알지 못하는 세대가 각 지파의 지도자가 되자, 그들은 곧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의 이방신들을 좇아 섬기는 배교행위에 빠집니다. 이에 하나님은 남겨진 가나안의 이방민족들을 들어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때 그들의 압제에 괴로워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사사들을 세우셔서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평화가 오면,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이방신을 섬기며 그들의 음행과 부도덕한 삶을 따라 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다시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민족은 다시 부르짖고, 하나님은 또다시 사사를 보내 구원하시는 이런 과정이 사사 시대에 하나님과 이스라엘민족의 관계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는 거듭되는 역사의 패턴이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과 타락이 더 악화되는 방향으로 흘러갔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인 17장에서부터 그 불순종과 타락의 참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데, 그 내용을 가만히 보면 오늘날의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과 타락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과 타락에 대한 결론적인 이야기는 한 가문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17장에는 미가라는 인물에 대해 나오는데 그는 어머니의 은을 훔쳤다가 되돌려 줍니다. 그런데 그 은을 돌려받은 미가의 어머니는 아들을 훈계하기는커녕 그 은의 일부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십계명을 어기고 신상을 만들어 아들에게 갖다 줍니다. 이에 미가는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다가 나중에 베들레헴 출신의 레위인이 자신의 집에 오게 되자 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그를 자신의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을 줄로 알았기 때문입니다(사사기 17:13).

이후 18장에서는 분배받은 땅을 잃어버린 단지파가 새로운 정착지를 물색하기 위해 보낸 단지파의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에 갔다가 그 레위인 제사장을 보고는 나중에 무리를 이끌고 다시 와서 무력으로 그 레위인과 미가의 신상들을 빼앗아버린 사건이 소개가 됩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제사장을 삼고, 빼앗으며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장부터는 더 참혹한 종교적, 도덕적 타락의 참상을 보여줍니다. 에브라임산지에 사는 레위 사람이 첩을 두었는데, 그 첩이 행음하고 친정으로 돌아가 4개월을 보냅니다. 레위 사람이 처가에 가서 첩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베냐민 지파의 성읍 기브아에 가서 하룻밤을 보내려는데, 그 성읍의 불량배들에 의해 그 첩이 집단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죽게 됩니다. 그러자 그 레위인은 그 첩의 시신을 가지고 집에 돌아가서 12토막을 내어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냅니다. 이를 본 각 지파는 그 참혹한 일을 보고 연합군을 결성하여 베냐민 지파와 전쟁을 합니다. 종교적, 도덕적 타락이 참혹한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적, 도덕적 타락에 대해 사사기는 그들이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합니다.

[사사기 17:6, 21:25]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삿17:6, 21:25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모습은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도 너무 쉽게 접하는 것 같습니다. 미가처럼 복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성경 말씀을 제멋대로 해석하고 이용하기도 합니다. 신앙이 무너지니까 도덕적으로도 타락하여 사회는 점점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어가고, 다들 경쟁하기에 바빠서 선하고 옳은 삶을 살기 보다는 돈과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주위에 늘어만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타락과 범죄가 일상이 되어 가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사사시대와 같이 희망을 보기 어려운 암울함이 절망감과 슬픔,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같은 시대에도 룻을 비롯하여 나오미와 보아스와 같이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심으로 타인을 섬기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 대한 책임을 다하려는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음을 룻기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자신들의 마음에 옳고 좋은 대로 살아가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마저 왜곡하고, 선을 행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그들을 돕기보다, 자신의 이익과 탐욕을 위해 타인의 것을 빼앗고 살육을 자행하는 타락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도, 그래서 그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갖기가 어려운 그 순간에도 변함없이 세상의 주권자로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모든 계획들을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절망의 시대에 희망을 볼 수 있음을 룻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각인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 희망은 룻의 행복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 희망을 메시아의 계보로 이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룻기 4:13-17]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16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17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 4:13-17

하나님은 룻과 보아스의 후손으로 다윗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그 다윗을 혈통에서 메시아가 태어나시게 됩니다. 룻에게 네가 행한 일에 보답을 하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놀라운 일들로 성취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도 교회가 교회를 믿지 못하고, 서로 비난하며 자신의 신앙이 옳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마치 미가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제사상을 삼아 세웠듯이 목사 또는 장로가 교회를 사유화하는 모습도 많이 접하게 됩니다. 사회를 지켜줘야 할 교회가 타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희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암울한 마음을 갖고 살아갈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신앙인들은 마치 선택받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의 신앙과 문화에 물들어 갔듯이 겉은 크리스챤이지만, 속은 세상의 가치관에 물들어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면, 우리도 희망을 잃고, 세상의 가치관에 마음이 흔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와중에도 신실한 사람들을 찾아 하나님의 계획을 성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이심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지근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룻과 같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보상을 받는 일들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