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 목사
[ 열왕기하 5장 10-15절 ]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왕하 5:10-15
오늘 말씀은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주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의 메시지를 주는 것으로 설명이 됩니다. 오늘도 순종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합니다만, 오늘은 특별히 순종을 가로막는 생각과 감정들에 대해 살펴보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를 안고 있었던 나아만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는 열왕기하 5장 1절부터 시작합니다. 1절 말씀을 보면, 나아만은 자신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삶의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열왕기하 5:1]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왕하 5:1
나아만 장군은 자신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낸 공로로 왕 앞에도 크고 존귀한 대접을 받는 아람 국가의 큰 용사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나병환자였습니다. 나병환자에 사용된 단어는, 사실 일반적인 피부병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그 병을 낫기 위해서 당시에 아람과 적대관계에 있었던 북이스라엘까지 찾아간 것을 보면, 그가 앓았던 것은 그를 아주 괴롭게 만드는 지독한 피부질환이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 말씀에는 나오지는 않지만, 추측하건대 그는 그 질병에서 낫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을 것입니다. 아람 사람들의 모든 의술을 써보았을 것이고, 의술로 안 되니, 자기들이 믿는 신의 힘을 빌리는 주술도 써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온갖 민간요법을 다 해보았겠지요. 나아만은 자신이 가진 부와 권력, 경험과 지식을 사용하여 지독한 피부질환이라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겠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그때 그의 아내의 몸종 노릇을 하고 있는 북이스라엘에서 잡혀온 한 여자 아이를 통해 많은 기적을 행한 선지자 엘리사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람 왕의 허락을 받아 북이스라엘의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아람 왕의 친서를 들고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나아만은 마침내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본문 10절 말씀에 나옵니다.
[본문 10절]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왕하 5:10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 나아만에게 자신의 병을 고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은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는 것입니다. 사실 요단강이 무슨 질병 치료의 특별한 효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요단강에 들어가서 일곱 번 자신이 몸을 씻으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본문 11, 12절 말씀을 보면, 그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눈앞에 두고 그만 돌아서고 맙니다.
[본문 11, 12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왕하 5:11-12
그는 하나님께서 치료 방법을 알려주셨음에도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돌아섭니다. 순종을 거부하였을 뿐 아니라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납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앞에 두고, 돌아서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점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삶도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 나아만의 생각과 달랐던 하나님의 인도하심
나아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게 만들었던 것은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들었을 때 그가 가졌던 마음에 있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가 자신의 병을 고쳐줄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엘리사를 찾아갈 마음을 가졌을 때, 그는 앞으로 진행될 일들에 대해 이러이러할 것이라는 자기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이 본문 11절에 나옵니다. 그는 엘리사가 나와서 자기를 직접 만나고, 엘리사가 자신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어떤 경건한 예식을 치를 것으로 예상을 했던 것이지요. 11절 말씀에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라고 하는 것은 나아만이 엘리사가 일종의 제사와 같은 특별한 종교의식을 통해서 자신의 병을 고쳐줄 것으로 예상하였음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나아만의 생각이었습니다. 이런 생각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아만은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얼마든지 그런 예상을 하고 그런 기대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삶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때, 또는 어떤 일들을 계획하고 준비할 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그 문제가 어떻게 해결이 될 것인가에 대한 예상과 기대를 갖습니다. 또한 계획하고 있는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서도, 그 일들이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인가에 대하여 여러가지를 상상하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문제가, 삶의 일들이 언제나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법과 다른 길로 나를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그 길이 좋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만일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내 생각과는 전혀 다른 엉뚱하고 당황스런 방향으로 흘러가거나, 내 생각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느껴질 때는 불안을 느끼며 근심하고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으며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고, 믿음의 길을 떠나 불순종의 길로 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아만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그는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듣습니다. 엘리사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 앞에까지 찾아왔는데, 엘리사는 얼굴도 내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통해 알려주는 그 치료 방법이라는 것도 경건하고 엄숙한 제사의식이 아니라, 그저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을 씻고 나오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 자신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나아만의 반응
엘리사가 얼굴도 내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시켜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고 나오라는 말을 전했을 때, 나아만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일단은 아람의 권력 서열 2위인 자신을 만나주지도 않으니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방법이라고 알려주는 것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말도 안 되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것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환경과 조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기 나라에는 요단강보다 훨씬 크고 넓은 아바나강과 바르발강이 있는데, 고작 이런 요단강에서 씻는 것이 무슨 치료가 되겠느냐라는 생각도 들기 시작합니다. 이런 마음을 갖게 되니까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것입니다. 그런 분노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보지도 않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내려버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답은 무엇입니까? “내 병을 여기서는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가 할 것은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는 해결되지 않은 자신의 삶의 문제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순종의 복
그런데 그런 나아만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십니다.
[본문 13, 14절]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왕하 5:13-14
나아만이 분노하며 돌아가려고 할 때, 그의 종들이 나아만에게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당신에게 더한 일을 하라고 하였더라도 그것을 행함으로 병이 낫는다면 그 말씀에 따르지 않았겠습니까라고 말했을 때 나아만은 비로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내 생각에는”이라고 하면서 불순종했던 그 생각과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대한 분노의 마음을 내려놓으니 비로소 순종할 수 있었고, 그는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벗어나기를 원했던 삶의 문제에서 놓임을 받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은 왜 나아만에게 은혜를 베푸셨을까?
하나님은 왜 나아만을 돌이키게 하시고, 그 지독한 질병에서 낫게 하셨을까요?
[본문 15절]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왕하 5:15
열왕기하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 말씀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북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아람이라는 이방 나라의 군대 장관입니다. 이방인인 그가 지금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1절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나아만으로 하여금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나옵니다. 하나님은 나아만 이야기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 뿐 아니라, 온 세상의 나라들까지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영광을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나아만으로 하여금 아람의 군대 장관이 되게 하시고, 그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종들을 통해 순종의 길로 돌이키도록 하시는 은혜를 베푸시고, 그를 질병에서 낫게 하심으로 그의 입술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과 다르게 나를 인도하실 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삶의 문제들을 놓고 또는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어느 정도 예상을 하며 그렇게 이루어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도 나아만과 같이, 내 생각과 다르다는 것에 대해 불평하고 원망하며 분노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의 삶의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영광이 드러나는 길과 방식은 무엇일까?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나의 생각은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가 다소 실수를 하고 넘어지더라도 하나님은 나아만에게 하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 돌이키시는 은혜를 베푸시고 반드시 그 일을 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내 생각과 전혀 다르게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다고 느껴질 때, 걱정하며 그 결과에 대해서 미리 부정적으로 단정을 내리고 돌아설 것이 아니라. 비록 당장은 근심걱정이 쌓이고 불안하고 두려울지라도 반드시 나타내실 하나님의 존재하심과 영광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순종하고 인내하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가는 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