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목사

이인엽 목사

[ 열왕기상 11장 1-3절 ]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왕은 후궁이 칠백 명이요 첩이 삼백 명이라 그의 여인들이 왕의 마음을 돌아서게 하였더라

열왕기상 11:1-3

마라톤을 잘 아시죠. 42.195km 의 거리를 달려야 하는 경기입니다. 특별한 기교나,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경기가 아니죠. 원래 사람은 한꺼번에 그렇게 긴 거리를 뛸수 있게 되있지 않아요. 별 기교도 안 필요해 보이는 마라톤은 하지만 아주 충분한 준비와 훈련없이는 승리는 그만두고 완주도 할수 없는 경기 입니다. 반면에 잘 훈련만 하면 제법 나이들어서까지 참여할 수 있는 경기이기도 하죠. 사람들은 흔히들 인생을 마라톤에 비교하곤 합니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인생을 훌륭하게 완주하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겠죠. 그저 넋놓고 살아서야 인생 똑바로 살기가 만만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할겁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솔로몬이라는 인물은 누구입니까.

열왕기상 11장의 내용을 기준으로 보면 솔로몬은 42.195km를 거의 다 뛰어 놓고 결승점 앞에서 꼬꾸라진 사람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랬을까요. 솔로몬은 심지어 성경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시편 중 일부, 잠언의 일부 , 그리고 아가와 전도서를 썼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성경의 저자 모세, 다윗. 예수님의 제자들, 사도 바울 등등, 아니 누가 성경까지 써놓고 하나님께 등을 돌린 인물이 있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그랬습니다. 그래서 성경속에 나오는 사람들중 가장 의외의 모습을 보여준 인물중에 하나가 솔로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솔로몬이 구원을 받았는가 하는 문제는 자주 논쟁의 주제가 되곤 합니다. 맨 마지막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의 생각으로는 충분히 의심이 들만한 이야기이지요.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은 오늘 함께 읽으신 열왕기상 11장의 내용으로만 보면 솔로몬은 그저 타락하고 실패한 채로 죽은 것 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록한 전도서가 열왕기상 11장 내용 이후에, 즉 타락한 후에 쓰여진 것인가 아니면 타락 전에 쓰여진 것인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 의견이 분분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도서의 시작은 어떻습니까.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도서 1:1

깊은 타락과 쾌락에 빠져본 사람의 고백같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저는 솔로몬이 타락후 회개하며 전도서를 기록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열왕기상 11장을 기준으로 그러니까 솔로몬의 타락과 실패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대로 공의를 실현하고 자신의 왕권을 곤고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청년 솔로몬은 자신의 냉철함과 자신의 강인함, 결단력, 자신의 지혜에 도취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럴만한 상황도 아니었겠죠. 어렵게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사방에서 피바람이 부는 무시무시한 상황속에서 아무런 기반도 없고 힘있는 외가집도 없는 젊다 못해 어린 솔로몬이 신생 왕국의 왕이 된겁니다. 무슨 뽐내고 자랑하고 잘난척할 그럴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얼마나 살벌하고 무서웠을까요. 그 와중에 누구를 믿을수 있었을까요. 물 한모금 밥 한끼는 맘놓고 먹을수 있었을까요. 긴긴밤 잠은 제대로 잘수가 있었을까요. 자고 일어나면 ‘주여 오늘을 또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절로 쏟아져 나오지 않았을까요. 이 어려운 순간 청년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을 붙듭니다.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열왕기상 3:3-4

이 본문에서 나오는 솔로몬의 사랑을 표현한 ‘아헤브’라는 단어는 그냥 좋아하는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충성을 포함한 헌신, 열정적인 사랑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물론 구약의 제사가 오늘의 예배와 똑같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우리도 늘상 ‘하나님 사랑해요’ 이러면서 살지 않습니까. ‘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오늘부터 1000번 연속으로 예배를 드립시다..’ 라고 제가 얘기 한다면 여러분 몇번이나 그 예배에 나오실수 있겠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예배하는 것은 기쁜 일인 동시에 무척 애를 써야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했으면 일천 번제를 드립니다. 물론 역대하 1장에 나온 성경내용을 바탕으로는 솔로몬의 일천 번제가 일천번의 번제가 아니라, 그러니까 제사의 횟수가 천번이란게 아니라 일천마리의 제물을 잡아 드리는 제사를 드렸다는 해석이 좀더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어찌 되었건 솔로몬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였고 하나님과의 적극적인 교제를 상징하는 제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통치를 위해 사람과의 교통에 앞서 하나님과의 교통의 시간에 정성을 들였습니다.

하나님께 매어달리는 솔로몬을 여호와 하나님은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은 놀랍게도 솔로몬에게 필요한게 뭐냐고,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어보시죠. 성경속에서 흔하게 나오지 않은 장면이 지금 등장하고 있는겁니다. 솔로몬은 먼저 정중하게 자신을 왕으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고는 자신은 아직 어리니 수많은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할 능력을 달라고 구합니다. 역대하 1장 10절에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라는 구절로 솔로몬의 간구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 지혜에 대한 설명은 지난번 이동엽 목사님이 자세히 설명해 주신바대로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는 백성을 향한 솔로몬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지요. 간단하게 말하면 ‘네가 뭐가 필요하냐?’ 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니까 ‘저 사람들 도울 방법을 주세요’ 솔로몬이 이렇게 대답하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주신 첫번째 계명을 우리는 다윗의 유언을 통하여 확인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죠. 그렇다면 두번째 계명은 뭡니까.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솔로몬이 네 이웃을 사랑할수 있는 구체적인 능력을 지금 하나님께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앞에서 이웃을 사랑할 방법을 알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수없이 자괴감에 빠지곤 합니다. ‘난 왜 이거밖에 안되지.. 내 신앙 괜찮은거야? 아니 뭘 어떻게 해야 이웃을 사랑하는거지?’ 라며 혼란스러워 합니다.

반면에 솔로몬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 주세요, 그 능력. 주세요, 만 백성을 바르게 이끌어 갈수 있는 능력. 만 백성을 온전히 사랑할수 있는 능력 주세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웃을 사랑할 힘도, 이웃을 사랑할 능력도 구해서 하나님께 받는 것입니다. 스스로 만들려고 하니까 실패합니다. 사람은 이웃사랑을 능히 행할만큼 선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아름다운 솔로몬의 간구를 여호와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백성을 올바로 이끌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주셨습니다. 달라니까 주셨어요.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만들수 없는 지혜였으며, 사람의 지혜, 사람의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기도로 얻은 것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지식이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부귀와 영광도 주시지요.

하나님의 약속처럼 온 유다와 이스라엘은 강성해지고 그들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아지고 이스라엘 온땅에 풍요가 넘쳐 흐르고 온 백성이 먹고 마시며 즐거워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가 넘쳐나니까 잠언 삼천가지를 말하고 천다섯편이 노래를 지었습니다. 사람들이 솔로몬의 지혜,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오는 그 지혜의 말씀을 들으러 사방에서 모여 들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부흥입니다. 온 나라에 하나님이 주신 부흥이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은혜가 영적으로 물적으로 넘쳐 흐르는 거예요. 그 부흥앞에 그러나 솔로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조금도 교만하여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더욱 달려나아갑니다.

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원수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열왕기상 5:4-5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 언약궤를 옮겨온뒤 솔로몬은 뭐라고 기도합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열왕기상 8:27

솔로몬의 겸손함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그저 감탄스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뭐라고 기도합니까. “주님의 백성들이 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때, 주님의 백성들이 이 성전앞에서 기도할때, 여호와 하나님 하늘에서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이 사람들이요, 감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이 사람들이요, 감히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해요. 이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성전을 향해, 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때 손으로 만져지는 성전앞에서 기도할때 여호와 하나님이여 하늘에서 그기도를 들으사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향한 놀라운 믿음과 이해! 어리석은 백성들을 무시하는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백성을 향한 놀라운 사랑을 솔로몬은 그 부흥속에서도 잃지 않았습니다.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을 찾아와 그 부흥을 바라보며 감탄하며 뭐라고 말합니까.

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열왕기상 10:8

그냥 잘먹고 잘살기만 하는 부흥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넘쳐흐르는 부흥이 온 이스라엘 안에 가득한 것입니다. 저는 이 구절들을 보면서 기독교의 부흥과 함께 부흥했던 많은 나라들이 떠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영적으로나 물적으로나 부흥의 시대를 살아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바 여왕이 그 모습을 본다면 ‘복되도다, 복되도다’ 라며 부러움을 살만큼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이 주시는 풍요가 넘치는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 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가끔 지방출장을 다니며 수요일 저녁 시골길을 운전하며 달려갈 때가 있는데, 시골길 한편에 서있는 자그마한 예배당에 불이 켜져있고 그 교회 주차장에 차들이 가득 주차되어 있는 모습을 볼때가 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가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복되도다, 복되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여..’ 하며 지나갑니다. 물질적 부흥과 함께 말씀의 부흥 영적인 부흥이 아직 미국에 있는 거예요. 한국은 어떻습니까. 차고 넘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한 솔로몬, 그 백성을 사랑한 솔로몬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 전으로도 없었고
그 후로도 없을 놀라운 부흥과 은혜를 경험하게 했습니다. 이제 그는 그대로 가면 되는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한 이스라엘과 솔로몬 하던대로 하면 되는 겁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을 이룬 유럽, 미국, 한국.. 그저 하던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면 되는겁니다. 마라톤으로 치면 거의 다 온거에요. 그냥 결승점을 향해 조금만 더 가면 되는겁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나이들어서 하나님을 등집니다. 무슨 일일까요.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열왕기상 11:1

이 구절에서 사랑하다라고 쓰인 단어의 원문 역시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였다라고 쓰인 3장 3절의 단어와 같은 아헤브 입니다. 솔로몬은 수많은 이방여인들을 정략적인 결혼, 그러니까 이방인들과의 전쟁을 억제할 도구로서의 결혼을 넘어서 그 많은 여인들을 하나님 사랑하듯 아끼고 매어달리며 집착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피조물인 여인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바꿔버린 거예요. 금과 같이 소중한것을 내어 던지고 오물과 같이 더러운 것을 움켜 쥔겁니다. 그 큰 은혜와 부흥을 주셨는데, 그 큰 사랑과 지혜와 말씀을 주셨는데도 딴 사람도 아닌 솔로몬이 배은망덕하게 하나님을 등졌습니다.

솔로몬이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따르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따름이라

열왕기상 11:4-5

풍요뒤에 부흥 뒤에 배은망덕한 솔로몬은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들을 따라 온전함을 버리고 악의 길로 들어서서 경로를 이탈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성 가득한 인간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는데, 솔로몬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그 놀라운 일들을 구했는데, ‘아헤브’ 사랑의 대상이 창조주 하나님에서 피조물인 여인들로 바뀌니까 모든 것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 맞은편에 우상의 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온힘을 다하여, 무었을 사랑하는가의 문제는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수많은 피조물들, 세상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천국의 경로를 이탈하지는 않았는지 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열왕기상에 나타난 솔로몬을 바라보시며 인간의 연약함을 절절이 공감하며 스스로를 살펴 천국의 경로를 이탈하지 않는 은혜가 여러분들의 삶속에 차고 넘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