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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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8]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1-8

오늘은 예수님의 팔복 여덟 번째 시간으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는 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사실 엄청난 복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죄가 있는 인간이 하나님을 보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백성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출 19:21). 그리고 친히 모세 앞에 나타나실 때도 손으로 모세를 가려서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출 33:22). 그런데 예수님은 오늘 말씀에서 죽지 않고도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십니다. 위대한 선지자 모세도 직접 대면하지 못한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의 메시지입니까?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조건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방법

거룩하신 하나님은 구약시대 사람들에게 깨끗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죄를 씻는 제사의식을 행하게 하셨고, 깨끗한 것과 깨끗하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규례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제사의식과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구별하고 깨끗하게 하는 규례들에 더하여 장로들의 해석과 적용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정결의식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제사와 정결의식은 하나님 앞에서 죄와 더러움을 씻는 행위였습니다. 하지만 제사와 정결의식은 일회성에 그치기 때문에 계속 반복해서 행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나중에는 형식에만 집착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이 정결의식의 형식들을 가지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행위만으로는 청결할 수 없음을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 5:28]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님은 마음으로 생각만 해도 죄가 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적용해 보면,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청결하게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5:9]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초대교회 성도들 중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한 부류는 유대인 출신의 성도들이고 또 다른 부류는 이방인 출신의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유대인 출신 성도들 중에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유대인들이 지키던 율법과 전통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그들도 유대인들과 같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을 하였습니다. 방금 읽은 사도행전 말씀은 그런 유대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은 할례나 율법의 정결의식이 아닌 믿음이라고 분명하게 가르쳐주시고 있습니다. 앞에서 구약시대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와 더러움을 씻기 위해 제사와 정결의식을 반복적으로 행해야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제사와 정결의식은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구약시대의 제사와 정결의식을 통해 깨끗이 씻는 의식은 단번에 해결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나의 죄와 더러움도 모두 씻겼음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 마음이 깨끗하게 되는 것임을 사도행전 말씀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마음이 청결한 자는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씻어주셨음을 믿는 자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팔복을 살펴보면서 심령이 가난함을 깨닫고 자신의 힘으로 죄를 씻을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애통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다시 곁으로 불러주심으로 용서하시고 위로하여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곁으로 불러주셨다는 것은 곧 거룩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단번에 씻어주셨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보았습니까? 여러분 가운에 하나님을 본 적이 있는 분이 있나요? 만일 지금 누군가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고 말하고 다닌다면, 사람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요? 아마 오히려 다들 그를 이상하게 볼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님께서 마음이 청결하면 하나님을 본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을 본 적이 없다면 우리 믿음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러면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

‘볼 것임이요’라는 표현에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눈으로 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경험적으로 보는 것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의 실재를 오감과 전인격을 통해서 느끼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편지가 있습니다. 이 편지는 우리 사회의 다문화가정의 아픔을 그린 2011년에 개봉한 영화 ‘완득이’에서 주인공 완득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쓴 편지입니다. 영화에 나온 편지지를 보면서 편지 내용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완득이의 편지 내용]
윤하에게.. 요즘은 내가 보는 모든 게 너랑 닮았다. 구름도 닮았고, 꽃도 닮았고, 달도 닮았다. 오늘 구름은 쭉 찢어진 게 너의 웃는 모습을 닮아서 나도 입이 쭉 짖어지게 웃었다.

혹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말에 “눈에 선하다.”, “눈에 밟힌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너무 좋으면, 그 사람이 실제로는 옆에 없지만, 그 사람이 눈에 선하고 눈에 밟혀서, 나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게 됩니다. 구름을 봐도, 꽃을 봐도, 달을 봐도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심지어 눈을 감아도 그 사람의 얼굴이 보입니다. 그 사람이 옆에 없지만 마치 그가 나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나의 행동이 조심스러워 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를 보고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 인격으로 보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마음으로 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마음으로 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끊임없이 상대방에 대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면 끊임없이 그를 생각하게 됩니다. 완득이가 윤하라는 학생을 좋아하니까 마음으로 보게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마음으로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20-21]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21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잡혀가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이때 제자들에게 하신 고별설교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시며, 예수님이 제자들 안에 계시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씀하시면서 너희들도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 안에 거하는 방법은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 계명은 곧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면,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게 되는 것은 단지 시각적인 눈으로 보는 것 이상으로 예수님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바로 마음과 전인격으로 예수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오늘 말씀과 관련하여 한 가지 깨달음을 얻습니다. 마음이 청결해지는 것은 내 죄가 예수님 때문에 사라졌음을 믿는 믿음으로 시작하여 하나님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 땅을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 안에 거함으로써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이 이상적인 이야기로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을 본 사람들

1) C.S. 루이스
유명한 기독교 변증론가이자 저술가인 C.S. 루이스는 ‘헤아려본 슬픔’이라는 책에서,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낸 사별의 슬픔과 고통의 과정 속에서 결국에는 신앙을 통하여 아내의 실체를 느끼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 느낌은 흔히 말하는 꿈이나 환상 같은 신비한 체험이 아닙니다. 그는 그가 느낀 아내의 실체를, 아내와의 사이에서 깊은 친밀감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말도 합니다. “그 분(하나님)은 사랑하므로 보는 것이라 말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보면서도 사랑하시는 것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사랑함으로 보는 것을 그는 경험한 것입니다.

2) 로렌스 형제
하나님을 마음으로 본 경험을 한 또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쓴 17세기 수도사인 로렌스 형제입니다. 그는 세상의 시각으로 보면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본명은 니꼴라 에르망입니다. 그는 18살 때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더 집중하기 위해 38살에 수도원에 들어갑니다. 수도원에서 오랜 기간 그가 했던 것은 부엌일과 신발을 고치는 보잘 것 없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매일 같이 하나님과 대화를 하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그가 경험한 것 역시 신비한 체험이 아닌, 일상의 삶 속에서 마음과 전인격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로렌스 형제의 그런 삶은 다른 수도사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많은 동료 수도사들에게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해 나누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대수도원장도 그에게 감화를 받아서, 그가 하늘나라로 갔을 때, 그와 나누었던 대화와 그의 기록들을 모아서 책으로 내기에 이릅니다. 그 책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연습’입니다.

  • 하나님을 보는 복을 누립시다.

예수님은 오늘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구약시대의 백성들은 도저히 누릴 수 없었던 복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은 꿈이라든가 환상과 같은 신비한 체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을 살면서 세상의 복락에 취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을 간절히 사모하여 우리들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 속에서 매 순간 하나님을 생각하고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사물은 하나님의 속성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1장 20절에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죄로 어두워져 만물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알아보지 못할 뿐,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사모하고 깊이 사랑하면 우리를 둘러싼 모든 자연과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고 나서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완득이가 구름과 꽃과 달에서 윤하의 얼굴을 보듯이, C.S. 루이스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별한 아내와 깊은 친밀감을 느끼듯이, 로렌스 형제가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듯이 우리도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천국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2:3-4] 말씀을 읽어 보겠습니다.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하나님을 믿고 깊이 사랑함으로, 이 땅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느끼는 복을 누리고, 천국에서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