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엽 목사

이동엽 목사

[ 로마서 15:26 ]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로마서 15:26

간혹가다 목사님..
헌금을 꼭 교회에다 내야 할 필요가 있나요?
각자가 알아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 직접 기부해도 되지 않을까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어느정도..
교회에 헌금을 내는 것이 별로 내키지 않습니다
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곤 합니다

그럴때면 저는
…사람들이 교회에 헌금을 별로 내고 싶지 않은 이유가 뭘까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혹시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은 현대 사회에서
헌금으로 돈을 내고 나면 그만큼 내가 할 수있는 것이
줄어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특히 십일조 같은 경우는 일종의 목돈인데 그 돈이면
모아서 일년에 한 번 가족끼리 해외 여행을 한다든지
할 수있는 신나는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곰곰히 생각해 본다면
꼭 그런이유 만으로 헌금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헌금에 대해
그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은 정당하게 사용되는 헌금에 대해서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합니다
신자된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헌금이,
사역자들의 생활 혹은 사역을 지원하거나,
어려움에 빠진 다른 지체들이나 교회를 후원하고
그를 통해 교제를 나누고, 또 은혜를 경험하는데에
사용되는 것에 대해 전혀 거부감을 느끼거나
싫어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자신들의 삶의 일부를
기꺼이 쪼개서 헌금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의 헌금이
그 사용처를 알지 못하고,
설령 안다해도 헌금의 대부분이
교회당 건물 짓는데 사용된 대출금의
이자를 갚는데 사용되거나,
담임 목사 한 사람의 개인적인 꿈을 이루는데
사용되는 것에 대하여 분노하고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교회에 헌금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는 이유는
헌금의 바른 사용에 대해 믿음을 주지 못한
교회의 잘못이 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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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도대체 헌금은 누구한테 하는 걸까요?
그  헌금은 누가 받는 것이며
어떻게 사용되는 것일까요?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이 필요하지 않다 라는 것입니다
헌금이 필요한 주체는 하나님이 아닌 사람입니다

표현 상, 하나님께 헌금을 한다고 하지만
헌금을 받는 주체는 분명 사람이고
그 헌금을 사용하는 주체도 틀림없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이 헌금을 받으신다고 말이 의미를 가진다면
그 말의 뜻은  헌금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사용되었을 때 일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사용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선은 남을 돕는 일이나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선을 베푸는 일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남을 돕는 일이야 말로 성경이 가르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헌금을 하는 목적이
단지 남을 돕기 위한 것이면
꼭 헌금이라 불릴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가 아니더라도 자선 단체같은 곳에 기부를 하거나
직접 도와 주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수많은 자선 단체들이 존재하고
기부금을 통해 많은 선행이 이루어 지지만
그러나 그 돈을 헌금이라 부르지는 않습니다
ㅡㅡㅡㅡㅡ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가끔 사람들이 저한테
목사님 헌금은 반드시 교회에 해야만 할까요?
라고 물어 볼 때 저는

꼭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교회에 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게 교회에 하라는 건지 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건지..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가실 텐데 다시 설명을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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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헌금이라는 말은 성경에는 안나옵니다
우리가 헌금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말은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 몇 번 나오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구약 성경의 경우에는
십분의 일을 뜻하는 십일조 라든지
제사드릴 때 바치는 헌물 (오퍼링)이 있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나 오퍼링은 오늘날 헌금과 개념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신약의 경우에도
헌금이란 말이 직접 등장하진 않지만
바울은 이를 연보라는 말로  자주 사용합니다
특별히 고린도 후서에 보면 연보에 관해 많은 기록을 남겨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연보라는 말은 현재 우리가 쓰는 헌금이라는 말보다는
훨씬 성경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로마서 15장 26절을 읽어 보았는데
여기서도 연보라는 말이 나옵니다

연보라는 말은 한자어 인데 여기에 쓰인 ‘연’자는 버릴 연입니다
그러니까 연보라는 말은
버리듯이 ‘내어 놓아 남을 도운다’ 라는 뜻입니다

남을 돕되 어떤 댓가나 칭찬 같은 것을 바라지 않고
버리듯이 내어놓아 돕는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똑같은 한자어 이지만
헌금에서 ‘헌’자는 바치다 라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연보를 굳이 헌금으로 부르는 것은
헌금과 연보에는 느껴지는 어감에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친다 와 내어 놓는다 는
어감상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내가 낸 돈이 버리듯이
내어 놓아지기 보다는
하나님께 바쳐지길 원하는 심정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종교심일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에 따라서는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과
이웃을 돕는 연보를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헌금과 연보를 통합하여
연보 하나로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선 신약 성경에서  바울이
헌금의 개념으로 연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하나님께 바쳐진 돈이란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
즉 남을 돕는 곳에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바울이 사용한 연보라는 단어를 살펴보자면
이 말은 헬라어 코이노니아 라는 말의 번역입니다

코이노니아 라는 말은 교회를 다녀본 사람은
친근하게 느껴지는 익숙한 말입니다

성도간의 교제, 친교, 사귐을 뜻하는 말이 바로
코이노니아 이기 때문입니다

즉 성경이 말하는 헌금은, 연보는
이웃과의 교제, 이웃과의 사귐이
물질적으로 드러난 형태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할 때 서로 말로만 사랑을 나누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자신의 것을 아낌없이
기쁨으로 내어주는 마음의 행위가 따릅니다

사랑을 말로만 할 수없듯이
사귐과 교제, 즉 코이노니아 또한 말로만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자신의 것을 내어 놓는 희생이 따르듯이
진정한 사귐에도 나눔과 희생이 따릅니다

이러한 나눔과 희생을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교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야고보서 2장에서는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이렇게 표현 합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14-17

말로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남을 돕는 것이 연보 라면
이것이 남을 돕는 자선과는 어떻게 다를까요?

고린도 후서 8장 20절에 보면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같은 연보로 번역되어 있지만
조금전 로마서 15장 26절에서 쓰인 연보는 코이노니아 인것에 비교하여
여기 쓰인 연보는 헬라어 디아코니아 입니다

디아코니아는 ‘섬김’ 이란 뜻입니다

집사를 디콘 이라 하는데
섬기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말 연보로 번역된 이 단어는
헬라어를 사용하는 바울의 관점에서 본다면

코아노니아 (교제)이자
디아코니아 (섬김)인 것입니다

저는 자선과 연보의 차이가
여기에 근거한다고 생각합니다

연보는 섬김과 교제의 의미가 있는 반면에
자선은 내것으로 남에게 베푼다는 뉘앙스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자선을 베풀 때
은연중 내 것을 남에게 베푼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무래도 자선은 내가 베푸는 자로서
우위에 서있는 느낌입니다
자선이란 말 자체가 베푼다는 말과 함께
사용되는 것만 보아도 알수 있습니다

물론 자선을 베푸는 마음은 아름다운 마음이며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연보는 분명히
자선과는 구분됩니다

연보는 댓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버리듯이 내어놓아 돕는 다는 의미에서
사랑을 닮아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댓가를 바라지 않고 기쁨으로 내어 놓을 수 있을 까요?
바로 나 자신이나 내 가족 , 혹은 진정 사랑하는 대상에게 베풀 때입니다

즉 연보는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의 실천인 것입니다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버리듯이 내어 주면서도 전혀 아깝지가 않고 오히려 기쁜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마음으로 내어 놓는 것이 바로 연보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오로지 남을 나처럼 여길 때 가능합니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음을 깨달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만 가능한 사랑입니다

교회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몸된 지체입니다
서로 한 몸임을 고백하는 무리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한 몸안의 지체는 서로를 돕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도울때 비로소
온전한 한몸을 이룰 수 있기때문입니다

한 몸 안의 지체들은 댓가를 바라지도 않으며
누가 도왔는지도 전혀 상관할 필요도 알 필요도 없습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처음에 교회에만 헌금을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살펴보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저는 꼭 교회에 할 필요는 없지만
교회에 하는 것이 맞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꼭 교회에 할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직접 남을 도와도 됩니다
자선을 베푸는 것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의 헌금이 자선이 아니라
연보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를 통해 돕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합니다

교회를 통해 나의 소중한 물질을 흘려 보낼 때
나의 교만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이름은 높여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내가 낸 헌금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올바르게 쓰여지는지 데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

보다 깊은 사랑의 모습이자
헌금하는 사람의 바른 태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