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훈계>
이준수 목사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브리서 12:1-11
방금 읽은 성경본문 히브리서 12장은 바로 “훈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엄청난 핍박으로 고통당하고 있던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쓰여진 히브리서의 저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며 이러한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우리가 어떤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말씀은 단지 고난의 의미뿐 아니라 우리가 부모로서 우리의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어떻게 양육해야 하며, 특별히 어떤 방식으로 꾸중을 하고 벌을 내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좋은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우선 1절부터 4절까지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혹은 신앙의 여정에서 겪을 수 있는 갖가지 고난과 시련에 어떻게 대처할지 그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고 있습니다. 2-3절에 나와 있는 대로 예수님이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진 채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골고다 언덕을 향해 가실 때도 자기 앞에 놓인 기쁨과 영광, 승리를 바라보며 모든 핍박과 모욕을 감내하셨듯이, 우리 성도들도 이런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의 삶에서 만나는 온갖 어려움들에 결코 낙심치 말고 끝까지 인내하라는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9:24-27에서 고백한 것처럼, 히브리서 저자도 우리의 믿음의 여정을 “경주”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우리가 이 믿음의 경주를 할 때, 우리보다 앞서 이 길을 달려간, 마치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들도 만나고, 때로는 갖가지 무거운 짐과 죄악에도 얽매이게 될 테지만, 오직 신앙의 모범이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항상 인내하고 절제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을 바라보고 푯대를 향해 최선을 다 하여 달려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어, 5절부터 마지막 11절까지는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과 이유,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징계를 받은 후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결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을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가 당신의 사랑스런 “자녀”이기 때문이라고 단언합니다.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지극히 사랑하셔서 당신이 기뻐하시는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련과 고난을 통해 우리의 영의 눈이 뜨이고 어리고 미숙한 마음이 더욱 성장하여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이해하며 그분의 뜻과 섭리에 겸손히 순종하게 되길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히브리서는 로마제국 치하에서 엄청난 핍박을 받고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워주고자 쓰여진 서신입니다. 단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세상으로부터 온갖 질시와 박해를 받고 노예보다도 더 모욕적인 대우를 당하다가 결국엔 수십만 로마시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맹수들에게 물어 뜯겨 처참한 최후를 마쳐야 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이기 때문에 징계를 당하고 이 고통스런 징계 후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에 함께 참여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극상의 평강과 위안을 주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을 불러 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대로 그들이 흘린 순교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비록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유익한 의의 열매를 맺는다.”는 10-11절의 말씀처럼, 초대교회 성도들의 거룩한 순교는 교회를 더욱 견고하게 했고 복음을 만방에 전파시켜 인간의 헛된 욕심과 교만으로 무너져가던 로마제국을 말씀의 능력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 역시 항상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속에 살아가지만, 때로는 징계를 당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징계를 받을 때마다 몹시 아프고 괴로우며 “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고난과 시련을 당해야하나?”라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함께 절망감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고난이 나 자신의 문제 때문이든, 외부적 환경 때문이든 하나님이 나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나의 유익과 성숙을 위해 허락하신 귀한 선물이라 믿고 그 고난과 시련조차도 감사하고 사랑하며 겸손히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이들에게는 좋은 일, 나쁜 일 할 것 없이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이 서로 합력하여 아름다운 선을 이루며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오늘 성경본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이 성도들을 징계하시는 것을 우리 육신의 부모들이 자녀들을 질책하는 것에 비유, 대비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들 사이의 관계는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통해 가장 정확히 이해되고 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에게 베푸시는 “AGAPE적 사랑”이 바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질책할 때도 하나님의 심정을 갖고 그분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들 대부분의 육신의 부모들 역시 자녀들을 질책하는 이유가 결코 그들이 밉거나 해를 끼치고 싶어서가 아니라 올바르게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그릇된 길로 가거나 나쁜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부모들은 그들을 항상 엄하게 훈육하며, 특히 우리 한국 엄마, 아빠들의 경우 때로는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흐르는 눈물을 참아가며 아이들에게 “사랑의 매”를 들 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 제 부모님으로부터 이러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고 그 엄한 훈련이 긍정적인 효과를 보았기에, 현재 제 아이들에게도 그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강한 질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자녀들을 질책할 때 부모들이 가져야 하는 자세와 마음가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징계를 내리시는 것처럼, 우리 부모들도 오직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야단을 치고 벌을 내려야할텐데 그렇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자녀들의 올바른 훈육을 위한다기 보단 부모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아이들을 대할 때가 많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도 바로 이러한 면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습니다. 9절에서 저자는 하나님과 세상의 아버지를 대비시키며, “육신의 아버지는 자기들의 생각대로 우리를 징계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기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유익이 되도록 징계하신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들에게 있어 바로 이 점이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자녀가 잘 되라고, 또 그들의 잘못된 점을 고치기 위해 질책한다고 하지만, 가만히 잘 살펴보면 우리의 감정과 심리적 상태에 따라, 혹은 그릇된 아집과 독선, 열등감으로 인해 공연히 아이들에게 몹쓸 말과 행동을 할 때가 많습니다. 마치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는 식으로 기분 나쁘고 감정 상하는 일을 당해 아이들에게 화풀이 한다던가, 부모 자신의 욕심과 만족감을 채우기 위해 자녀들을 들들 볶고 괴롭히고 있다면, 이는 심각히 반성해야 하며 아이들에게도 진심으로 사과해야 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또 한 가지 명심할 사항은 자녀들을 질책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솔선수범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징계를 내리시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셔서 고통의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우리가 치를 죗값을 대신 치르며 죽음을 당하셨기에 현재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은 것입니다.
이렇듯, 만유의 주시며 만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십자가 고통을 당하며 자기자신을 징계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주셨는데 하물며 부족한 인간에 불과한 우리 평범한 부모들은 어떻겠습니까? 자녀들을 야단치고 뭘 하라고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실천하고 행동하는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자녀들에 대한 우리 부모들의 질책이 정당성을 갖고 그들 역시 우리의 뜻을 수긍하고 존중할 것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부모가 가진 믿음과 생각, 행동 하나하나가 자녀에게 그대로 반영되며 그들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주어 운명을 바꿔놓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용서와 구원을 받았으며, 현재 이 땅에서 누리는 복된 삶과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보장 받은 우리는 하나님이 부여해주신 무조건적 사랑과 거룩한 훈계를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물려주어, 그들로 하여금 우리가 이 낯선 땅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일구어놓은 삶의 터전과 신앙의 유산들을 계속 성실히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야겠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며 진정 부모다운 부모,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 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 내 아이들에게 어떠한 삶과 신앙 자세를 보여야 할지 한번쯤 생각해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