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 목사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오늘은 12월 첫 번째 주일입니다. 올 해도 이제 한 달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한 달 동안, 올 한 해를 잘 마무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감사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우리 좋은친구교회 성도들이 다른 무엇보다도 “감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범사에”라는 말씀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시는 명령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늘 감사한 상황과 환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 일이 많을 때야 감사가 절로 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감사하다는 입술의 고백도 쉽지 않습니다. 감사한 일이 있으면 하지 말라고 해도 감사가 입 밖으로 흘러넘치겠지만, 우리 삶은 감사한 일보다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과 처지에 놓일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범사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각각, 모두, 전부, 모든 것”의 뜻이 있습니다. 각각의 모든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모든 것에 대하여 전부 다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연초에 계획하고 소망했던 일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예기치 못한 불행한 일들로 고단한 몸과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한다면,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마음보다는 오히려 불만과 불평이 터져 나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조건이 없는데 어떻게 모든 일에, 모든 사람에게 감사할 수 있습니까?”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조건
이런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감사의 조건에 대해서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실 때, 그 감사의 조건은 우리가 계획하고 노력했던 일들의 결과물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있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감사의 조건은 오늘 말씀에 나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문구의 “안에서”라는 단어는 “안에서, 의하여, 가지고”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소유하였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감사하라고 하시는 감사의 조건이요, 또한 그렇게 감사하며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 즉 명령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오늘 말씀을 달리 표현하자면, “예수님을 소유하였음을 깨닫고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아라. 이것이 나의 명령이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요?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짧은 기간에 전도하여 세우고 떠난 교회이지만, 성도들의 열정은 대단했습니다. 특히 그들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여 박해를 잘 견디며 신앙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예수님 말고, 보다 큰 감사의 조건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면, 우리들은 어떨까요?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았지만, 우리는 그들과 같지 않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이 달라지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들 역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얼마 전에 추수감사절을 지냈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의 추수감사절이 있습니다. 인생의 추수감사절은 언제일까요? 인생 농사가 풍작인지 흉작인지가 판가름 나는 때는 언제일까요? 그때가 바로 종말의 때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때요, 또는 각자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개인적인 종말의 때인 것입니다. 그 순간에, 인생 농사가 잘 되었는가 또는 망쳤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가 예수님 안에 있는지, 그가 예수님을 소유했는지가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추수감사절을 생각하면, 당장 계획하고 노력했던 것들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불행에 직면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소유하는 것은 믿음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농사는 돈도 필요하고 기술도 필요하고, 건강도 필요하지만, 예수님을 소유하는 것은 오직 믿음이면 되기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소유한 우리에게는 인생 농사의 추수 때에 실패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소유하는 것의 의미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는 까닭은 예수님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온전히 소유하지 못하는 까닭은 우리 마음이 땅의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6:10-14]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신 6:10-14
11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12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13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르지 말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셔서, 그곳에서 크고 아름다운 성읍과 집을 얻게 하시고, 마실 물이 샘솟는 우물과 풍성한 열매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을 주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 땅의 것들에만 몰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버렸을 뿐 아니라, 그 땅의 백성들이 섬긴 땅의 신들을 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결국 그 땅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유리방황 하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물 속 이끼 이야기 /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썼던 리처드 바크가 쓴 다른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는데 강물 아래에 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생물들 중에는 바위에 낀 이끼들도 있습니다. 강물 속 이끼들은 바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위에서 떨어지는 순간 자신이 사라질까봐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 보니, 자기들과 같은 이끼가 물 위를 둥실둥실 떠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바위에 붙어 있는 이끼들은 그 이끼를 보고 “와 신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칩니다.
그러자 물 위를 떠가고 있던 그 이끼가 말합니다. “바위를 붙잡고 있는 너희들의 손을 놔. 그럼 강물은 잠시 동안 너희를 바위 위에 내동댕이쳐서 멍들게 할지도 모르지만, 다음 순간 너희를 강물 위로 띄워 올려서 흘려보내줄 거야” 물 속 바위에 붙은 이끼들이 바위를 붙잡은 손을 놓는 순간 그들은 그들이 상상하지 못한, 자유롭고 차원 높은 삶을 살게 될 것인데, 그들은 그 바위가 자신들의 전부라고 생각하기에 그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바위에서 손을 놓지 못하는 이끼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만을 바라보며 땅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대기업에 다니는 제자의 고민 / 하루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국수집에 제자 커플이 찾아왔습니다. 둘 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남자 아이는 대기업에 취직을 하여 다니고 있고, 여자 아이는 대학교 졸업 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원하는 일을 하고 싶어 시험공부를 하고 있는 커플입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둘이 사귄 것을 알기에, 언제 결혼을 할 것이냐고 물어보니까. 남자 아이가 내 후년 쯤을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까닭을 물으니, 집을 구한 뒤 결혼할 생각이라 그렇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어서 하는 말이 아이를 낳을지도 고민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양육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 결혼을 하고도 의도적으로 아이를 갖지 않는 맞벌이 부부를 딩크족이라고 하지요. 바로 이 딩크족을 생각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 아이가 신앙적으로도 매우 신실하고, 아이를 좋아할 성향이라는 것도 알기에, 그리고 급여도 많이 받는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였기에, 그 말은 저에게 적잖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요즘 젊은이들의 현실적인 고민이 이런 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집에 대한 고민을 내려놓으면, 다른 여러 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인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해줬더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돌아갔습니다. 그런 고민이 어디 그 친구뿐일까요? 사회의 경쟁적인 구조 속에 살다 보니,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땅에 속한 것들에 대한 고민과 걱정을 들으며 살다 보니, 하나님을 보기보다는 땅의 것에 집착하게 되는 한계를 안고 사는 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을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설교자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세상의 좋은 것들을 가진 사람과 예수님을 가진 사람 중에 누가 더 많은 것을 가진 것입니까? 또는 예수님도 가지고, 세상의 좋은 것들도 가진 사람을 보면서, 예수님만을 가진 사람보다 더 많이 가졌다고 말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가진 사람이, 거기에 더하여 세상의 좋은 것들도 갖길 원한다면, 사실 그는 아직 예수님을 갖지 못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가졌다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로는 채울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오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찾아와서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열심히 살아왔는데,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했을 때, 그 부자 청년은 자신의 재물 때문에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떠난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의 인생은 예수님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예수님을 소유하지 못하고 영생을 얻지 못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추수 때에 그 청년은 아무것도 갖지 못한 빈털터리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범사에 감사하라”로 말씀하십니다. 비록 삶에서 감사할 조건을 찾지 못하더라도,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세상의 근심 걱정에서 시선을 돌려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과연 네가 예수님을 소유했느냐?”고 물으시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소유한 자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좀 부족하더라도, 종말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순간에, 모든 일에 대하여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 감사가 넘치는 올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