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 목사
[ 사무엘상 15장 17-23절 ]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또 여호와께서 왕을 길로 보내시며 이르시기를 가서 죄인 아말렉 사람을 진멸하되 다 없어지기까지 치라 하셨거늘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나이까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15장 17-23절
오랫동안 보지 못한 친구를 기대하지도 않았던 장소에서 만난적이 있으신가요? 생각지도 않았던 돈을 길거리에서 주워본 적이 있으신가요? 한동안 풀지 못하던 문제를 어느날 갑자기 너무 간단하게 알게되는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우린 이런 일들을 우연이라고 하지요. ‘와, 우연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나..’ 우리가 아주 흔하게 쓰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흔하게 쓰는 단어인 ‘우연히’ 라는 단어는 성경에 얼마나 자주 사용되고 있을까요? 나오기는 할까요? 정말 나올까요, 안나올까요? 궁금하죠? 나오긴 나옵니다. 대략 10번도 안되게 나오는데 주로 ‘미크레’ 라는 단어를 씁니다.
그렇다면 ‘우연히’라는 단어는 성경적으로도 지지를 받는 단어일까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돌아가는 세상은 수많은 우연들로 얽혀 있는 걸까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우연히’ 좋은친구교회의 예배를 드리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속의 ‘우연히’ 라는 단어는 대부분 하나님과 관계없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표현되거나, 원어인 미크레의 또 다른 뜻인 ‘기회를 얻다’ 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람의 인생에 우연은 없다는 거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마태복음 10:29-31
한 앗사리온은 1불 정도 되는 돈인데, 2 마리에 1불이면 한마리에 50센트, 500원이라는거죠. 이처럼 값없는 참새 마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시는 하나님이, 나도 모르는 나에 대해서도 꿰뚫고 계시는 하나님이, 나의 인생을 우연히 흘러가게 방치하실리 없다는 말씀입니다.
더욱이, 선택한 백성의 첫번째 왕이라면 어땠을까요.
사울은 베냐민 지파 기스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집에서 키우는 암나귀가 없어졌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암나귀는 자가용입니다. 훔쳐가지 않는 한 없어질리 없는 자동차와는 달리, 암나귀는 발달린 짐승이니까 혼자서도 없어질 수 있는 일이었겠죠.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이렇게 이야기하죠. “사울아, 사환하나 데리고 나가서 암나귀 좀 찾아봐라”. 준수하고 착한 소년이었던 사울이 아버지의 말을 듣고 암나귀를 찾아 나섭니다.
그런데 정신없이 암나귀를 찾아다니다 보니까 너무 멀리까지 찾으러 나선겁니다. 시간이 너무 흘렀어요. 사울과 사환이 숩땅에 이르렀는데 이곳은 라마라는 성 근처에 있던 곳이었죠. 그곳에서 사울이 문득 아버지가 걱정하실 게 생각난 거예요. “야.. 큰일났다. 암나귀고 뭐고 아버지가 우리 걱정하시겠다. 빨리 돌아가자..”
그런데 우연히 그 사환이 그 성읍 근처 라마에 사무엘이 살고 있다는 걸 알았죠. 사환이 사울에게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 보소서 이 성읍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 그가 말한 것은 반드시 다 응하나니 그리로 가사이다 그가 혹 우리가 갈 길을 가르쳐 줄까 하나이다 …
사무엘상 9:6
이 사환이 하나님의 일꾼 사사 사무엘을 암나귀 찾는데 쓰자고 말하는 거죠. 사울이 이 말을 듣고 뭐라고 했습니까. ‘이 녀석아, 어디 하나님의 일꾼을 암나귀 찾는데 쓰겠느냐..’ 이랬을까요? 아니에요. 사울의 대답은 참 어이가 없습니다. ‘에이, 그걸 그냥 알려주겠니.. 돈이나 먹을 걸 줘야지. 근데 우린 아무것도 없잖아..’ 그러나 우연히 사환에게 약간의 돈이 있었어요. 그래서 사울이 자신의 사환과 함께 사무엘을 찾아갑니다. 혹시 모르니까, 우연히 암나귀를 찾을 요량으로 말이죠.
사무엘을 찾으러 간 사울과 사환은 가는 길에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우연히 만나 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사무엘을 만납니다. 사울에게 있어 사무엘과의 첫 만남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의 연속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우연히 만난거죠.
그러나 사무엘은 사울을 어떻게 만났습니까?
사울이 오기 전날에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알게 하여 이르시되
내일 이맘 때에 내가 베냐민 땅에서 한 사람을 네게로 보내리니 너는 그에게 기름을 부어 내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라 그가 내 백성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리라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하셨더니
사무엘이 사울을 볼 때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이는 내가 네게 말한 사람이니 이가 내 백성을 다스리리라 하시니라
사무엘상 9:15-17
한 가지의 사실인 사울과 사무엘의 만남이라는 하나의 팩트, 그러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울은 우연히 사무엘을 만났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무엘은 하나님이 주신 예언이 성취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똑같은 일을 겪는데, 어떤 사람은 우연히 일어난 일로 생각하여 하나님을 느끼지도 보지도 못하고, 어떤 사람은 우리를 그저 방치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어 남들이 다 우연이라고 말하는 그 일상속에서 하나님의 살아 역사하심과 개입하심을 확인하게 되는 겁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서 계십니까. 여러분은 우연을 믿으십니까, 아니면 사무엘과 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으십니까.
사울은 하나님을 몰랐기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우연으로 오해 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울을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사무엘은 미리 초청해 둔 30명 가량의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며 사울을 그 잔치의 상석에 앉히고 미리 준비한 음식으로 사울을 대접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하나님의 기업,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고 사울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겪을 세 가지의 징조를 예언합니다.
사울이 겪게 될 첫번째 징조는 돌아가는 길에 잃어버렸던 암나귀를 찾았다는 소식을 듣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지금 사울이 암나귀를 찾으러 나왔다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잖아요. 그러니 암나귀 문제가 가장 마음에 걸렸겠죠. 그 문제가 해결 됐다는 소식을 듣는다는 겁니다.
두번째 징조는 다볼 상수리나무 근처에서 순례자로부터 하나님께 바칠 빵을 받을 것이라는 것과
세번째 징조는 돌아가는 길에 선지자들을 만날 때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도 크게 임하여서 사울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여 새 사람이되고 그들과 함께 예언할 것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왜 이런 예언을 사울에게 주었을까요?
고린도전서 14장에는 예언의 유익에 대해 사도 바울이 기록한 말이 있습니다.
…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고린도전서 14:3
하나님의 의를 세우고 하나님의 지혜를 가르치며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것이 예언의 목적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을 잘 모르는 사울을 만나 잘 대접하고, 잔치의 상석에 앉히고, 기름을 부어 구분하고, 예언을 주어 하나님의 의를 세우며, 하나님의 지식을 알려주고,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담대할수 있도록 도왔다는 겁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실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들에게도 왕을 달라고 사무엘에게 간청하자 여호와 하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 이는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사무엘상 8:7
라고 하시죠.
자, 이렇게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으시는 일이어서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충 아무나 불러서 대충 아무렇게나 왕을 시키셨습니까? 그렇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요. 자신의 종 사무엘을 불러서 정성스럽게 귀하게 사울을 왕으로 세우지 않으십니까. 세심하게 사울을 왕으로 준비시키지 않으십니까. ‘어차피 망할 왕, 주는 척만 하자..’ 이러지 않으셨다는 겁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주심은 분노속에서 마지못해 하심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울을 왕으로 세우심은 “… 내 백성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사무엘상 9:16)” 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그저 내치지 않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왕을 요청한 이스라엘 백성과 왕이 된 사울에게는 한가지 지켜야 할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사무엘상 12:14-15 에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의 목소리를 듣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지 아니하며 또 너희와 너희를 다스리는 왕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면 좋겠지마는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조상들을 치신 것 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사무엘상 12:14-15
이 말씀을 간단히 설명하면 “순종하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라,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사울이 이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을까요? 심각하게 마음에 새겼을까요? 그러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속에는 우리의 구원과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정말 귀담아 듣고 마음에 새겨야할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을 통해 말씀을 듣는 것, 여러분이 시간을 내어서 성경을 읽는 것 – 왜 필요합니까? 그 안에 우리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있기 때문 아닙니까.
아니, 우리는 그만두고 내가 살고 죽는 문제가 그 안에 있습니다. 놓쳐서는 안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메시지가 그 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메시지,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메시지를 그러나 사울은 놓쳤습니다.
자, 이제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암몬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사울은 백성들의 탄탄한 지지를 받으며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평화롭게 사울이 왕이 됨을 즐길 만한 상황이 아니었죠. 왕이 된 사울은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2년 만에 다시금 블레셋과의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르기 위해 모여드는데 그 기세가 엄청난 겁니다. 군사력이 이스라엘과 비교가 안되는 겁니다.
온 이스라엘이 사울을 따라 블레셋과 전쟁을 하기 위해 길갈이라는 곳에 모였는데요. 블레셋 사람들의 군사력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겁을 먹기 시작했어요.
‘자, 블레셋과 싸우자, 나가자’ 하고 모였는데 블레셋이 너무 커요, 상대가 안돼 보여요. 시간이 흐를수록 그 두려움은 더욱 더 커졌어요.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서 슬금슬금 도망을 가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수풀과 바위틈에 웅덩이를 파서 숨고요, 어떤 사람들은 아예 멀리 도망가 버리고요. 차라리 빨리 전쟁을 하면 좋으련만 사람수가 군인수가 자꾸 주는 겁니다. 사울이 안절부절을 못합니다.
사울은 왜 바로 전쟁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 사무엘과 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사무엘은 사울에게 길갈에서 자기가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때까지 7일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적들은 앞에서 위세를 떨치죠, 내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자꾸만 도망가죠, 약속된 날이 거의 다 되도록 사무엘은 나타나지를 않았습니다. 사울은 초조해서 견딜수가 없었어요. 얼마나 불안합니까. 그러다 사울이 마지막 칠일째 되는 날이 다 가기 전에 결단을 내립니다.
‘그래 내가 하자. 뭐가 다르겠냐..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는데 나쁠게 뭐냐.. 사무엘이 먼저 약속을 어긴거 아니냐.. 지금 칠일이 다 됐잖아.. 내가 그냥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자.. 이렇게 가나 저렇게 가나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니냐..’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 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사무엘상 13:9
자, 이 번제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셨을까요?
번제가 끝나자 마자 아직 칠일이 다 끝나기 전에 사무엘이 약속대로 칠일만에 길갈에 도착합니다. 자기 혼자 번제를 드린 사울을 보고 사무엘이 놀라서 사울을 야단치죠. ‘아니.. 뭐 하신 겁니까?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나요? 하나님이 시키신 건데.. 하나님 명령인데.. 지금 뭘 하신 겁니까?’ 그 질책 앞에 사울이 이렇게 변명하죠.
…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사무엘상 13:11-12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울의 변명이 참 논리적이지 않습니까? 참 타당하고 합당해 보이지 않습니까? 나라도 그랬을것 같지 않습니까? 우상을 섬긴 것도 아니잖아요. 첫째날이나 둘째날 제사를 드린 것도 아니쟎아요.
틀려봤자 요만큼 밖에 안 틀린것 같죠.. 잘못해 봤자 요만큼 밖에 잘못하지 않은 것 같죠.. 아니 만개나 만 한개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요..
하지만 이것은 사울의 착각이었습니다. 사울왕이 오해했어요. 만개와 만 한개는 같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라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사무엘상 13:13의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리하였더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위에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거늘
사무엘상 13:13
끝났습니다. 사울왕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해서. 조금 밖에 안 틀린것 같은데. 별 문제 없어보이는데. 끝났습니다. 사울은 이 시점에서 자복하고 회개함이 합당했습니다.
하지만 사울은 이런 일을 겪고도 또 다시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심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되죠. 성경에서 반복은 확인, 확정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사울왕을 버리심을 확정하는 두번째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사무엘상 15:3
그 말을 듣고 사울이 이십만이 넘는 병사를 모아서 아말렉을 칩니다. 그런데 사울왕과 그 백성이 이상한 일을 합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아말렉의 왕 아각도 죽이지 않고 좋은 것들은 다 남기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만 골라서 진멸 했습니다. 게다가 갈멜에 이르러서는 자기를 위한 기념비까지 세우죠.
하나님을 위한 전쟁을 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 시키고 자기의 이름을 높인 겁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자기실속만 챙긴겁니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고 지난번에 요만큼 어긋나더니 이번에 아주 크게 아주 과감하게 사울왕이 어긋났습니다. 그러고는 자신을 질책하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대답을 하죠.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상 15:20-21
‘나는 하나님 말씀 잘 들었고 나는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다 했고 위험하고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다만 조금 다르게 한 거는 내가 그런 것도 아니고 날 따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제사 하려고 그런 것 아니냐.. 뭐 그런 것까지 따지나.. 하나님 일 하다보면 조금씩 틀리기도 하는 것 아니냐.. 다 하나님께 잘 해 드리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얼핏 들으면 참 그럴듯 하죠. 그러나 사울의 이 이야기는 정말로 하나님을 오해한 사울의 삐뚤어진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해서 제사와 제물을 기대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의도는 아말렉을 징벌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해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오해했으나 오히려 뻔뻔스러워지기까지 한 사울왕에게 사무엘이 그 유명한 말을 전합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
사무엘상 15:22-23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씩 빗나간 사울. 우상을 섬긴 것도, 대놓고 하나님을 배신한 것도 아니었지만 어찌 보면 그럴듯 해 보이기까지 한 그의 행동은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오해한 까닭이요,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가볍게 이해한 까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순종하지 않는 죄를 범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사울이 왕으로 세워질 때 정한 약속 “순종하지 아니하면 망하리라” 는 조건을 넘어서는 죄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따른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절이나 이슬람 사원을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철저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요, 그저 때로는 두려움에 때로는 다급함에 때로는 남들이 다 그러니까 때로는 그렇게 하는 게 하나님께 더 좋을 것 같아서 때로는 그냥 말씀을 잘못 이해해서 조금씩 엇나가는 나의 행동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만든다면.. 나를 망하게 할 수 있다면.. 이게 얼마나 무거운 짐이되는 일입니까.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사울왕처럼 사무엘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당신의 하나님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을 알았지만 나의 하나님을 갖지 못했어요. 나의 하나님을 갖지 못하니까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분들께,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을 더욱 더 깊게 만나시는 은혜가 넘치시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며 순종하는 삶을 거뜬히 살아내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