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 목사
[ 출애굽기 3장 1-4절 ]
1 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출애굽기 3:1-4
* 두 가지 질문으로 말씀을 시작해 볼까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둘째, 하나님께서 지금의 나를 당장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사용하실까요? 아마도 이 두 번째 질문에 자신 있게 “네 그렇습니다!”라고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모두 다 하나님께 귀한 일로 쓰임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지금의 나를 바로 지금, 하나님의 귀한 일에 쓰실까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습니다. 왜일까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 중에 하나님께서 쓰실 사람은 누구일까요? 또 지식이 많은 사람과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누구에게 하나님의 일을 맡기실까요? 또 젊고 건강한 사람과 늙고 병든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은 누구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실까요? 물론 우리가 생각할 때, ‘하나님께 돈? 별로 중요하지 않아!’, ‘지식? 그것도 하나님께는 중요한 것이 아니야!’, ‘건강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반드시, 꼭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야!’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에 부딪혀 살다보면,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부자나, 지식이나 재능이 많은 사람 그리고 건강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맡기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나에게 돈이 별로 없고, 배움도 짧고, 건강도 좋지 못하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당장 나를 사용하실까?”라는 질문에 “글세?”라는 물음표를 던지게 됩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을 살펴보면, 우리는 좀 다른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어 보겠습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이 어디이지요? 1절에 보면, 그 장소를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광야입니다.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던 모세가 양 떼를 광야 서쪽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이상한 광경을 목격합니다. 떨기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나무는 타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다. 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 모세가 가까이 가서 보려고 나무에 다가가는데, 나무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라고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이에 모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답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곳은 광야입니다.
* 모세에게 광야는 어떤 곳일까요?
우리는 모세의 일생을 잘 알고 있습니다. 광야로 오기 전 모세가 40살이 되기까지 살았던 곳은 바로의 궁궐입니다. 그때 모세의 신분은 공주의 아들이었습니다. 모세는 공주의 아들로서 당시 애굽의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고, 높은 지위와 풍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유아시절 자신의 유로로 들어온 친어머니로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 받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에는 늘 동족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동정과 연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동족을 돌아볼 마음을 갖게 되었고, 마침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보고는 그를 쳐서 죽입니다. 모세는 그 죽은 자를 몰래 모래에 묻었지만, 이내 탄로가 났고, 바로가 죽이려 하자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칩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미디안 사람의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로써 그는 공주의 아들 신분에서 하루아침에 살인자의 신분으로 광야를 유리방황하는 나그네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40년의 세월이 흘러왔습니다.
모세에게 광야는 어떤 의미일까요? 광야는 자신이 살았던 바로의 궁궐과는 너무도 다른 곳입니다. 바로의 궁궐은 주위 환경부터가 다릅니다. 큰 나일강이 흐르고 그 주변으로 푸른 나무들과 갈대숲이 있으며, 기름진 땅은 늘 곡식과 열매로 가득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는 공주의 아들로서 부와 명에를 누렸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젊고 유능한,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인재로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있는 곳은 광야입니다. 광야의 산과 들은 푸르름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메마른 바위와 흙으로 쌓은 산과 들은 황량하고 쓸쓸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하루 종일 양 떼에게 먹일 풀을 찾아 헤매야 했고 늘 거친 음식과 불편한 잠자리에 누워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힌 것은 아마도 자신은 실패자라는 생각과 외로움 그리고 더 이상 동족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지금 그는 나이가 80이 되어, 인생에서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연약한 노인의 신세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곳. 광야는 모세에게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의 궁궐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곳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있습니다. 이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모세를 광야에서 부르셨을까?
* 바로의 궁궐이 아닌 광야에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
서두에 나누었던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쓰실까”라는 질문을 다시 생각해 보면, 모세는 궁궐에서 부자였고,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고, 젊고 건강한 사람이었습니다. 반면에 광야의 모세는 실패자로서 광야를 헤매는 보잘 것 없고 초라한 나그네 신세였으며, 그의 지식이 쓸 데가 없고, 나이도 많아서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그런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에 대한 우리가 갖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광야에서 부르실 것이 아니라, 바로의 궁궐에서 부르셨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라도 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궁궐이 아닌 광야의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곧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합니다. 그럼 모세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놀라운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 하나님의 부르심의 특징
첫째, 하나님의 부르심은 광야를 거룩한 곳이 되게 하십니다.
본문에서 이어지는 [출애굽기 3:5]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5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애굽기 3:5
불이 붙었으나 타지 않는 떨기나무를 가까이에서 보기 위해 다가오는 모세에게 하나님은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황량한 돌산과 흙바닥은 모세가 보아왔던 그 광야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모세에게 절망과 외로움을 주었던 그곳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거룩한 곳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당장 우리 환경과 조건을 바꾸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당장 채워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무지하고, 질병과 장애 가운데 있더라도 달라지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부끄럽게 생각했던 것들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발견하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환경과 조건은 그대로이지만, 우리 마음과 생각이 달라져서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하나님을 새롭게 느끼고 자각하게 됨으로써 그동안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출애굽기 3:8]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출애굽기 3:8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모세에게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일은 모세가 상상 조차도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사실 모세는 바로의 궁궐에 있을 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도행전 7:22-25]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22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23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24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25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사도행전 7:22-25
이 말씀은 초대교회의 스데반 집사가 순교직전에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하게 전하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에서 모세가 애굽의 모든 지혜를 배워 말과 하는 일들이 능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으로 치면 모세는 최상류층의 지위를 누리며 최고의 교육을 받은 당대의 엘리트였으며, 언변과 재능이 뛰어났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뭐 한 가지 부족함이 없는 뛰어난 인재였던 것입니다. 아마 모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40세가 되었을 때 동족 이스라엘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25절 말씀을 보면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줄 것으로 생각했다고 나옵니다. 그는 자신이 바로의 궁궐에서 성장하면서 갖게 된 지위와 능력으로 하나님께서 동족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하실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동족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을 보고 쳐 죽여 사람들 몰래 모래 속에 묻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당시의 모세가 생각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일의 전부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은 이스라엘 사람을 괴롭히는 애굽 사람들을 혼내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자유를 주시고 그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심으로 언약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 언약 백성의 삶을 마음껏 누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그들을 인도해 내시는 엄청난 프로젝트였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이 놀라운 계획을 광야의 부르심에서 비로소 알 수 있게 됩니다.
* 하나님께서 왜 모세를 광야에서 부르셨을까요?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이 바로의 궁궐에서 가졌던 애굽의 모든 지혜와 말과 일에 능통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출애굽기 3:11] 말씀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출애굽기 3:11
모세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모세는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을 고백하고 있지만, 반면에 그의 무기력함은 앞으로 이루어질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인정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이런 마음은 그가 바로의 궁궐에 있을 때는 스스로 도저히 가질 수 없는 마음입니다. 하지만 그는 실패와 절망을 통해 그런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연스럽게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마음이 된 것입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통해 그는 이제 그런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고 그때를 기다려 비로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그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만일 나에게 물질이 있고, 지식과 재능과 건강이 있어서 내 힘으로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있는 곳은 바로의 궁궐일지 모릅니다. 이상하게도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자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의 일을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만났던 부자들이 그랬고, 바리새인과 같은 당시의 지식인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내가 가진 무언가 한 가지라도 있다면 그것으로 교만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이 맞는지 끊임없이 살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반면에, 부족함이 많아서 나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있는 곳은 광야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절망하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연약함이 있고, 여건과 환경이 허락하지 않고, 건강이 나쁘고 장애가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진다면, 우리 삶 가운데 임재하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환경과 조건은 그대로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있는 그곳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놀라운 하나님을 일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고, 바로 우리 자신을 통해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있든, 나도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소망과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