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 목사
갈라디아서 3장 26-29절
26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6-29
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29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기독교 안에는 여러 개의 교파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뭡니까? 위키백과를 찾아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에 바탕을 둔 아브라함계 유일신교, 예수를 메시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 이라고 설명이 나옵니다. 기독교의 교파를 보면 우선 초대교회가 시간이 흐르면서 라틴어 중심의 서방교회와 그리스어 중심의 동방교회로 나뉘었습니다. 그리고 이 서방교회는 로마 카톨릭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카톨릭은 이 로만 카톨릭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뿌리가 거기에 있습니다. 종교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큰 힘을 가졌던 카톨릭은 시간이 흐르면서 타락했고, 여기에 반발한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기치를 들고 종교 개혁을 일으켰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개신교회의 시작입니다.
개신 교회의 대표적 교단은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영국 성공회, 오순절 그러니까 순복음 교회, 성결교 그리고 여기 미국에는 루터교도 제법 있습니다. 저는 아주 어려서는 서울 왕십리라는 동네에 있는 교회를 다녔는데, 교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다녔습니다. 그러다 조금 커서는 어머니를 따라 여의도 순복음 교회를 다녔고, 고등학생이 되서는 광화문에 있는 새문안 교회를 다녔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장로교회입니다. 그러다 미국에 와서는 미국 장로교회 (PCUSA) 를 시작으로 잠시 감리교회를 거쳐서 다시 미국 한인 예수교 장로회 (KAPC) 교단에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성결교, 침례교 목사님들과 함께 개척교회를 돕는 선교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여러 교단들을 두루두루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런 여러 교단을 돌아보면서 제가 느낀 것은 “아, 성경에 대한 이해, 하나님을 섬기는 표현의 방식은 약간은 다르지만, 그러나 하나구나..” 입니다. “너희는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다르긴 해도 하나라는 것은 말씀의 기초위에서 같은 태두리 안에 서 있는 것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 세상에는 분명히 이 하나의 범주 안에, 하나의 테두리 안에 놓을 수 없는 이단들이 존재합니다. 지난주에 이용표 목사님께서 전하신 말씀을 들으시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말씀에서 알려주신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이 만들어 낸 하나님일 수도 있다는 놀라운 경고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번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온전한 말씀에 기초한, 하나라는 단어가 유효한 위치인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오늘 저는 몇몇 대표적인 이단들의 주장에 대해서 잠시 함께 살펴보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성경을 그저 좋은 책으로만 보고 삼위일체를 믿지 못하며 성령을 그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보고 지옥은 없으며 지상이 천국이라고 하며 예수의 재림, 새 하늘과 새 땅이 오는 것을 부정하며 예수님의 재림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내용들은 성경구절로 부정됩니다.
안식교는 예수님도 죄인이었다고 주장하며 지옥도 형벌도 없고 불신자가 죽으면 그저 사라진다고 주장하며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구원을 얻으며 율법은 구원을 받는 조건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모든 내용들은 성경으로 부정됩니다.
몰몬교는 하나님도 예수님도 본래 인간이었다고 주장하며 지옥과 형벌은 없고 사람도 신이 될 수 있으며 죽은 자를 위해 세례를 베풀면 구원의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이 모든 내용들은 성경으로 부정됩니다.
뉴에이지 운동은 천국은 인간이 만들며 하나님은 인간일 뿐이며 온 세상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고 인간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내용은 성경으로 부정되어집니다.
통일교는 창조에 반드시 음과 양이 존재하며 천사와 인간이 간음을 해서 타락했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달리심은 영적 구원에만 머물고 문선명이 육적 구원을 이룬다고 주장하며 이 문선명이 재림주라고 합니다. 성경을 기초로 검토할 필요조차도 못 느낄 정도로 유치합니다.
구원파는 하나님이 다 아시는데 기도는 뭐하러 하냐고 주장하며 한번 회개하면 두번 다시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고 믿은 후에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오히려 지옥을 가며 율법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여 방종한 삶을 부추기고 모든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합니다. 이 모든 주장은 성경으로 부정되어집니다.
신천지는 이만희만 성경을 풀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만희를 셩령으로 보며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을 부정하고 신천지 교인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며 몸의 부활을 부정합니다. 이 모든 내용 또한 성경으로 부정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좋은 친구교회는 이들과 하나가 아닙니다. 살아계신 생명의 말씀, 성경을 통하여 하나됨의 경계를 구분하시는 은혜가 여러분들 가운데 차고 넘치시길 소망합니다. 성경을 잘 보시고 잘 배우셔서 잘 아셔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6
자, 이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너희가 성도면 이단이건 뭐건 상관없이 다 하나가 되라는 말씀일까요. 저와 함께 좋은친구교회에서 목회하시는 이동엽 목사님은 하나교회라는 이름으로 유트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십니다. 교회이름을 하나라고 하실 만큼 하나됨의 의미를 각별하게 생각하시는 것이겠죠. 요즘은 이동엽 목사님과 그레이스 사모님의 유트브 채널을 통하여 저희 좋은친구교회 예배에 참여하시는 분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데요, 참 감사하고 기쁜 일이지요. 그러나 제가 사실 죄송하게도 목사님과 사모님의 유튜브 채널을 자주 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다루어지는 내용이 무엇인지 솔직히 자세히 모릅니다.
하지만 3년이란 시간동안 함께 목회를 이어온 제가 아는 이동엽 목사님은, 이 분이 주장하시는 하나라는 단어의 명제는 이단이건 뭐건 무조건 하나라는 주장이 아닐 것이란 것에 대해서는 100%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라는 단어의 온전한 이해를 위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전제문장을 주목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나이되 예수 안에서 하나라는 것이죠. 저희 좋은친구교회는 4명의 목사님이 계시고 모두가 좋은친구교회의 담임목사입니다. 위 아래가 없습니다. 저희는 부목사가 없습니다. 또한 저희 교회에서는 성도님들의 직분을 부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형제님 자매님 그리고 그저 성도님이라고 부릅니다.
왜 이렇게 하는 걸까요? 세상의 구조는 위와 아래가 있고 힘이 있는 자가 보통은 위에서 군림하며 힘이 없는 자는 보통은 아래에서 짓눌리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보이는 갑을관계, 보이지 않는 갑을관계가 넘쳐나고 더욱이 육체적으로 장애를 가진 분들은 자연스럽게 차별을 당하는게 세상의 모습인데, 그걸 또 교회안으로 끌고 들어와서야 되겠습니까.
“유대인이건 헬라인이건 종이건 자유인이건 여자이건 남자이건 모두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다” 라는 말의 뜻은 세상의 차별이 여기는 없다, 세상의 차별을 예수의 몸된 교회로 끌고 들어오지 말아라, 세상에서 당신이 무엇이든 간에 예수의 몸된 교회 안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자리, 같은 위치, 같은 소망, 같은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이 바울선생이 말하는 하나입니다. 이것이 좋은친구교회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교회를 예수의 지체로 이해하는 사람들의 하나에 대한 온전한 이해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세상에는 없는 하나됨을 우리는 어떻게 이루어낼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온통 갑을관계인데, 세상은 온통 힘과 권력을 찬미하는데, 한 주 내내 세상에 푹 빠져 사는 우리가 어떻게 예수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어낼 수가 있겠습니까. 그냥 열심히 하면 됩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 3:27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 그것이 시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뭡니까? 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죄된 나는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내가 사는 것입니다. 다시한번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
갈 3:27
이 본문에 쓰인 “받은 자” 라는 단어의 원문을 보면 수동태를 쓰고 있습니다. 누구도 능동적으로 세례를 받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들으시면 어떤 분은 “나는 내가 자발적으로 세례 받는다고 해서 세례 받았는데.. 난 그냥 내가 받고 싶어서 침례 받았는데..” 하실수 있겠죠. 그러나 이것은 행위적인 물 세례를 두고 하는 말들이겠죠. 할례가 구원의 요소가 될 수 없듯이 물세례가 구원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말하는 세례는 성령님이 주시는 우리가 은혜로 받는 성령세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동태로 쓰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예수님과 연합이 된다는 것이죠. 물세례를 받는 순간 성령세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성령세례가 항상 물세례를 동반하는 것은 아닙니다.
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 12:12-13
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성령님이 오셔서 나로 하여금 내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예수를 믿게 하시며, 예수를 나의 주시라 선포하게 하심으로 (고전 12:3) 예수의 몸이 되게 하셨다는 말씀이죠. 저는 여러번 반복해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를 믿게 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를 믿은 자들이 바로 성령세례를 받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중생한 자, 우리말로 거듭난 자는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성령세례를 받아서 거듭난 자는
25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고전 12:25-26
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라는 말씀처럼 하나됨의 기적은 사람의 힘과 열심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세례를 통하여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거듭났으니까 그래서 교회가 하나되는 것은 성령세례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성령세례 뒤에는 온전한 변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죠, 거듭났는데 변화가 없다는게 말이 안되는 거죠. 이것이 일반적으로 성경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는 개혁주의 신학, 좀더 쉽게 설명하면 많은 장로교회들의 입장입니다. 저 또한 개혁주의 신학적인 입장이어서 성령세례를 거듭남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성도라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도무지 성도답지를 못한 겁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도 도무지 거듭난 사람답지 않은 거예요. 교회는 늘 분쟁에 휩싸여 있고 사람들은 늘 다투며 잘난척하고 교회안에서도 뽐냄과 무시가 만연하고, 함께 아파하고 함께 기뻐하는 사랑을 찾아볼 수가 없는 거예요. 성도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 하는데 빛과 소금이기는 커녕 조롱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맹맹한 성도들이 넘치는 겁니다.
이러한 문제는 비단 오늘날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러한 일들이 오래전부터 교회안에 있었고 많은 신실한 성도들은 변화를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귀한 일꾼들을 세우셔서 전세계적으로 부흥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1900년대 초기의 일이지요. 그리고 그 안에는 성령의 불같은 능력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순복음으로 알려진 오순절 계통의 교단들이 그 대표 주자였습니다. 성령대부흥운동을 통해 이 교단이 생겨났죠. 이분들은 이 말씀에 주목했습니다.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 1:4-5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죠? 실제로 성령이 불같이 임하십니다.
1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행 2:1-4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4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 말씀들을 어떻게 이해할수 있습니까. 성령세례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붙잡고 성도가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쓰던 사람들이 오순절날이 되자 불같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하며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러한 초자연적인 성령충만함의 시작점을 성령세례로 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순절 교단 교회들의 주장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주장이 매우 비 성경적이라고 보이십니까. 오순절교단은 비성경적입니까? 비성경적이었다면 이단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사실 초창기에 오순절교단을 이단취급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사도행전을 쓴 누가의 성령세례에 대한 이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거듭남을 성령세례로, 누가는 성령충만의 그 시작점을 성령세례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존 파이퍼, https://www.desiringgod.org/messages/be-filled-with-the-spirit).
그러나 바울의 주장과 누가의 주장, 장로교의 주장과 오순절교단의 주장은 함께할 수 없는 완벽하게 이질적인 주장입니까. 누가의 주장은 하나라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이단적인 주장입니까? 오늘 설교 초반에 말씀드린 이단들과 같이 성경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이단의 가르침입니까?
이단인지 아닌지의 기준은 그 주장이 성경에 기초하였는지 아닌지에 따라 나누어 집니다. 그리고 그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 정경으로 인정된 우리가 보는 바로 그 성경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과 누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똑같이 이해해야만 했을까요? 바울과 누가중에 하나는 틀림없이 이단이었을까요? 그럴리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수없이 많은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어떤 단어들은 상황에 따라 저자에 따라 심지어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다른 뜻으로 전달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경을 볼 때에 맹목적으로 문자 자체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 하는 것, 나에게 주시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의 시점을 중생으로 보느냐, 중생 이후 성령충만의 시작점으로 보느냐의 차이에 집중하지 마시고, 성령이 아니고는 참 거듭남이 있을수 없다, 참으로 거듭난자에게는 성령의 역사와 성령으로 인해 누리는 말할 수 없는 기쁨과 능력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성령세례를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에 힘쓰던 믿음의 사람들이 성령충만함과 능력을 받았다, 성령의 힘을 통하여 세상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을 가졌다, 하나님은 복음의 전파를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부어주신다,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고서는 하나됨을 이룰 수 없다는 본질적인 가르침에 집중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에 대한 바울의 이해와 누가의 이해는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울의 이해를 따르던 누가의 이해를 따르던 개혁주의 신앙을 따르던 아니면 오순절 신앙을 따르던, 우리는 예수안에서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하나되게 만드는 힘은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함 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에는 없는 하나됨을 이루어내는 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라디아서 3장 26절의 말씀을 보십시요.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갈 3:26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들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틀에서 찍어내듯 똑같아야 합니까. 우리의 모양은 들쑥날쑥 다를지라도, 그래서 서로의 가시가 서로를 찌를지라도, 우리는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충만함에 힘입어 하나를 이루어 갑니다. 아들은 서로의 모양이 다를지라도 아버지의 유업을 함께 받습니다. 나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갈3:29) 형제 자매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