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목사

이용표 목사

[ 누가복음 15장 25-32절 ]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눅 15:25-32

오늘 말씀은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의 말씀 묵상 단톡방인 “좋은 친구의 하루 묵상”에서 올렸던 말씀들 중에서 준비해 보았습니다.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 나눈 말씀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누가복음 15장에서 볼 수 있는, 세리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이에 비교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을 살펴보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와 배경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첫째는 잃은 양을 다시 찾고 기뻐하는 어떤 한 사람의 비유가 있고, 둘째는 열 드라크마(그리스의 은화) 중 잃었던 한 드라크마를 다시 찾고 역시 기뻐하는 한 여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오늘 읽은 본문이 나오는 돌아온 탕자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비유의 말씀들을 하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5장 1-3절 말씀에서 그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5:1-3]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눅 15:1-3

이 말씀을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이들을 영접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수군거렸을까요? 그들의 눈에, 세리는 동족을 착취하는 불의한 자들이었고, 죄인들은 특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부정하다 여겨지는 자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과 자신들이 정한 생활규범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죄인 취급하였는데, 여기에는 세리는 물론 행상을 하는 사람들이나 가죽세공업자 등도 해당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리와 죄인들”은 부정한 사람들로 취급당하는 소외된 자들이었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입장에서는 상종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 모습을 볼 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불편하고 불쾌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그런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시는 모습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못마땅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그런 모습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비난을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3절에는, 예수님께서 그런 그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5장의 세 가지 비유는 그런 태도를 보이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세 가지 비유에는 세리와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가 느껴지는, 공통적으로 사용된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그것은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았다는 것과, 다시 찾은 후에는 기뻐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고, 기뻐합니다. 어떤 한 여자가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고, 기뻐합니다. 그리고 어떤 한 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고, 너무 기쁜 나머지 살진 송아지를 잡아 큰 잔치를 벌입니다. 사실 이 둘째 아들은 자신이 스스로 집을 나갔지만, 아버지의 마음에 그 둘째 아들은 잃어버린 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24절을 보면, 아버지는 아들을 영접하면서,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잃었다가 다시 찾고 기뻐하였다는 표현은 세리와 죄인들, 당시의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그들은, 함께 있다가 잃어버린 자들이었고, 그래서 하나님은 간절한 마음으로 그들을 찾고 계시며, 마침내 그들이 돌아오면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는 큰 기쁨이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을 향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

반면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세리와 죄인들을 향해 가지고 있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수군대고 있는 것일까요? 그들 마음에 세리와 죄인들은 버려야할 존재들로 각인되어 있는 것입니다. 버려야할 물건, 버려진 물건들을 부르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바로 쓰레기입니다.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린 그 무엇인가에 대하여 우리는 다시 찾기를 갈망하여, 열심히 찾고, 기다립니다. 그렇기에 다시 찾았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버려진 쓰레기는 아무도 다시 찾지 않습니다. 당연히 다시 찾거나 기다릴 이유도 없고, 혹 다시 찾는다 하더라도 오히려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고 불쾌할 뿐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에는 그런 쓰레기와 같이 버려진 존재들인 세리와 죄인들인데, 그래서 무시하고 차별하고 상종조차도 하지 않는 존재들인데, 그런 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나오는 것을 예수님께서 막지 않으실 뿐더러,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며, 함께 즐거워하시니, 그들 보기에 얼마나 못마땅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비방하고 화를 냅니다. 그들이 마음속으로 분노하고 있음을 예수님은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맏아들의 모습을 통해 정확하게 드러내 주고 계십니다.

[본문 25-28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5 맏아들은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이 왔을 때에 풍악과 춤추는 소리를 듣고
26 한 종을 불러 이 무슨 일인가 물은대
27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건강한 그를 다시 맞아들이게 됨으로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28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눅 15:25-28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맏아들이 밭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집에서 흥겨운 악기 소리와 춤추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래서 종을 불러다가 무슨 일인가 물어보는데, 종의 말이 아버지에게 상속받을 재산을 받아내서 가족을 버리고 떠났던 동생이 돌아왔다고 아버지가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 말을 듣고는 그가 분노합니다. 그러면서 그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절합니다. 이 맏아들의 분노가 바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마음인 것입니다. 맏아들에게 동생은 아버지에게 불효를 저지르고,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그래서 가족의 연을 끊고 버렸어야 할, 돌아오더라도 절대 다시 받아줘서는 안 되는 쓰레기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본문 29-30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9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30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눅 15:29-30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세리와 죄인들은 이 동생과 같은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 생각에 자신들은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는” 맏아들과 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산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그에 비해 세리와 죄인들은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동생”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마치 “아버지가 그런 아들이 돌아왔다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하듯” 그런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하다 못해 불쾌하고 화가 나는 것입니다. 식사를 하더라도 자신들과 하고, 즐거움을 나누더라도 자신들과 나눠야 하는데, 마치 맏아들이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라고 푸념하고 화를 내듯이 예수님께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맏아들의 불행

맏아들은 아버지 말씀을 어김없이 잘 따르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가 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자신들의 스승들이 그 율법을 실생활에 적용하기 위해 만든 여러 가지 전통과 규범들을 철저하게 지키고자 애쓰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그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는 못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둘째는 버린 아들이 아니라, 잃어버려서 다시 찾기 갈망하고, 오매불망 기다리는 여전히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 이 마음이 어떤 마음인지는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잘 알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지갑이나 신분증, 또는 자신에게 의미있는 물건을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물건을 찾기까지 하루 종일 그 물건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경험들, 다행히 그 물건을 찾았을 때는 얼마나 안도하고 기뻐했는지에 대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그 기다림의 간절함과 찾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사진자료] 1983년 남북 이산가족 찾기 사진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앞선 두 가지의 비유를,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기뻐하신다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누가복음 15:7,10]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눅 15:7, 10

잃었다가 다시 찾은 양으로 인해, 잃었다가 다시 찾은 한 드라크마로 인해 기뻐하듯이, 잃었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하나님의 그 기쁨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맏아들은 이 기쁨의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멸시하고 차별하는 세리와 죄인들,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죄인들을 찾아오셨고, 그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기쁨에 함께 하지 못하는 불행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자부하는 신앙과 신념과 가치관은 오히려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된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돌아온 탕자 비유에서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맏아들의 불행을 통하여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깨우쳐 주시려는 예수님의 마음도 살펴보았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하여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며 살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우리가 누군가를 죄인 취급하여 그를 배척하고,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자로 여겨, 세리와 죄인과 같이 무시하고 차별하고, 때때로 그들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분노하고 있다면, 맏아들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비난하고 미워하는 그 누군가를 애타고 찾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가 회개하고 돌아올 때 더없이 기뻐하십니다. 그 기쁨이 곧 우리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삶을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