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 목사
[ 갈라디아서 3:6-9 ]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갈 3:6-9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오늘은 아브라함이 갔던 믿음의 길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 나누었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길은 첫째, 떠남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떠난 곳은 익숙한 환경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제공해주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은 그에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삶의 기반이 되는 곳이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런 곳을 과감히 떠났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갔던 믿음의 길은 갈 바를 알지 못함에도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바라보고 떠났던, 무모한 도전과 같은 길이었습니다. 믿음의 길이란, 다른 조건이 아닌 오직 믿음만이 조건이 되는 길인 것입니다.
오늘 나눌 내용은 아브라함이 갔던 믿음의 길의 여정과 결과에 대한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새로운 일을 할 때, 그 시도하는 것이 좀 무모해 보인다면, 주변 사람들이 그를 말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그 일을 시작한 사람은 “이봐라 내 선택이 옳지 않았느냐?”, “내가 이렇게 잘 되었다!”라고 할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진행이 된다면, 그 일을 반대했던 사람들의, “내 말 안 듣고 고집부리더니 꼴이 그게 뭐냐!”라는 비난과 조롱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는 스스로도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믿음의 길도 그런 상황에 놓일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에서 겪은 고난과 아픔
아브라함의 경우는 어땠을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그는 생존의 문제로 고통을 당합니다.
[창세기 12:10-13]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0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11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창 12:10-13
12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13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주리라고 하신 가나안땅으로 갔습니다. 그러면 그 땅은 축복의 땅이므로 먹을 것이 풍부하고 평안을 누리는 땅이어야 했을 텐데, 10절을 보니 그 땅에 기근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 땅에 계속 머물고 있다가는 굶어 죽게 될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입니다. 왜냐하면 애굽 사람들이 자신의 아내를 빼앗기 위해 자신을 죽일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 사라를 부인이 아닌 누이로 속여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거짓말을 그랄왕 아비멜렉 앞에서 또 다시 해야 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아브라함은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왔는데, 굶어 죽을 걱정을 하게 되고,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자신의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빼앗기는 일도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그 순간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한편으로는 무기력감을 느끼며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길에서 겪은 고난과 아픔은 이게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함께 동역하던 사람과 갈라서는 일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그랬습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단순한 의견 차이나 주변 환경의 변화로 인해 가까운 사람들과 헤어지고 갈라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애굽에서 돌아와 벧엘에 거주할 때, 조카 롯의 재산이 많아지니까 믿음의 길을 함께 했던 롯과 어쩔 수 없이 갈라서야 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길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길을 명령하실 때 아브라함과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로 큰 민족을 이루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이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 즉 그가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고 믿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그에게 반드시 아들이 생겨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 사라는 임신하지 하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지쳐갔고, 믿음이 약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을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15:2-3]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창 15:2-3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 사라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자신의 집에서 가르친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을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지만, 그는 조금씩 지쳐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여종 하갈을 통해 자손을 이어가려는 시도를 하고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이스마엘입니다. 그때가 아브라함의 나이 86세로 믿음의 길을 떠난 지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그로부터 또 다시 십여년이 지난 100세가 돼서야 비로소 아브라함은 이삭을 아들로 얻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75세에 받았으니, 아브라함은 25년의 세월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고난과 아픔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는 가장 큰 고난이 남아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창세기 22:1-2]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창 22:1-2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삭을 100세의 나이에 얻었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한 약속을 이루어주셨음을 느끼고 감사하며 이삭을 정성껏 키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을 내리십니다. 그것은 방금 읽은 말씀과 같이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명령에서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얼마나 귀한 아들인지 아심에도 그를 바치라는 것입니다. 바치는 것도 그냥 바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손으로 직접 이삭을 죽여서 번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있겠습니까? 25년을 기다려 얻은 아들인데, 줘 놓고 이렇게 다시 가져가시다니요. 아브라함은 자신이 고난과 아픔을 딛고 기다려온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만한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하였고 다행히도 이삭 대신 수풀에 걸린 숫양을 제물로 바치게 됩니다. 이후 아브라함은 끝까지 믿음의 길을 갔고, 이삭을 결혼시킨 후에 1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합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아브라함이 갔던 믿음의 길은 순탄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기근과 아내 일로 죽음을 걱정해야 했고, 함께 했던 조카 롯과 갈라서는 아픔이 있었고, 약속하신 자손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마음이 약해지는 순간도 경험을 했으며, 오랜세월 붙들고 살았던 하나님의 약속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은 상황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이 모든 고난과 아픔을 이겨내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이 갔던 믿음의 길의 결과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그의 믿음의 길에서 가장 큰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을 믿음으로 극복해 내었고, 이삭을 죽이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수풀에 걸린 숫양을 준비하셨음을 보았을 때, 그 믿음의 길을 갔던 자신의 삶이 옳은 선택이었음을 마음 깊이 새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갔던 믿음의 길의 결과는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놀라운 축복의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하셨던 복이 어떤 복이었는지가 오늘 읽은 본문 말씀에 나옵니다.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갈 3:6-9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은 창세기 12장에서 그를 부르실 때,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며,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단지 그의 혈통을 잇는 큰 민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를 통하여 나중에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큰 민족이 이루어지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고자 하신 복은 영적인 후손의 약속입니다. 본문 2절에서 하나님은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난 자들만의 그의 후손이 아니라, 온 세상에서 믿음을 가진 모든 자들이, 심지어 이방인들도 믿음을 가지면 곧 그의 자손이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참으로 놀라운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 말씀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이삭을 살리시기 위해 숫양을 준비해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작 예비하신 제물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바치라고 하신 모리아산은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 언덕이 있는 갈보리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살리시고 2천년이 지난 뒤에 같은 곳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독자 예수”를 제물로 받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완성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신 것이라고 갈라디아서에서 증언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음의 길을 가면서 복된 길이기를, 형통하고 성공하는 길이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 길에서 고난과 역경을 만나면 믿음을 버리고 다른 길로 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아브라함의 삶에서 보듯이 믿음의 길은 만사가 형통하고 성공하기만 하는 길이 아님을 꼭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때때로 고난과 아픔 그리고 오랜 인내가 필요한 길이기도 합니다. 사도바울도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마케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했지만, 유럽의 첫 성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죽도록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일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성령님이 환상으로 보여주시고 인도하신 믿음의 길이었음에도 엄청난 고난과 고통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믿음으로 그 길을 갔고, 필요한 순간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그와 함께 하였습니다.
믿음의 길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 다른 고난과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그 결과 역시 우리가 기대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축복의 순간이 됨을 아브라함을 통해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위해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숫양을 준비하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아브라함이 생각한 것 이상의 놀라운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들도 각자 하나님께서 정하신 믿음의 길을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 길이 때로는 힘들고 고달프겠지만, 그래서 믿음이 약해질 때도 있겠지만, 아브라함의 삶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통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을 믿고 인내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를 위해 준비하신 영광의 순간을 마음껏 누리는 믿음의 형제자매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