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목사

이용표 목사

[ 마태복음 7장 15-23절 ]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15-23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라는 말은 기독교인에게는 매우 기본적인 교리입니다. 이 교리는 로마서 1장 17절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는 말씀을 근거로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이 교리에 의문을 품게 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본문 21-2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는 예수님께서 주여 주여 하는 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까지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반면에 로마서 10장 13절 말씀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나옵니다. 이와 같이 로마서에서는 행함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시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어디서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하고, 반면에 다른 데서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을 말씀하시면서 서로 상반된 내용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께서 한 입을 가지고 두 말을 하시는 것일까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오늘은 믿음과 행함의 문제를 다루면서 말씀에 비추어 우리 각자의 믿음을 돌아보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두 가지 믿음

믿음과 행함의 문제를 생각해 볼 때 도움이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2:14-17, 26]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15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4-17, 26

이 말씀을 보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믿음에는 두 가지 믿음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행함이 있는 살아있는 믿음과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이렇게 믿음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보면, 믿음과 행함이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 아닌 살아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 역시 당연한 진리인데, 이 때 주의 이름을 부르되, 살아있는 믿음으로 불러야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외쳐도 그 믿음이 죽은 믿음이라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단, 이때의 살아있는 믿음과 행함은 그 순서에 있어서는 믿음이 먼저인 것이며, 행함은 믿음이 살아있다면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가 됩니다. 만일 누군가 믿음 없이 행함만을 강조한다면 이 역시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됩니다.

살아있는 믿음과 행함

그렇다면 살아있는 믿음의 행함은 무엇일까요? 본문 20절은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의 행함은 마치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듯이, 그와 같이 나무와 열매가 하나이듯, 믿음의 열매로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열매를 보면 그 믿음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본문 15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22절에서는, 마지막 심판의 때에 그들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만일 지금 어떤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예언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며, 남들이 하지 못하는 놀라운 일들을 한다면, 사람들은 아무도 그가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판단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아무리 주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일들을 한다하여도 그들의 열매를 보니 그들은 살아있는 믿음이 아닌 죽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열매

그러면 믿음의 열매는 무엇일까요? 앞에서 읽었던 야고보서 2장 15-17절 말씀을 보면,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라고 나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믿음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이웃에게 입을 옷과 먹을 양식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구제활동에 대해 명령하시면서 거듭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그네를 대접하고 고와와 과부를 돌아보라는 말씀입니다.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는 당시에 경제적 기반이 없는, 그러니까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 절대적인 약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눈에 보이는 놀라운 기적 같은 일들을 한다 하여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그래서 예수님으로부터 마지막 날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내게서 떠나가라”라는 말씀을 듣게 될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가르침을 주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25:41-46] 말씀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5:41-46


이 말씀은 오늘 본문과 같이 예수님께서 마지막 심판의 날에 일어날 일을 비유로 가르쳐주시는 말씀의 일부입니다. 방금 읽은 말씀의 앞부분 마태복음 14장 31-33절 말씀을 보면,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오른편과 왼편으로 나누는데, 오른편은 구원을 받아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고 왼편은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읽은 내용은 바로 왼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내가 주리고 목마를 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 대접해 주지 않았으며, 헐벗었을 때 입을 옷을 주지 않았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돌봐주지 않았으니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왼편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만난 적이 없습니다.”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믿음이 열매없는 죽은 믿음이었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반면에 이 내용의 앞에 나오는 34-40절에서는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병들고 옥에 갇혔을 때 나를 돌봐주었으니 천국을 상속받으라고 말씀하시는데, 역시 이들도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렇게 했습니까?”라고 묻자 너희들이 살면서 만났던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믿음의 열매가 뜻하는 것은?

앞에서 읽은 야고보서 2장과 마태복음 14장의 말씀에서,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는 헐벗고 굶주린 이웃을 돕고, 지극히 작은 자를 보살펴 주는 행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행함을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 될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자신을 포도나무에, 제자들은 포도나무 가지에 비유하시면서,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제자가 될 것이라고 하시면서, 내 제자가 되는 방법은 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나의 계명은 곧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살아있는 믿음의 열매는 그 본질이 곧 사랑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모범은 우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마태복음 말씀에서 왼편에 있는,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왜 지극히 자은 자를 도와주지 않았을까요? 그 까닭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은 조건적입니다. 나에게 도움이 될 사람들은 열심히 돕고 베풀며 사랑하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베풀지 않습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큰 권능을 행하면서도 지극히 작은 자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은 까닭은 지극히 작은 자들은 자신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도와줘도 자신들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을 도와줄 수 있으려면 예수님처럼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데, 죽은 믿음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그런 사람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러니 믿음의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거짓 선지자들은 누구일까요?

이제 다시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는 믿음의 능력이 탁월한 것 같지만, 죽은 믿음을 가진 거짓 선지자들을 그들의 열매를 보고 잘 분별하라는 교훈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얼핏 보면, 선지자 노릇을 한다고 하니, 목사들을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을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죽은 믿음과 살아있는 믿음에 대한 교훈은 교회를 다니는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대하면서, 남의 믿음을 따져 볼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의 믿음을 살펴야 합니다. 나의 믿음은 과연 죽은 믿음일까? 살아있는 믿음일까? 나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있을까? 만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려는 마음과 노력 없이 그저 때가 되면 교회에 가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하고, 찬양을 하고, 교회에 헌금을 하는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면, 나의 믿음은 열매 없는 죽은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국수집에 오는 손님들과 대화를 하다가 신앙생활을 하는지 물어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때로는 “교회에 다니십니까?”라고 묻기도 하고 “하나님을 믿으십니까?”라고 묻기도 합니다. 어떤 질문이 더 신앙생활을 묻는 질문으로 더 적절한 질문이 될까요? “하나님을 믿으십니까?”입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자동적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모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기만 한다고 모든 사람들이 살아있는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하나님을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하며 살려고 애쓰는 믿음입니다.
한편, 국수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 중에는 교회를 다니다가 여러 가지 사연들로 인해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비록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는 분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분들이 교회에 이름을 등록하고 매주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구원을 받지 못할까요? 신앙생활에 부족함이 있을 수 있지만, 오히려 그분들이 살아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행함의 열매가 있는 살아있는 믿음, 그래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믿음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지극히 작은 자일지라도 차별하지 않고 사랑하며 사는 믿음입니다. 물론 아직 죄성이 있는 우리는 예수님만큼은 완전한 사랑은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실패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아있는 믿음은 사랑에 실패를 할 수는 있어도 사랑과 무관한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나의 믿음이 사랑의 열매가 있는지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 믿음이 우리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라도 돌아보고 도와주는 살아있는 믿음인지 늘 살핌으로써,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간직한 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