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목사

이용표 목사

[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믿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용어로 영적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수식어로 사용하여 영적인 일 또는 영적인 사람이라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표현을 자주 듣다보니, 때로는 이 단어를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누구는 영적이다, 또는 누구는 영적이지 못하다 이렇게 말이지요. 그런데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이 용어에 대한 오해가 있어서 그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용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용어의 의미 새겨보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과 삶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일 또는 영적인 사람에 대한 편견들
영적인 일 또는 영적인 사람이라는 표현에 대해 생각해 보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또는 영적인 일은 어떤 일일까요? 또는 영적인 체험 또는 영적인 능력은 무엇일까요? 또 영적인 분위기는 무엇이며, 영적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은 교회에 기도 모임이 많지 않은 것을 보니 이 교회는 영적이지 못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방언을 하는 사람을 보면서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보여 주셨다고 하거나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면서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중요한 일들(입시, 취업, 사업, 결혼, 질병 등)을 앞두고 기도의 능력이 있는사람에게 기도를 받으러 간다고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을 영적인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예언하는 능력이 있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점쟁이에게 점괘를 물어보러 가듯 두려운 마음으로 그런 사람들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영적인 능력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적인 사람은 기본적인 신앙생활 즉,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기도를 잘 하고, 말씀을 많이 보는 사람, 또는 꿈, 환상, 음성 등의 신비한 체험이 있는 사람, 또는 기도 응답을 잘 받는, 소위 기도의 능력이 있는 사람, 또는 방언이나 병 고치는 능력 등의 은사를 행하는 사람, 설교를 잘하는 목사나 교회에서 장로, 권사와 같은 중요한 직분을 받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괜히 상대적으로 나는 영적이지 못한 것 같아서 위축이 되곤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서 그들을 의지하는 마음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두려운 마음을 갖고, 성경 말씀보다도 그들의 능력이나 말을 더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이런 사람들은 실제 영적일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영적인 일, 영적인 사람의 판단 기준
그렇다면 영적인 일이나 영적인 사람의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그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15-23]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15-23

거짓 선지자(15절)들은 스스로 영적인 일을 하는 영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합니다(22절). 만일 지금 우리가 이런 사람을 보면 아마도 저들은 정말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도무지 알지 못하며, 그들은 영적인 일을 한 사람들이 아니라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이니 내게서 떠나가라고(23절) 강하게 질책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스스로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자부하는 이들을 불법을 행한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들의 열매입니다. 16-20절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16-20

그들이 아무리 영적으로 보이는 일을 해도, 그들의 열매로 보니, 그들은 영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영적인 사람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스스로 영적이라며 자부하고 떠들어도 그들이 맺은 것은 나쁜 열매이기에 그들은 영적인 사람들이 아니며 오히려 불법을 행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영생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단언하십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말씀을 많이 보고, 신비한 체험을 하고, 방언을 하며, 기도로 병을 고쳐주며, 교회에서 중요한 직분을 맡고, 교회에서 봉사와 구제 활동을 많이 하고, 유창한 설교와 언변을 갖고 있어도 그것으로 그들을 영적인 일을 하는 영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만일 아름답지 못한 나쁜 열매를 맺는다면, 그들은 결코 영적인 일을 하는 것도 아니요, 영적인 사람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어떤 열매를 맺느냐가 그들의 영적인 사람인가 아닌가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맺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영적인 사람들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열매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영적이라고 할 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 영은 신비한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성령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일은 우리 안에서 성령이 행하시는 일이며, 성령이 행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 곧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행하시는 일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바로 오늘 읽은 갈라디아서 5장 22,23절 말씀이 직접적으로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갈라디아서 5:22-23] 본문 말씀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

본문 말씀은 어떤 사람이 영적인 사람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십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영적인 사람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즉, 신앙과 인격의 참된 성숙함이 곧 성령의 열매이며, 영적인 사람의 평가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영적인 사람인가 아닌가를 돌아보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어보게 됩니다. 그런데 이 체크리스트로 나 자신에게 점수를 매겨보면, 어떻습니까? 절망적이지 않은가요? 아마도 부족해도 한참 부족한 우리 자신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위대한 사도, 사도 바울도 이 맛을 내지 못할까 늘 걱정하고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9:27]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전 9:27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맛을 골고루 내는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사도 바울도 자신의 육신을 쳐서 복종하려고 노력했지만, 한편으로는 언제나 거짓 선지자들처럼 버림을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닌 의인의 신분을 받습니다. 하지만, 죄성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영생하는 완벽한 육신과 인격으로 변화되기 전까지는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의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실수와 실패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다시금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면서, 다시금 성령의 열매를 맺는 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 때문에 괴롭고 두려울 때마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완벽해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다 아심에도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잘 맺는 법
그런데, 성령의 열매를 잘 맺는 방법이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내 힘으로 맺는 것이 아니라 말씀 그대로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 맺으시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열매를 잘 맺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을 내 안에 어떻게 모실 수 있을까요? 그것은 성령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다시 신비한 체험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성령의 체험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성령님은 그런 신비스런 체험을 통해 만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성령의 체험이 없다면, 신비스런 체험이나 깊은 명상에만 바탕을 둔 신앙은 삶에서 큰 고난과 고통을 만나면 모래성처럼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근본적인 성령 체험은 무엇일까요? 가장 기본적이고 선행돼야할 성령 체험은 바로 성령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심에서 비롯되는 회개의 체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실 때 가장 먼저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 인한 슬픔과 괴로움을 알게 하시고, 동시에 나의 그 죄 값을, 나를 위해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 대신 치러주셨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성령 강림 사건이 있은 후에 사람들이 그 신비한 현상을 보고 놀라서 모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사람들 앞에 나가서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 바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신 메시야이셨음을 증거하자, 그때 그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라고 묻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사도행전 2:38]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 2:38

성령의 선물을 받기 위해 해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지요? 하나님은 베드로를 통해 회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가장 먼저 선포하신 것도 회개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 즉 죄 씻음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무엇을 받습니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을 받고, 그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시다는 확신의 증거는 주님께서 내 죄를 씻어주셨다는 회개의 체험만큼 강력한 것이 없습니다. 내 죄 씻음에 대한 확신은, 성령의 열매는 맺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절망할지라도 탕자의 마음으로라도 다시금 하나님께 돌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또한 그 확신은 어떤 고난과 고통이 오더라도 사랑하고 기뻐하며 다른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며, 그 고난과 고통을 참고 견디며,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풀고, 선한 일을 힘쓰며,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를 애쓰며, 다른 사람을 온유하게 대하는 평정심을 잃지 않도록 도우며, 내 안의 죄성을 따르지 않는 절제된 생활을 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개의 체험에서 비롯된 주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은 비록 신비한 체험을 한다고 하더라도, 힘든 일을 겪으면 믿음을 쉽게 저버리게 됩니다.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신비스런 일들은 마치 그것들이 영적인 능력이 있는 것들로 보이게 하여 우리를 그릇된 신앙으로 빠지도록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일을 겪거나 전해들을 때마다 그 다음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만일 영적으로 보이는 사람에게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는 영적인 사람이 아니며, 그가 하는 일도 영적인 일이 아닌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내가 그런 신비스런 경험을 하거나 은사를 받는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누군가 그런 일로 우리의 관심을 끈다면, 그가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지, 그에게 회개의 체험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와 같은 사람일 수 있습니다. 또한 나 역시 하나님 앞에 회개의 체험이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과 그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행했던 기적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변화되게 하는 데에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령님을 만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 열매를 보고 다른 사람들도 주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 삶이 바로 복된 삶이며 영적인 삶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