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목사

이인엽 목사

[ 열왕기상 13:4-8 ]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보인 징조대로 제단이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진지라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나를 위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여 내 손이 다시 성하게 기도하라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니 왕의 손이 다시 성하도록 전과 같이 되니라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쉬라 내가 네게 예물을 주리라
하나님의 사람이 왕께 대답하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준다 할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도 아니하고 이 곳에서는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니

열왕기상 13장 4-8절

여러분, 어릴적에 꿈이 있으셨죠. 뭐가 되고 싶으셨어요? 뭔가 특별히 되고 싶으신게 있으셨나요. 요즘은 아이들에게 나중에 커서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연예인 되고 싶다는 아이들이 많다고 하죠. 제가 어렸을 땐 가장 흔한 꿈들은 과학자, 군인, 교수, 의사 등등 이었던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어릴적 꿈대로 살아지는게 쉬운 일은 아니지요. 더욱이 그 중에는 미래의 꿈이 대통령인 아이들도 있었는데 이건 정말 이루기 어려운일 아닌가요.

한국은 대통령 임기가 달랑 5년입니다. 요즘은 연임도 할수 없지요. 그러나 그래봤자 몇명의 대통령이 있었습니까. 70년간 15명도 안되죠. 그러니 얼마나 이루기 어려운 꿈이겠습니까.. 현대에도 이런데, 옛날에는 어땠을까요?

물론 현대의 대통령과 과거의 왕이 같다고는 할수 없지만 누군가 왕의 아들인 왕자로 태어나지 않고 왕이 될수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그게 어느 나라이던 간에, 어느 시대이던 간에 왕이 되는 건 거의 꿈꾸기도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꿈도 꿀수 없는 일을 거의 거저 얻어낸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여로보암입니다.

여로보암은 에브라임지파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까지 오른 인물 요셉을 아시죠. 그의 두 아들이 므낫세와 에브라임 아닙니까? 에브라임은 동생이었지만 장자의 축복을 받았고 그 축복처럼 온 이스라엘중에서 다윗이 출생한 유다지파와 함께 가장 유력하고 강한 지파였습니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으로 들어올때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지도자 여호수아도 바로 이 에브라임지파였습니다.

그런데 여로보암이 ‘난 힘이 쎈 에브라임 지파로 태어날거야’ 하며 에브라임 지파로 태어난게 아니잖아요. 태어나 보니까 그냥 에브라임 지파였던거죠. 게다가 성경을 보면 “이 사람 여로보암은 큰 용사라.. (왕상11:28) 라고 써 있습니다. 여기 큰 용사라고 쓰여진 ‘기보르 하일‘ 이라는 히브리 원어는 힘이 센 장사, 싸움 잘하는 사람, 이런 뜻만 가지고 있는게 아닙니다. 기보르 하일이라는 말은 상류계급의 남자 그러니까 귀족이라는 말입니다. 지도층 인사라는 거지요. 태어나 보니까 그냥 귀족이었다는거죠. 물론 성경에 여로보암이 부지런해서 솔로몬의 눈에 들었고, 관직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여로보암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낮은 자리에서 가장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는 이미 출발점이 다른 사람,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수저 집안, 뒷 배경이 좋은 사람이었다는 말이지요. 여로보암의 인격과 능력을 떠나서 이미 그의 뒷 배경을 보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말입니다.

이런 여로보암이 어느날 선지자 아히야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듣지요.

열왕기상 11장 29-31의 말씀입니다.

그 즈음에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갈 때에 실로 사람 선지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나니 아히야가 새 의복을 입었고 그 두 사람만 들에 있었더라
아히야가 자기가 입은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열왕기상 11장 29-31

여로보암은 이 예언을 얼마나 믿었을까요? ‘내가 왕이 된다고? 진짜로?’ 하며 막 설레였을까요? 아니면 ‘에휴, 나라가 이렇게 견고한데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냐..’ 이렇게 그냥 무시하고 말았을까요.

여로보암이 그 당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성경은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소식이 솔로몬에게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아들도 아닌 사람이 왕이 된다는데 그걸 그냥 둘 왕이 어디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장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제거하기 위해 여로보암을 죽여 없애려 합니다. 그러자 여로보암은 애굽왕 사삭에게로 망명을 해버리지요.

그러나 여로보암의 망명길은 다윗이 겪었던 고통의 도망자 생활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 다니며 수없이 당했던 고난의 이야기는 여로보암에게는 없었다는 말이지요.

솔로몬의 처가집이던 애굽왕조를 누르고 새로운 왕조를 이룬 애굽왕 사삭은 이미 강성해진 이스라엘의 솔로몬을 견제하기 위해 솔로몬의 정적들을 환영하며 맞이해 주었습니다. 솔로몬이 죽을때까지 여로보암은 그저 편안하게 애굽왕의 도움을 받으면서 아주 잘살고 있었다는 겁니다.


.. 여로보암이 전에 솔로몬 왕의 얼굴을 피하여 애굽으로 도망하여 있었더니 이제 그 소문을 듣고 여전히 애굽에 있는 중에

열왕기상 12장 2절

이 구절은 여로보암이 솔로몬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도, 자기를 위협하는 인물이 없어졌음을 알고도, 서둘러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야겠다는 간절함이 없었던 거지요. 여로보암이 애굽에서 지낼만 했었다는 거죠. 살만한데 뭐하러 돌아갑니까. 또한 자신이 왕이 된다는 예언을 확신하지 않았다는것을 잘 보여주지 않습니까?

애초에 여로보암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메세지는 별로 큰 관심사가 아니였다는 거지요. 때로 우리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나 아쉬울것 없이 건강과 풍요를 누리며 평안히 살아가는 사람들중에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하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좋은 가문과 풍요와 건강과 세상적인 성공은 결코 축복이 아니지요.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데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없는게 낫지 않습니까.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던 여로보암이 아히야 선지자가 왕이 될것을 예언하며 걸었던 조건, 그러니까 열왕기상 11장 38절의 내용을 기억했을리가 없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지요.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 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열왕기상 11장 38절

다윗의 길을 따라가라고 했는데, 여로보암은 전혀 그럴생각이 없었습니다. 다윗은요,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 조차도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를 자신이 해할수 없다하며 2번이나 찾아온 기회를 그저 무산시킨 사람입니다.

다윗은 사람을 넘어서 사람이 비록 원수라 할지라도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길을 걸어가야할 여로보암은 사람뒤에 계시는 하나님도 자신 앞에 계시는 하나님도 전혀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사람이요, 곁에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면요, 그저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악을 부리는 겁니다. 안해도될 못된 짓을 하는 거지요.

여로보암이 그랬어요.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시려고 이스라엘을 쪼개신게 아니잖아요. 이스라엘은 어차피 솔로몬의 죄로 쪼개지기로 되있었던거고, 하나님의 은혜로 여로보암이 왕으로 선택된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미 역사하고 계시니까, 다윗처럼 인내하며 하나님을 섬기기만 하면 여로보암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의 나라가 굳건해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이 특별히 자신을 선택하셨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심중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선택받음에 대한 감사함도 있지 않았습니다.

별다른 노력없이 그저 힘센 에브라임 지파에서 태어나고 그저 유력한 귀족집안의 자녀가 되고 위험할땐 안전하게 애굽왕의 보호아래서 위기를 잘 넘기고 남들의 도움으로 왕이 된 여로보암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과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모든 것이 은혜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여로보암의 거저받아 누리는 은혜는 그저 하나님의 선택에 힘입어 아무런 수고함도 없이 아무런 희생이나 댓가도 없이 왕같은 제사장의 삶을 살고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자 그렇다면, 이처럼 거저받은 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여러분은 커다란 선물을 거저 받으시면 어떤 마음이 드십니까. 노력한 것 이상의 큰 보상을 받으시면 기분이 어떠신가요. 감사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우리의 노력이 아닌 예수님의 보혈피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를 항상 기쁘게 만드는 참 감사한 일 아닙니까. 구원에 대한 확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가 있는 성도는 그러기에 기쁨과 감사와 기도가 넘칠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믿는 자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릴 까봐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주신이도 하나님이요 거두시는 이도 하나님이라는 담대한 고백을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 감사함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부터 왔음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에게 그가 누리는 모든 것은 모두 자신의 것이었을 뿐입니다. ‘내꺼야 내꺼.. 이거 내꺼야..’ 하는 사람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의 삶을 누릴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내 것을 잃어버릴까봐 항상 두려울수밖에 없죠. 움켜쥔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없어지면 어떡하나.. 여로보암은 전전긍긍하며 근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 결국 사고를 치지요. 그가 저지른 대표적인 죄는 이렇습니다.

..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열왕기상12장 28-29절

그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열왕기상 12장 31절

그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여덟째 달 열다섯째 날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제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열왕기상 12장 33절

얼핏 보기에 여로보암의 이 모든 행동들은 별 문제가 없어 보일수도 있습니다. 아니 무슨 가나안 땅에 유행하던 아세라 신상, 바알신상을 세운 것도 아니요, 제사장 제도를 아예 없앤 것도 아니요, 하나님께 제사를 아예 안 드린것도 아니쟎아요. 그냥 날짜만 조금 바꾼 거잖아요.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잘못아는 사람들의 생각이지요.

여러분 성경속에 하나님의 이름이 몇개나 나오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 하나인가요? 우리는 몇개의 이름을 가지고 살지요? 보통 하나, 많아야 두세개지요. 그러나 성경속에 나오는 하나님의 이름은 30여가지나 됩니다.

엘로힘 – 창조자 하나님
여호와 – 스스로 계신분
엘로이 –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엘 샤다이 – 전능하신 하나님
엘 울람 – 영원하신 하나님
나함 – 위로하시는분
여호와 이레 –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여로와 닛시 –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샬롬 – 평강의 하나님
여호와 라파 – 치료자 하나님
……

등등 이처럼 여러가지의 단어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크신 하나님을 인간의 한 두가지 단어로는 담아낼수도 표현할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30여가지의 이름으로도 하나님을 다 표현할수는 없어요. 그러기에 하나님은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까. 영이신 하나님, 만유의 주되신 하나님, 그 크신 하나님을 세상의 형상으로 담아내어 표현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금붙이 송아지에 하나님을 담아내려 하였습니다.

만유의 주되신 하나님을 밭이나 갈고 죽어서 고기나 내어주는 송아지의 형상으로 표현했습니다. 여로보암에게 속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금송아지를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습니까. 이것이 여로보암이 저지른 죄입니다.

둘째로, 그는 레위인들을 쫓아내고 일반인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지금도, 이처럼 발전한 오늘날에도 안정적인 직업을 갖는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평생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이 얼마나 있을까요. 더욱이 그 옛날 가나안 땅에서 온전한 직업이 몇 되지도 않던 그 시대에 평생의 생계를 책임져주는 제사장직은 얼마나 선망의 대상이었을까요.

그런데 여로보암이 이걸 일반인들에게 열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제사장직이 직분에서 직업으로 순식간에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신성한 직분이, 오직 레위인만 감당했던 신성한 직분이, 돈벌이를 하는 직업으로 바뀌었다는 말입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은 모두 쫓겨나고 온통 돈벌이를 하러 온 일반인 제사장들로 가득 차버렸습니다. 백성이 그런 그들에게 뭘 배울수 있었겠습니까. 북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이 엉터리 제사장들과 함께 붕괴한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직분이 돈벌이를 하는 직업으로 바뀔때 성도들의 신앙은 그들과 함께 붕괴합니다. 이것이 여로보암의 죄였습니다.

끝으로, 그는 절기를 다 바꾸어 버렸죠. 절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게 아닙니다. 절기는 과거 그 시간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억하는 것에 그 의미가 있는거지요. 그런데 이 절기의 날짜를 바꿔버리니까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무의미한 제사만 남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는 제사를 드리는 겁니다.

어떤 사람이 예배를 드리러 오는데, 예배의 주인인 하나님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다면 역사하시는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저 ‘어, 오늘 예배당 장식 멋있네.. 어, 찬양 음색이, 화음이 아주 훌륭한데.. 어, 저사람 옷 멋지게 입고왔네.. 어, 저사람 좋은 차 타고 왔네..’ 이런 것만 생각하고 간다면 그 예배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배의 본질을 흐려놓은 여로보암, 그것은 그의 죄가 되었습니다. 감사함을 잃어버리고 자기가 가진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식하지 못한 여로보암은 ‘내 것’을 뺏길것 같은 두려움에 광기를 부리다 여로보암 자신이 죄 짓는 것을 넘어 온 북이스라엘 땅에 죄가 가득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죄의 원흉이된 여로보암을 그러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단번에 징벌하지 않으셨습니다. 회개할수 있는 기회를 주시죠.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 경고의 메세지를 전하시고 기적을 보여주십니다. 거기서 회개하고 돌아서면 끝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감사할줄도 하나님의 임재하심도 인식하지 못했던 여로보암은 자신의 죄악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의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일반 백성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을 산당의 제사장으로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땅 위에서 끊어져 멸망하게 되니라

열왕기상 13장 33-34절

모든 것을 얻었으나 감사할줄 모르고, 경고를 받았으나 멈추지 못한 여로보암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멸망은 단지 죽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사도신경 잘 아시죠. 우리가 늘상 외우는 이 사도신경에는 참으로 저주받은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까? ‘본디오 빌라도‘.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수억 수천의 사람들이
이 저주받은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까. 사람 이름중에 이런 이름이 또 있을까요. 이렇게 수치스러운 이름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성경속에서 여로보암의 이름이 이렇게 사용되어집니다. 성경은 많은 왕들의 죄를 이야기할때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열왕기상 15:34, 열왕기상 16:2, 열왕기상 16:19, 열왕기상 16:26, 열왕기상 22:52)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는 것 자체가 죄를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단 말입니다. 여로보암 그의 이름이 죄를 상징하는 수치스러운 이름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본디 자기것도 아니었던 것을 ‘내 것’이라 생각하며 빼앗길까봐 두려움에 죄를 지었던 여로보암은 성경속에 저주받은 이름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심은 우리 노력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성도로 불러주심은 나 자신의 공로로 인함이 아닙니다. 애써서 얻은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가끔 구원에 대해 불안해 할때가 있습니다. 뭔가 해내야 할것으로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일은 아무런 자격없는 우리를 부르셔서 왕같은 제사장 삼아주신 하나님께 오직 감사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감사함으로 그 기쁨으로 성도는 모든 죄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구원은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였습니다. 우리는 그저 만세전부터 우리를 기억하셔서 선택하여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이 모든 것을 갖고 누리게 된 것입니다. 어리석은 길을 걸어갔던 여로보암을 바라보며 구원받은 우리가 해야할 것은 오직 감사뿐임을 깨닫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넘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