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표목사

이용표 목사

[ 로마서 8장 28절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

본문 말씀에 나오는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는 구원받은 성도를 말합니다. 성도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과 모든 순간에 영향을 끼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곧 내 삶의 의미가 되며, 남들이 모르는 즐거움과 평안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의 삶에,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내 모든 것이 합력하여 하나님의 선한 일을 이루어간다는 확신을 갖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께 대한 의심과 불신이 조금씩 쌓여갈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아는 영적인 안목과 감수성이 있다면, 우리 믿음은 오히려 더욱 굳건해질 것이며, 더욱 성숙한 신앙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이 시간에 구약의 한 인물의 삶과 고백을 통해 그 방법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의 인물 중에는 고난을 겪었던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도 흔히 말하는 ‘꼬인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 있습니다. 인생의 바닥을 쳐서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다고 여겨지는 상태에 떨어졌는데, 거기서 또 다시 아래로 떨어지고, 마지막으로 가졌던 희망마저 아득히 사라져 가는 아픔을 경험해야 했던 인물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울 이루었다고 고백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누굴까요?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던 요셉
요셉은 세 번에 걸쳐서 삶의 위기를 경험합니다. 그 위기를 경험할 때마다, 불행하게도 그의 삶은 더 나쁜 상황으로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요셉은 나중에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고, 자신의 삶 가운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요셉의 이런 고백은 두 번에 걸쳐서 나옵니다. 첫 번째 고백은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이 동생 요셉임을 밝히는 순간에 나옵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고백은 야곱의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 이제 아버지 야곱이 없으니 요셉이 자신들에게 보복을 할 것이 두려워서 요셉을 찾아와 자신들은 형이 아니라 종이라고 머리를 조아리는 형들 앞에서 요셉이 말하는 장면에 나옵니다.
두 번째 고백이 나오는 [창세기 50:18-20]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18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세기 50:18-20

요셉은 이 말씀에서 비록 형들이 자신을 애굽에 팔아 넘겼으나,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으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요셉의 그런 고백은, 즉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결국에는 요셉의 총리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셉이 고난을 겪긴 했지만, 결국 사회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그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성공한 사람이라고해서 누구나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것이라고 말할까요?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들 중에 교만한 사람이 얼마
나 많습니까? 성공한 사람들 중에 그 성공의 원인을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돌리고, 하나님과 무관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세상의 성공과 출세가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하였을까요?

요셉이 겪은 삶의 위기의 순간들
요셉은 모두 세 번의 삶의 위기를 겪습니다. 첫 번째 위기는 17세가 되었을 때 찾아옵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양을 치고 있는 형들에게 갔다가 형들에게 잡혀서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애굽에 종으로 팔려갑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던 삶에서 졸지에 종으로 팔려가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 위기는 종으로 팔려간 바로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찾아옵니다. 종으로 팔려갔지만, 보디발의 인정을 받아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집사 역할을 맡게 됩니다. 비록 종의 신분이지만, 나름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을 때,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합니다. 이에 요셉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유혹을 뿌리칩니다. 그런데 그 일로 인해,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죄수의 신세로 전락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들의 신분에서 종이 된 것도 큰 불행이었는데, 겨우 살만한 순간에 그는 오히려 더 깊은 바닥으로 추락한 셈입니다. 세 번째 위기는 감옥에서 찾아옵니다. 바로왕의 떡 맡은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면서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이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면서 그가 복직을 하면 자신을 잊지 말고, 감옥에서 꺼내 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말대로 복직이 된 술 맡은 관원장은 그만 요셉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바로 이 일이 요셉에게는 세 번째 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옥에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는데, 점점 시간만 흘러가니, 그것은 곧 희망고문이 되었을 것이며, 요셉은 깊은 절망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삶의 위기에 대한 반응들
사람들은 요셉과 같은 삶의 위기를 만나면, 왜 그런 상황에 놓였는지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일반적인 경우에는 그러면서 주로 자신과 남을 탓하게 됩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탓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자책하는 마음으로 괴로워하거나, 타인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쏟아 내거나, 하나님께 대한 의심과 불신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만일 요셉이 자신의 불행에 대해 그 원인을 남들에게서 찾았다면,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졌을까요? 요셉은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자신을 형들에게 보낸 아버지와 자신을 애굽으로 팔아버린 형들, 그리고 자신을 감옥에 가게 만든 보디발과 그의 아내, 그리고 자신의 도움을 받고도 자신을 잊어버린 술 맡은 관원장에게 돌리고, 그들을 원망하며, 분노와 적개심을 품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입에는 언제나 불평과 불만으로 가득했겠지요. 만일 요셉이 그런 마음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면,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아마도 보디발과 그 아내에게 앙갚음을 하고,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잡아 가두고 보복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섭리를 알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한편, 요셉이 자신의 불행에 대해,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서 찾았다면 어땠을까요? 아마도 그는 애초에 자신의 꿈 이야기를 형들에게 한 것을 후회하였을 것이며,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형들에게 갔던 자신의 판단을 자책하고,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대해 보다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자신을 무능하게 여겨 괴로워했을 것이며, 술 맡은 관원장을 믿었던 자신을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평생을 자신의 무지와 무능을 탓하며, 우울감에 빠져 살다가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포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요셉이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했다면, 불행이 거듭될수록 그는 하나님을 떠났을 것이고, 더 이상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아는 방법
위의 가정과 같이 요셉이 만일 삶의 위기를 겪으면서 거듭되는 불행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을 탓하고 원망하며 살았다면, 요셉은 아마도 자신의 삶가운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었다는 고백은 전혀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의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고백으로 보아, 그는 자신의 불행에 대해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탓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이었을까요?

첫째, 그는 자신의 앞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9:9]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세기 39:9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자신을 유혹할 때, 하나님께 앞에 죄를 짓지 않기를 선택했습니다. 비록 종살이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삶을 여전히 하나님께서 보고 계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둘째,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통하여 무엇인가 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과 애굽와 바로의 꿈을 해석할 때, 그는 하나님께서 그 꿈을 해석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창세기 40:8]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창세기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요셉은 삶의 위기에 직면하고 불행이 거듭해서 밀려오는 순간에, 자책하거나 남탓을 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럼에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음을 잊지 않았고, 비록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처지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무엇인가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요셉의 이런 마음과 믿음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하였으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어떻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지 볼 수 있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것이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는 것을 알았으며, 그것은 많은 백성들의 생명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를 통해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줄 아는 안목을 갖는 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요셉은 그 안목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자신의 부와 권력으로 교만하지 않았으며, 그 힘으로 자신의 분노를 상대방에게 쏟아 놓지않았고, 진심으로 사랑과 용서를 베풀 수 있었습니다. 요셉이 그런 안목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고난과 불행이 거듭되더라도, 자신의 삶이 하나님 앞에 있는 것임을 잊지 않았고, 비록 지금은 느끼고 깨달을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을 통해 무언가 하고 계시다는, 또는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더라도, 우리 앞에 하나님이 계심을 잊지 않는다면, 또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통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계심을 믿는다면, 언젠가는 우리도 요셉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셨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세상의 것들로 얻을 수 없는 기쁨이며 영광입니다. 그 기쁨과 영광을 누리면 사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