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엽목사

이동엽 목사

[ 히브리서 11장 1절 ]

믿음은 바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예전에 성경을 보면서 참으로 알쏭달쏭한 구절이 있었다
뭔가 알듯하면서도 명확하게 이해가 안되는
머릿속이 간질간질한 느낌을 주는 구절이었다

바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 구절이다

너무 유명한 구절이라  다 아는 내용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말씀이 무엇을 뜻하는 가 했을 때는
뭔가 아리송한 느낌이다

사실 히브리서의 이 말은 믿음이 무엇인가 를 설명하는 말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말을 간단히 하면
믿음은 ‘실상’이요 ‘증거’ 라는 것이다

실상은 (성경에 따라서는 확신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주로 실체, 본질을 뜻하는 말
증거는 무엇인가를 입증하는 실체를 말한다

예를 들면 유리컵에 묻은 뚜렷한 지문은
지금은 없지만 (눈에 안보이지만)
누군가 이 컵을 만졌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실상과 증거는 물리적 실체이다
눈에 보이는 무엇이고
손에 잡히는 무엇이다

반면에 믿음은 보이지 않는다
만질수 도 없다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 자체는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지만)
무엇에 대한 믿음이라 했을 때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것은 마치) 사랑 자체는 보이지 않지만
누구누구에 대한 사랑은 (어떻해서든지 드러나기에 )
느껴지고 감지될 수 있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믿음 자체는 모호하지만
무엇 무엇에 대한 믿음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막연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바록 믿음 자체는 보이지 않는 것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어떤 모습으로든지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 했을 때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성품 등
하나님은 어떤 존재라는 것에 대한 지식,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앎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합니다
이 지식에 대해 우리가 가지는 확고한 신념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가지는 믿음과 흡사합니다

어린 아이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신에게 무한정 사랑을 베푸는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여 쌓고
이러한 반복된 경험을 통하여

‘아 이 존재는 나에게 무지하게 우호적인,
믿을만한, 안전한 존재이구나’ 라는

자신이 쌓은 그 지식에 대해 확고한 신념,
즉 부모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부모의 사랑에 자주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무엇무엇에 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으로 행한 일들이 자신의 삶 가운데
조만간에 실체로 드러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가령 밭에 토마토를 심는다고 생각해보면
심는 자는 이 토마토 씨가 지금 당장은 전혀 토마토처럼 생기지 않았지만
곧  자라나서 크고 달콤한 토마토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틀림없는 확신(믿음)을
가지고 있기에 지금 토마토를 심는 것이다
아마 그러한 믿음이 없다면 심지 않을 것이다

즉 토마토 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은
씨를 심는 (구체적) 행동을 하게 만드는 원천이고

그리고 이 믿음은 심는 사람의 믿음대로 얼마후
토마토의 열매라는 실체를 맺게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무 실체가 없던 믿음이
보여지고 만져지는 실체가 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집을 짓는 일도 마찬가지다
집을 짓는 사람은 건축가와 상담을 하며 집에 대한 설계를 한다
설계도에 그려진 집은 단지 그림일 뿐이다

그러나 집주인은 설계 도면의 구조물이 곧 집이라는 실체적 구조물이 될것을 확신하며
건축가에게 건축비를 지불하는 용기있는 행위를 한다

결국 도면 위에 그림으로만 존재하던 집은
집주인의 믿음에 따라
아름다운 실제 집으로서 실체가 되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믿음이 실체로 드러나는 것은) 신비한 현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 많이 경험하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세상의 만물이 같은 이치로 움직인다

우리의 외부에 실상으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 내면의 바라는 것의 결과물들인 경우가 태반이다

날고 싶다는 바램과 날수 있다는 믿음이
비행기라는 실체를 만들었고

캠핑가서도 집에서 처럼 편하게 지내고 싶다 라는 바램이
캠핑카라는 실체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주위를 둘러보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모두 나의 바램의 결과물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고보면 기실 믿음이란
우리의 내면에 충만한 것이
밖으로 드러나는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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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모든 것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안에는 의사가 된 내 모습도 있고
선생님이 된 내 모습도 있고
행복한 부부생활을 하는 나의 모습도 이미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나의 모습들은 (가능성이라는) 씨앗의 형태로만
존재할 뿐 실체로서 밖으로 드러나지 못할 뿐입니다

이는 마치
조그만 겨자 씨 안에 이미 완전한 겨자 나무가 존재하고
달걀 안에 이미 닭이 존재하는 것과 같습니다

겨자 씨가 겨자 나무가 되고
달걀이 닭이 되는데에는 굳이 믿음이 필요없습니다
그것들은 이미 그렇게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굳이 믿음이란 통로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로지 인간 만은 선악과를 먹은 이후로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인간 안의 수많은 가능성들이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늘 헤매이거나 주저 앉기 십상이다
수많은 선택의 갈림 길을 뚫고 헤쳐나갈 힘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믿음은 이를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이요 또한 통로, 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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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은 믿음에 대하여 계속해서 3절에서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즉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뜻하는 바는
눈에 보이는 실체는 오히려
그 바탕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근거한다는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믿음이라는 씨앗 속에 감추어져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이
사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존재하게 만드는 실체, 실상이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히브리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는 말로서

믿음이 어떤 것임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삶 가운데 실체화되어 나타나는 것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면

아하 그러니까
믿음이란 나의 내면의 것을 실체화 시켜주는 수단이요 통로와 같은 것이니까
내가 나의 내면에서 바라는 것을 강력하게 믿으면
그것들이 결국에는 실체로서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라는 결론에 쉽게 이르게 됩니다

즉 내가 의사가 되고 싶다면
내 안에는 이미 의사인 내 모습이 있으니
내가 의사가 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믿으면
그것이 실체가 되어 내가 의사가 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즉  믿음을 나의 소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설교들이 히브리서의 이 구절을 그런 식으로 설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가 소원하는 바가
꼭 이루러 질 것이라고 굳건하게 믿고 기도해야 한다” 라든지
“믿숩니다 하고 기도해야 그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라고 설교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설교 말씀이 크게 틀렸다고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에서 떼쓰듯 강청하는 여인의 기도를 말씀하셨고
그러한 믿음의 기도는  실제로 이루어 지기도 합니다
기도에대한 수많은 간증이 이를 증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가 강조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믿음이란 소원 성취의 수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은 소원 성취의 수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믿음을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설명한 히브리서 11장은
그 믿음을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현한 사람들을
수없이 나열하고 있지만
정작 그중의 어느 누구도 믿음을 자신의
소원 성취의 수단으로 사용한 예는 없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형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고
노아는 믿음으로 산 꼭대기에서 사람들의 수모를 겪어가며 배를 만들었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편안한 본토 친적 아비집을 떠나 정처없는 여행 길에 올랐으며
또한 믿음으로 100세 에 얻은 귀한 아들을 바치라는 가혹한 시험에 응했습니다

요셉은 믿음으로 죽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자기 해골을 가져가라고 명했으며
모세는 믿음으로 왕궁을 버리고 자기 백성에게 가서 함께 고난 받았습니다

이렇듯이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소원 성취의 수단이기는 커녕
오히려 믿음의 당사자가 겪는 수많은 고난의 원인입니다

——
이렇게 말하면
지금까지 한 믿음에 대한 설명이
다시금 제자리에 돌아온 느낌입니다
여전히 믿음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기껏
믿음이란 바라는 것의 실상으로

보이지 않지만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실상으로 존재케 하는 그 무엇이라고 설명해 놓고

그렇다고 믿는다고 무조건 가능하게 되는 것은 또 아니다?
라고 말한다면 도대체 그 믿음이란 뭔지
여전히 아리송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앞서 말씀드린
믿음이란 무엇무엇에 대한 믿음이다 라는 말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즉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인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내면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보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믿어서
(그 보이지 않던) 하나님의 존재를 자신의 삶 가운데
실체로 드러나게 하는 어떤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알게된 하나님이란 존재,
내 안에 나와 함께 거하시는 하나님이란 존재,

나의 삶을 통해 경험하게 된 하나님이란 존재를
우리의 삶가운데 실체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라는 소리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고있는 하나님은
과부와 고아 등 약자를 돌보시는 존재입니다

거짓을 싫어하고 정의를 사랑하는 존재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천대까지 은혜를 끼치는 존재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명하시고
그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내려 주시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그가 기뻐하는 행위를 하게 만듭니다

즉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행위를 통하여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벨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등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준
믿음이 바로 이러한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실체가 되어 그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좋은 친구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는 크리스천들입니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은 하나님을 믿는 데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 입니다
그 하나님의 무엇을 믿느냐입니다
그저 무턱대고 믿숩니다를 외치는 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되 그 하나님의 무엇을 믿는가를 마음속으로 정리하고
예수님을 믿되 예수님의 무엇을 믿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
예수님이 원하시는  제자된 성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