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목사

이인엽 목사

[ 사사기 16:28-31 ]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사사기 16:28-31

혹시 여러분 중에 어려서부터 신앙생활을 해오신 분이 있다면 삼손의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이 들어온 이야기일 겁니다.

삼손 하면 생각나는 내용은 힘이 센 장사, 여자에 속아 망한 사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요?

맨손으로 사자를 찢어 죽인 사람,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사람 천명을 죽인 사람, 죽기 직전에 다곤 신전을 무너뜨려 삼천명을 죽인 사람.

그리고 어린이 성경학교에서 졸지 않고 열심히 들으셨다면 나실인 삼손, 또 성경을 열심히 보시는 분이라면 단 지파인 삼손, 이스라엘의 사사 삼손까지 생각 나시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삼손을 어떤 인물로 평가 하십니까? 전반적으로 삼손에 대한 우리들의 평가는 여자에 빠져 인생을 망친 사람, 실패한 인생으로 기억하기 쉽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삼손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해서 믿음의 선진들과 그들의 믿음에 대해 기록해 놓았는데요.

히브리서 11장 32-3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히브리서 11:32-34

믿음의 선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 사람들의 이름에 삼손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는 거예요. 우리의 평가와 달라보이는 삼손에 대한 평가는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까. ‘뭘 잘했다는 거지.. 무슨 믿음이 좋았다는 거지..’

그러나 우리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성경이 삼손을 믿음의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다면 여자에게 빠져 인생을 망친 실패한 인생으로만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삼손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그의 인생을 통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에 대해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가 한번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삼손에 대한 좀더 자세한 이해가 요구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삼손이 태어날때 쯤 이스라엘의 형편은 어떠했습니까.

40년간 광야생활을 거친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가나안을 정복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은 아무도 살지 않던 비어있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에는 이미 많은 민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스라엘이 점령군으로서 가나안을 점령하고 그 땅을 차지한 것이었죠.

그러나 점령군 이스라엘은 그 위치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랬죠? 타락해서죠.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

사사기 13:1

블레셋 사람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원래 해양민족이었는데 애굽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번번히 전투에서 패한뒤 애굽의 북쪽, 그러니까 가나안 남쪽에 정착하면서 해안지역을 중심으로 점차 세력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들은 자연스럽게 가나안 남쪽에 정착한 지파인 에브라임, 베냐민, 유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규모가 작은 단 지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삼손이 태어난 시점은 이미 이스라엘 백성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블레셋이 사실상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이라는 것이 평안할리가 없었지요.

우리들 대부분이 직접 경험해 보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경험이 있습니다. 그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의 형편이 일정시대 때 한국인의 처지와 비슷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암울한 시대에 삼손이 태어나는 겁니다. 마치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것 같이 하나님의 사자가 아이를 갖지 못하고 있는 단 지파의 마노아의 아내를 만나 나실인인 삼손의 탄생을 알립니다.

나실인이 뭐죠?

민수기 6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나실인은 “네지르”, 그러니까 거룩하게 구별하다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한마디로 타락한 세상에서 구분되어서 오직 하나님께 모든 삶의 가치와 관심을 집중하면서 하나님과 적극적인 교제를 누리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제가 이제부터 나실인으로 살겠습니다“ 하는 서원을 하고 나실인의 삶을 사는 겁니다.

그럼 나실인은 레위인과 뭐가 다르죠? 비슷한 점이 많죠. 다만 레위인은 레위인의 자손으로 태어나야 되는 거고, 나실인은 레위인이 아니어도 타고난 지파가 뭐든 상관없이 자신의 의지와 서원을 통하여 세상과 구분된 거룩한 삶을 사는 거였죠.

나실인은 선택적인 서원으로 시작하다보니 기간이 있을수 있었죠. 태어나면서 타고난게 아니니까요. 보통 30일부터 평생동안 할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서원한대로 하는 거지요.

그런데 재미난 것은 삼손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나실인으로 지정되었다는 겁니다. 아니 그럴거면 레위지파로 태어나게 하시면 되지 왜 단 지파에서 나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나실인으로 구분된 삼손이 그 구분됨을 통하여 레위인 처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성전의 일을 감당하기 보다는, 블레셋에 억압받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나실인으로 거룩하게 구분되어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써 블레셋과 직접적인 싸움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셨던 겁니다.

하나님께 받은 힘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군사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삼손이 블레셋인들을 죽인 것은 자신의 여자때문에 화가나서 홧김에 무고한 사람들을 때려죽인 살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 붙들려 블레셋과 삼손 혼자서 하는 전쟁을 치렀다는 말입니다.

모두 숨죽여 블레셋의 눈치나 보며 사는 시대에, ‘우리는 안되, 모난돌이 정맞아..’ 하며 ‘민족의 자존심이 밥 먹여주냐..’ 하며 그렇게 비굴하게 하나님을 잊은 백성들이 하루의 안일함을 찾아 헤매이는 시대에, 삼손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혼자서 싸웠다는 거죠. 마치 일본의 괴수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처럼 도시락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처럼 모두가 적이 무서워 덜덜 떨고 있는 시대에 혼자서 하는 전쟁을 치뤘다는 겁니다. 달걀로 바위를 치는 전쟁을 했다는 겁니다.

삼손이 혼자 치른 전쟁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블레셋의 압제하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숨죽이며 살아가는 것을 삼손은 도무지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 결혼하겠다고 아버지인 마노아에게 폭탄 선언을 하지요. 이 말에 마노아와 그 아내는 펄쩍 뜁니다.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사사기 14:3

블레셋과의 혼인을 거부하는 삼손의 부모는 가나안의 우상숭배 빠져 하나님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삼손은 블레셋이건 뭐건 그저 상관없이 우상이건 뭐건 상관없이 사는 그런 사람이었을까요? 아니죠.

사사기 14:4의 말씀입니다.

그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까닭에 삼손이 틈을 타서 블레셋 사람을 치려 함이었으나 그의 부모는 이 일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온 것인 줄은 알지 못하였더라

사사기 14:4

사실 이 구절은 해석이 매우 어려운 구절인데요.

삼손이 블레셋과의 결혼을 이용해 블레셋을 칠 기회와 명분을 얻으려 한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해석을 먼저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해석하면, 하나님이 악한 것인 블레셋과의 결혼을 통하여 선한 것을 이루려 하셨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은 결과만을 중요하게 보시지 않으세요. 과정도 결과만큼 중요합니다. 악을 이용하여 선을 이루지 않으십니다.

다른 해석은 삼손이 블레셋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잘못인 악으로 선을 이루려는 잘못을 해나가지만 삼손의 잘못된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직 삼손의 믿음을 이용하셔서 블레셋과의 전쟁을 하나님이 계획하고 계셨다.. 라는 해석입니다.

좀더 쉽게 말하면, 완벽하지 못한 성도를 들어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계획을 하고 계셨다는 거지요.

그러기에 삼손의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은 단순한 삼손의 일탈을 고발하는 구절이 아니라 하나님이 삼손을 도우셔서 삼손이 전쟁을 하였다를 알리는 구절입니다. 

사실 삼손은 좀 엉터리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죠. 블레셋 여인과 결혼한다는 것도 그렇고요. 블레셋 여인을 만나러 가는 길에 포도원으로 가는 것도 그렇고요. 사자를 죽인 후 다시 그 죽은 사자의 시체에서 나온 꿀을 떠 먹은 것도 그렇고요.

나실인으로 서원한 사람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포도 근처에도 안가죠. 시체를 피하고 보거나 만지지도 않죠. 그리고 머리를 깍지 않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에 가고 사자의 시체에서 꿀을 따는 등, 순 엉터리 나실인 입니다. 보기엔 순 가짜 신자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수시로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엄청난 힘을 쓰며, 하나님에 대한 뚜렷한 믿음과 하나님의 도우심을 직접 받은 경험에서 나오는 뚜렷한 믿음을 가졌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에도 눈에 보기엔 경건한 신자 같은데, 훌륭한 장로님 권사님 목사님 같은데, 믿음은 하나도 없는 사람과 반면에 영 엉터리 신자 같아 보이는데, 순 가짜같아 보이는데 확고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실제로 종종 만나지 않습니까.

하여간,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 결혼을 하기 위하여 블레셋 여인의 집으로 갔습니다. 결혼잔치에서 삼손은 자신이 잡아 죽였던 사자와 거기서 나온 꿀을 소재로 블레셋 마을 청년들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내기를 걸죠.

치사하게 블레셋 청년들은 삼손의 아내를 협박해 답을 알아 냅니다. 삼손은 내기에서 졌고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배신한 사실에 분노하였습니다.

일곱째 날 해 지기 전에 성읍 사람들이 삼손에게 이르되 무엇이 꿀보다 달겠으며 무엇이 사자보다 강하겠느냐 한지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라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 곳 사람 삼십 명을 쳐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올라갔고

삼손의 아내는 삼손의 친구였던 그의 친구에게 준 바 되었더라

사사기 14:18-20

그리고 얼마후 삼손은 자신의 아내를 다시 찾으려 갑니다. 하지만 방금 보신 성경구절과 같이 삼손의 아내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어 있었죠. 부당하게 아내를 빼앗긴 삼손이 블레셋을 칠 명분을 얻죠. 삼손은 여우 삼백마리를 잡아 꼬리에 불붙은 홰를 달아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과 단과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불태웁니다. 분노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에 대한 복수로 이미 다른데로 시집간 삼손의 아내와 장인을 잡아 불태워 죽입니다. 삼손은 다시 그에 대한 복수로 블레셋인을 잡아 죽이고 도망가 숨습니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은즉 내가 너희에게 원수를 갚고야 말리라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정강이와 넓적다리를 크게 쳐서 죽이고 내려가서 에담 바위 틈에 머물렀더라

사사기 15:7-8

블레셋인들이 삼손 한 명을 대상으로 전쟁을 치르는 겁니다. 이게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이죠. 그런데 더 말도 안되는 상황이 일어납니다. 블레셋 사람에게 겁을 먹은 유다 사람 3천명이 삼손을 잡아 블레셋에게 넘겨 줍니다.

아니 3천명이면, 기드온은 300명으로 십만이 넘는 적도 물리쳤는데, 하나님과 하나님이 쓰는 장수 삼손과 함께하면 물리치고도 남을텐데, 유다 사람은 삼손을 잡아다 바칩니다.

말하자면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은신해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잡아다가 일본 사람들에게 바쳤다.. 윤봉길 의사가 피흘리며 한국사람의 집에 숨어 있는데 한국인 마을 사람들이 몽둥이 들고 찾아와 잡아다 일본 경찰에 넘겼다.. 이런 상황이 생긴겁니다.

기도 안막히죠. 그러나 삼손은 형제들을 치지 않고 순순히 잡혀가 줍니다. 그러고는 잡혀가던 삼손은 결박했던 밧줄을 끊고 나귀 턱뼈를 들어 블레셋 사람 천명을 죽입니다. 대승을 거둔거죠.

블레셋 사람들은 이제 감히 삼손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믿은 삼손,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은 삼손은 달걀로 바위를 깨는 놀라운 기적을 이루어 냅니다.

삼손은 이제 그 힘을 이용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는 사사가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사사기 15:20

삼손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났다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삼손을 실패한 인생으로 기억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사사 삼손은 이스라엘을 이끄는 사사의 역활을 20년이나 감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안목의 정욕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삼손은 드릴라에게 빠져 힘의 근원이 되는 비밀을 알려주고 그대로 그 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안목의 정욕을 이끈 두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사사기 16:19-21

완전히 망했죠,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다 끝난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삼손은 다 끝난 것 같아 보이는 이 순간에 다시한번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굳게 세웁니다. ‘에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을꺼야.. 내가 이렇게 죄를 졌는데.. 내가 이렇게 잘못했는데.. 에이, 나 같은 걸 뭐라고 기억하시겠어..’ 이렇게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사사기 16:28-3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삼손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무엇을 배우십니까.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경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수시로 안목의 정욕을 이기지 못해 죄가운데로 빠져 듭니다. 우리는 누구나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일을 행하기도 하고, 죄를 짓기도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지은 죄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죄로 인해 실족했으나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붙드는 삼손과 같이 어떤 경우 어떤 처지에도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을 배웁시다.

망한채로 끝나버릴수도 있던 삼손은 끝까지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듬으로 죽음의 순간에 가장 큰 성공을 이루어 냈습니다.

인생의 성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맡기신 영적 전쟁, 달걀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이 고통스럽고 외로운 전쟁,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세상이 한없이 악함으로 곤고해져 간다하더라도, 나는, 내 상황은 지금 어떠하든 간에,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이 영적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한 자로 우뚝 설 것입니다.

우리가 그 믿음의 끈을 우리 육신의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결코 놓지 않는다면 삼손이 끝까지 믿음을 지켜 믿음의 선진으로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이 우리도 믿음으로 천국 생명책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