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엽목사

이동엽

[ 마가복음 2:23-28 ]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마가복음 2:23-28

사람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주변에 자기편인 사람과
자기편이 아닌 사람들이 있게 마련이다

예수님 주변에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중에는
당시의 사회에서 소외되고 가난한 부류의 사람들이 많았던 반면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사람들은 주로
사회의 지도급 계층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한 사회의 지도층 중에서
예수님을 시기하고 질투하며
흠잡을 궁리만을 하던 부류중 하나가
바로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리새인들이다

그런데 이 바리새인 들은 당시의
제사장 계급으로서 종교 권력을 쥐고 있던
또다른 지도층 계급이었던 사두개인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당시 로마 식민지였던 유대 사회에서
로마 제국은 정치 권력은 제재를 했지만

대제사장 이라든가 서기관등의
정치력을 포기한 종교 권력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풀고 있었던 터라

당시 제사징 그룹이었던 사두개인들은
사회의 지도급 계층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은 이들과는 달리
당시의 지배 권력과는 거리를 둔
민중 편에 선 또 다른 색깔의 지도층 그룹이었다

사두개인, 바리새인 의 구분은
어떤 명확한 기준에 따른 구분이 아니기에
약간은 모호한 개념이기는 하나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분명히 구분되는 두 그룹이었다

설명을 조금 덧붙이자면
사두개파, 사두개인 이라하면
옛날 다윗 왕 시절
다윗을 따랐던 충실한 제사장이 사독이었고
이후 사독의 뒤를 이은 제사장 계열을
사두개인, 혹은 사두개파 사람들이라고 칭하는데

세월이 흘러 이들은 정통 제사장 그룹,
즉 국가 종교 권력을 이루게 돠었고
사두개인라함은 이들을 가르키는 말이 되었다

그리하여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인은
로마 정부의 승인 아래
유대민족의 종교 관련 모든 업무를
맡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 기득권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당시 사두개인들은 각종 성전세를 거두고,
유월절이면 헌금을 위한 환전, 희생 제물 판매등으로
폭리를 취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해서
백성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던터라
부패한 종교 지도자들이란
이미지가 강했던 것 같다

반면에 바리새파 바리새인들은
사두개파 사람들과는 달리
정치 권력과 손을 잡지 않고 민중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지지를 받는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이들은 기득권 세력인 사두개인들과는 달리
구약의 가르침과 장로의 유전을 따르며
솔선수범하여 금식과 헌금등 율법을 철저히 지켜
백성들의 존경을 받고있던 사회 지도층이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유독 바리새파 사람들을 심하게
나무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예수가
사두개파 보다 바리새인이 더 미워해서라기 보다는

민중들 속에서 사역하신 예수님에게는
당시 귀족 계급에 속해있던 사두개인들보다는
바리새 인 들과 마주할 기회가 더 많았기에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복음서에는
자연스레 바래새인과의 논쟁에 관한 기록이 많게 되었고
이들과의 논쟁 속에서 그들의 꾸짖는 장면이 많이 기록된 것일 뿐이다
——

복음서에 나오는 유명한 논쟁중의 하나가 바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간의
안식일 논쟁이다

구약의 율법 수호에 목숨을 걸었던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의 핵심계명중 하나인 안식일 계명을…
그것도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집회 장소에서
보란듯이 어긴 것은
그들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였던 것이다

그들이 당장에 예수를 어찌하지 못한것은
단지 그들의 지지기반인 민중이
예수의 편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그들은 호시 탐탐 민중들 앞에서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어
민중으로부터 예수를 떼어 놓을 궁리를 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차에 예수가 보란듯이 대놓고 안식일을 어기자
바리새인은 이를 걸고 넘어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조금도 물러섬 없이 당당히
바리새인의 공격에 맞선다
예수의 주장은 너무나 심플하였다

과연 안식일이 무엇을 위한 것이며
안식일 법이 왜 만들어 졌냐는 것이다

즉 안식일의 의미와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본질과 내용을 망각한 채
혹은 무시한 채
그저 기계적으로..
강제적으로 부과된 법은
마치 무거운 멍에와 같이
도리어 사람들을 구속하고 억압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 말은 율법을 무시하라는 소리가 결코 아니다
예수또한 율법의 일점일획도 허되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예수가 일부러 안식일 규정을 어겨가며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율법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율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 가지다
오늘날에도 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서
법의 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법이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법이 기계적으로 지켜지기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 아나라는 것이다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서 무조건 동일한 처벌이 내려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상 참작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우리는 법앞에서 감히
본질을 따지지 못한다
왜라는 질문을 잘 하지 못한다
법은 곧 권력이기 때문이다

권력 앞에서 권력과 맞서는 것은피곤한 일이고
때로는 소용없는 짓일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의 자유와 권리는 자꾸만 줄어 든다

그래서 결국 자유란 주체적인 사람만이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저 남의 판단과 결정에 자신을 내 맡기는 사람은
당장에 몸은 편할지 모르나
진정한 자유를 맛볼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가 구원과 자유를 선포하며
사람들에게 율법의 의미와 본질을 깨닫기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전통이니까 무조건 옳다든다
전문가의 의견이니까 무조건 따라야 한다든가
하는 것은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지만
그 전문가가 나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전문가가 대신 판단해주고
결정해주기를 바란다
실패와 책임이 두려워서이다

엉뚱한 이야기인것 같지만
목사에게 신앙 상담을 하는 대부분의 경우도 마찬가짇다

대부분의 신앙 상담은 신앙의 원리에 대한 물음보다는

신앙이 다른데 시람과 결혼을 햐도 좋을까요?
주일에 출근을 해야하는데 이 직장 다녀도 되나요? 등의
목사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라는 물음이다

물론 자신의 선택이나 판단에 대해
목사라는 전문가에게 신앙적인 조언을 받으려는 것은
당연한 신앙 행위이긴 하지만

좀더 그 속내를 솔직히 생각해 본다면
목사의 판단에 맡겨 나중에 하나님 앞에서
선택에 대한 책임을 면해보고자 하는
본능적인 생각이 깔려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목사가 주례를 서준 결혼인데 왜 이렇게 되었나요?
목사가 개업 예배를 해준 사업인데 왜 망했나요?
하나님 억울합니다 저는 목사가 하라는 대로
순종했을뿐입니다요..

그러나 아무리 신실한 목사라 할지라도
나의 구원을 보장해 줄수는 없다

아무리 바리새인이 신실하다 해도.. 그리고
그러한 바리새인의 가르침에 따라
아무리 율법을 철저히 지킨다 해도..

스스로가 율법앞에 바로서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구원하실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안식일 규정을 일부러 어겨가며
가르치고자 했던 바가 바로 그것이다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가 무엇인지를
스스로가 납득하고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아무리 철저히 안식일을 지킨다 하더라도
그것은 구원과는 상관없는 의미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율법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있는 것이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생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토록 자명하고도 간단한 공식은
현대의 어느 종교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교회 건축헌금을 내기 위해 혹은
절간 대웅전의 기와 지붕을 올리기 위해

집을 팔았다는 이야기는 어느 신앙심 좋은 사람의
본받을 만한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조금 다른 이야기같긴 하지만
요즘 주식 투자 하는 사람이 많아 이야기한다

목사님 성도가 주식을 해도 괜칞나요 라고 묻는 사람부터
있지만 그것은 또다른 이야기니 논외로 하고

사람들은 보통 주식을 하며 어느 주식을 오를까?
어떤 주식을 사야하나? 에는 관심이 많지만
내가 주식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나 만일 주식을 사면서 내가 이 주식을 왜 사는지
스스로 그 이유와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안다면

그사람은 주식을 가지고 투기 즉 도박을 하고있는것과 같다

우리가 주식을 투기가 아닌 투자라고 부르는 이유는
주식을 사는 일이 사업과 같기 때문이다

아마존 주식을 살때
남들이 오른다니까 나도 사야지 하며 사는 것은 일종의 투기다

이런 사람들은 주가의 오르내림에 일희일비 하기 쉽고
돈을 잃기 쉽상이다

진정한 주식투자의 의미는 아마존 주식을 살때
내가 확신 가운데 아마존 창업자와 동업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설령 이 기업이 다소 어려워지더라도 기업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함께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주식이란 언제든지 사고 팔수 있다
사업에 동업하더라도 언제든지 판단에 따라
갈라설수 있듯이
망해가는 기업의 주식을 끝까지 가지고 있을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 결정은 언제나 그 사업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판단과 의지, 결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안식일 논쟁 또헌 같은 맥락이다

안식일은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지 그 의미를
되새기며 지켜야 비로서 의미가 있다

아무리 안식일을 철저히 지킨다 할지라
그 안식일을 왜 지켜야 하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전통이니까, 그래야만 하니까 하며
기계적으로 지킨다면…
그리고 안지키는 사람을
율법에 순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비난만 한다면

필경 그사람은 안식일 논쟁에서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일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 있어서 주일 성수문제라든가
온라인 예배에 관한 문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가 왜 예배를 해야하는지
예배란 과연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스스로가 치열하게 고민해보고 이에대해
자신이 납득할만한 확고한 답을 가지지 못한채
그저 주일은 교회가는 날
주일은 헌금하는 날

이렇게 만 하면 복을 받는다더라
이렇게만 하면 천국 간다더라
하며 신앙 생활한다면

이는 예수님에게 꾸짖음 받은 바래새인과
하등 다를바 없다

또한
남들이 주식 오른다더라
비트코인 사면 돈번다더라
하며 투자아닌 투기를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과 하등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오늘 본문애서 안식일 문제로 바리새인을 꾸짖고 계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저 2000년전 일어난
나와는 상관없는 헤프닝이 아니라
바로 나에게 하시는 신앙적 메시지임을 깨닫고
이 시간을
자신의 신앙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으로 삼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