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목사

이인엽 목사

[ 창세기 32장24-28절 ]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세기 32:24-28

갈릴리 호수와 사해 중간에는 요단강이 있고 그 요단강의 지류 중에 제법 물살이  빠른 한 지류가 있는데 그 강의 이름은 얍복강입니다. 얍복이라는 이름은 원래 야보크 즉 싸우다라는 뜻에서 나온 단어인것을 보면 이 강의 이름이 처음부터 얍복강은 아니었던것 같아요. 아마도 야곱을 기념하며 후손들이 붙인 이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왜 이 조그만 강의 지류는 그런 기념비적인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바로 그 강가의 나루터,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문앞과 같은 그곳에서 이미 해가 다 넘어간 어두운 강가에 한 남자가 서성이고 있습니다. 가만히 그 사람을 보니까 그냥 서성이는게 아니라 안절부절을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모두가 쉬는 어두운 밤 혼자서 잠들지 못하고 강가에서 근심으로 서성이는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이 사람의 이름은 야곱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은 그 밤에 왜 거기서 근심하고 있었을까요. 야곱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요.

20여년 전 야곱은 쌍둥이 형인 에서를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지요.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채기 위해서 에서인 척 이삭을 속였고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을 받습니다. 그 일로 에서의 노여움을 사게 되었고,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에서가 너무 화가 나서 ‘죽일거야.. 내가 이 야곱을 꼭 죽일꺼야..’ 이러구 돌아다닌거죠.

당장 죽게 되자 야곱은 살아남으려고 지팡이 하나 들고 도망 나와서 모든 것을 뒤로한 채 요단강을 건너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도망자였던 야곱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야곱은 광야 어두운 밤에 그렇게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과 약속에 힘입어 정말 종살이와 다름없는 고단한 20년을 라반 아래에서 견디어 살아 냈습니다. 그 고단한 삶속에서 야곱은 아내와 자식과 재산을 이루어 냈지요.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때나 이루었나이다.

창세기 32:10

‘난 참 형편없는 사람인데.. 난 참 별볼일 없는 사람인데..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나같이 하찮은 사람을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은혜를 주셔서 내가 이 풍성함을, 내가 이 넘침을 갖게 되었습니다..’ 라고 야곱이 고백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 고난의 끝자락에 얻은 행복, 풍요, 얼마나 귀합니까. 얼마나 소중합니까.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께 무엇을 받았는지 잘 알았어요. 야곱은 자신이 가진 풍요때문에 교만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정확히 이해했어요. 감사했습니다.  받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겸손함이 있었습니다.

이런 야곱이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세기 31:3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은 추석 명절날 타지에서 돌아오는 막내아들을 반기는 고향땅이 아닙니다.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환대와 반가운 얼굴들이 있는 곳도 아닙니다. 죽을까봐 무서워서 도망 나왔던 곳이 바로 그 곳 입니다. 내 무덤을 파놓고 기다리는 곳이 바로 그 곳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곳을 향해 나아가지요. 하나님의 명령, 가나안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은 야곱은 레아와 라헬을 조용히 불러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여보들아, 내 말좀 들어봐.. 여보들도 알다시피 여보들 아버지가 보통사람 아니쟎아.. 날 가지고 얼마나 괴롭혔니.. 맨날 거짓말이나 하고.. 급여는 맨날 바꾸고.. 요즘은 내가 돈 좀 버는것 같으니까 아주 눈빛이 바뀌었어.. 내가 자기 돈 뺏어가는것도 아니고, 내가 벌어서 내가 가지고 가는데, 그걸 그렇게 욕심을내고.. 나한테 다 뺏기는 것처럼 아주 가관이야.. 사실 내가 말을 안해서 그렇지 내가 참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니.. 근데, 어제밤 꿈에 하나님의 사자가 오셨어. 나보라 떠나라네, 고향으로 돌아가라네. 여보들은 어쩔거야. 나랑 같이 갈 거야?’

레아와 라헬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라헬과 레아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우리 아버지 집에서 무슨 분깃이나 유산이 있으리요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어버렸으니 아버지가 우리를 외국인처럼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에게서 취하여 가신 재물은 우리와 우리 자식의 것이니 이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르신 일을 다 준행하라

창세기 31:14-16

근데 사실 그 길은 수 많은 장애물과 수 많은 위협과 수 많은 고통의 길이었습니다. 잘못하면 모든 것을 잃고 생명마저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시는 길이 꽃길만 있습니까. 하나님이 가라시는 길은 승리의 영광만 있습니까. 말씀에 복종해 따라 가기만 하면 만사형통, 평탄대로 입니까. 떄로는 가라시는 그 길이 가시밭길이도 한겁니다. 온 몸이 찢기고 온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고통의 길, 십자가를 지는 길일수도 있는겁니다. 목숨을 내어놓아야 할 순교의 길 일수도 있는 겁니다. 말할수 없는 수모와 말할수 없는 배신과 말할수 없는  답답함의 길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몰랐을까요 그길을. 알았지요. 알고 있었지요.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한 길인지. 그러나 그는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위험을 겪지요.

야곱의 재산을 아직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는 외삼촌 라반이 분기탱천해서 형제들과 함께 야곱을 쫓아옵니다. 만약 라반이 그 기분으로 계속 쫓아와 야곱을 만났더라면, 분명 큰일이 일어났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일을 막으십니다.

밤에 하나님이 아람 사람 라반에게 현몽하여 이르시되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

창세기 31:24

‘아, 기분같아서는.. 그냥 내 성질 같아서는.. 그냥..’ 라반이 이러고 있는데 하나님이 그를 막으시는 거예요. 그냥 둬라, 해치지 마라.. 라반은 야곱을 해칠 수 없었어요. 라반은 자신이 그렇게 시기 질투하는 야곱을 누가 지켜주고 계시는 줄 알 수 있었어요. 여호와 하나님 그분이 야곱을 지키 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참 좋겠어요. 누군가 여러분을 해하려 해도, 누군가 여러분을 망가뜨리려 해도, 여러분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감히 어쩌지 못하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존재가 여러분의 일상을 통하여 들어나는 일, 그런 일들이 여러분의 삶 속에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여러분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생각나고 여러분을 스쳐지나기만 해도 예수의 향기가 묻어나고 여러분의 찬양과 기도속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증거되는 그런 삶을 사십시요. 야곱과 같이 순종하고 감사하며 겸손하고 기도하면,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음성에 귀 기울이면 여러분도, 우리도 그러한 삶을 살 수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첫번째 위기를 넘겼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군대를 만나지요.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세기 32:1-2

하나님의 군대는 원어로 ‘마하네 엘로힘’인데, 능력의 하나님의 군대, 권능의 하나님의 군대입니다. 이 마하네 엘로힘이 야곱의 무리를 둘러쌓습니다. 사실 에서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간 야곱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게 맞죠. 그래야 되죠. 그래야 됩니다.

마하네 엘로힘, 권능의 하나님의 군대가 야곱과 그 무리를 돌보는데 에서가 뭔 상관이고 에서의 적의와 칼날이 뭔 상관이고 400명의 장성이 뭔 상관이겠습니까. 끝난거지요. 그냥 평안하게 걸어가서 ‘형, 에서 형, 잘 있었어? 오랜만이네.. 많이 늙었네 형도.. 나? 난 잘 있었어.. 이제 살만해..’ 이러고 나가면 그만입니다. 마하네 엘로힘이면 그만입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살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약속된 거야요.

그러나 마치 훗날 애굽의 종살이를 피해 가나안으로 들어가려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탐꾼을 보냈다가 그들이 가져온 정보에 놀라고 갑자기 두려워져서 그 두려움으로 광야에서 40년을 떨며 지냈던 것과 같이, 야곱은 종들을 에서에게 보냈고 그들이 가져온 소식,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창세기 32:6)’ 라는 소식을 듣고 야곱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버립니다.

그리고 있는 난리 없는 난리를 다 칩니다. ‘야야야 !!! 가만있어봐.. 일단 떼를 둘로 나눠봐.. 응.. 한꺼번에 다 죽을순 없잖아.. 한떼가 죽으면 한떼는 도망가 응?’’

‘아니야, 아니야,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내가 기도를 해야지.. 기도.. 내가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해야지.. 하나님 약속했잖아요, 살려준다고.. 하나님, 하나님이 돌아오라고 그랬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나를 이렇게 고맙게 살리셨는데.. 근데 인제 나 하나 죽는것도 모자라서 몰살을 시키십니까. 내 자식들 번성하게 해주신다고 했쟎아요.. 이거 어떻게 되는거에요.. 4백명을 데리고 온데요, 에서가.. 다 죽었어요 우리는 이제..’

그렇게 기도를 하다가 또 다시 ‘아냐 아냐!!! 내가 이럴때가 아냐, 내가 선물을 보내면 살려줄지도 몰라.. 에서 형이 원래 선물같은 거 정말 좋아했어.. 공짜로 받는거 정말 좋아해.. 선물을 보내면 맘을 바꿀지도 몰라..’ 그리고 엄청난 양의 선물을 에서에게 보냅니다. 하루종일 그렇게 난리를 치고 진이 다빠진 밤에 야곱은 가족들을 얍복강 너머로 보냅니다. ‘야, 이제 너희들도 가라..’ 그렇게 강을 건너는 고물고물한 아내와 자식들의 뒷 모습을 보면서 야곱은 말할수 없는 불안감과 안타까움에 서 있었습니다.

근심으로 얍복강가를 서성이는 이 사람, 이사람의 이름이 바로 야곱입니다. 위기 앞에서 완전히 믿음을 놓쳐 버리는 야곱의 모습은 오늘을 사는 연약한 성도의 모습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 연약한 야곱앞에 다시 한 사람이 섭니다. 그리고 뜬금없이 야곱은 그사람과 씨름을 하지요. 그 내용이 여러분과 함께 읽은 창세기 32장 24-28절의 말씀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세기 32:24-28

하루종일 정신없이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뛰던 야곱은 늦은 밤 강가에 홀로 남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적막감, 외로움, 두려움.. 그건 마치 처음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들던 그날 밤과 같았습니다. 그 순간 야곱은 하나님께 매어 달립니다. 환도뼈가 부러지는 고통속에서도 축복을 간구하며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새 이름,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얻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겠습니까.

그것은 마치 어린 아들에게 일부러 져주는 척 하는 아버지와 같이 ‘야.. 아버지하고 팔씨름하자.. 에구에구 아버지가 졌네.. 우리아들 힘세네.. 우리 아들이 이겼네..’ 하는 아버지와 같이 야곱에게 져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야곱은 그 사랑에 힘입어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사랑의 하나님 안에서 승리자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자 이스라엘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담대히 에서를 만나러 나갔습니다.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명의 장정을 거느리오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그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창세기 33:1-3

이 장면이 에서의 눈에는 어떻게 보였을까요? 에서는 용서할수 없었죠. 400명이나 되는 장정들을 모아 야곱의 모든 무리를 다 죽이려 했어요. ‘야.. 다나와.. 너희들 할일있어..’ 에서는 야곱을 이렇게 기억했을겁니다. 부잣집 귀공자, 뺀질뺀질한 사기꾼, 기름이 잘잘 흐르는 욕심쟁이,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얄미운 녀석.. 에서에게 야곱은 그랬어요. 너무 너무 미워서 없애야 할 원수. 에서는 야곱을 용서할수 없었습니다.

그런 에서를 향하여 가축들과 종들과 마치 퍼레이드 하듯이 여러 떼가 지나가고 그 뒤를 이어 여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걸어오는 거예요. ‘오, 야곱의 아내들이구나.. 요녀석들이 그 왠수의 애들이지..’ 그런데 순간, 한 여인이 에서의 눈에 들어옵니다. 너무 못생기고 거기다 앞도 잘 못 보는것같은 좀 이상한 여자가 한명 있습니다. ‘어, 뭐지? 저 사람도 야곱의 아내인가.. 왜 저런 여자하고 결혼을…?’ 강팍했던 에서의 마음이 살짝 흔들립니다. 그 뒤로 야곱이 보이죠. 야곱이 밤새 뭘했습니까. 씨름을 했죠. 온몸은 땀에 젖었고, 머리는 다 엉클어지고, 옷은 흙투성이 인데, 게다가 다리를 절룩절룩 하면서 고꾸라 질듯이 절을 하면서 자기에게 오는 겁니다. 에서가 생각했던 야곱은 거기에 없었어요. 죽일듯이 미웠던 야곱은 거기에 없었어요. 뺀질뺀질하고 부자집 귀공자 같던 야곱은 거기 없었습니다. 그저 초라하고 불쌍하기 짝이없는 게다가 다리마저 저는  동생이 거기 있었습니다.

에서의 눈물이 터집니다. 에서의 오래된 미움이 무너졌습니다. 그들은 다시 쌍둥이 형제가 되어 서로 안고 웁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깨질수 없을 것같은 강함을 연약함을 통하여 이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에 승리한 자 야곱은 자신의 강함이 아닌, 자신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연약함을 통하여 죽음의 위기를 이기고 승리하였습니다. 강한 것, 많은 것, 풍요로움 만을 선호하는 무정한 오늘날, 연약함을 들어 강함을 넘어서게 하신 하나님과 야곱의 동행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연약함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부족함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애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승리의 도구가 되어질수 있음을 확신하게 만듭니다.

야곱처럼 하나님과 함께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