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 목사

창세기 31장5-9절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그대들의 아버지의 안색을 본즉 내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러할지라도 내 아버지의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셨느니라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세기 31장 5-9절

고통과 고난은 늘 부정적인 의미만을 갖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난속에서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아픔이 우리를 깨어나게 하기도 하고요. 우리 교회의 형제 자매님들이 갖고 계신 그 육신의 장애가 더욱 더 깊은 영성으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기도 하지요.

아프지 않고 우리의 영성이, 우리의 지혜가, 우리의 믿음이 그저 무럭무럭 자라나면 좋으련만 그런 경우는 사실 별로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는 성장통이 있습니다.

오늘도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으로 인한 성장과 그 고통으로 인한 좌절의 갈림길에서 헤매이고 있습니다. ‘에이, 누가 그렇게 힘들어요? 다들 멀쩡히 잘사는것 같은데..’ 그렇게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사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의 삶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죽을만큼 고통스러운 경우도 부지기수지요.

몇주 전 저는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맨손으로 10여년전에 미국에 오셔서 정말 열심히 일해 자녀를 양육하고 재산도 일구신 분입니다. 항상 다정하시고 참 좋으신 분인데 제가 목회와 일을 같이하고 있는 목사라는것을 아시는 분이에요. 우리 좋은친구교회 소식을 들으시면서 격려도 해주시고 또 이준수 목사님과 사모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더니 큰 은혜받았다며 눈물짓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번에 제게 이렇게 물으십니다. ‘목사님, 자살하면 안되는거죠? 성도는 자살하면 천국 못가죠.. 사는게 너무 허무하고 힘들어요.. 견뎌야할 이유를 못찾겠어요.’ 여러분이 그 자리에 계셨으면 뭐라고 하셨겠습니까. 여러분이라면 뭐라 위로하셨겠습니까. ‘뭔소리에요, 나도 사는데..’ 그러시겠습니까.. 힘들다고 하는 사람한테 제일 위로 안되는 대답이 뭔지 아십니까. ‘아구.. 힘들어 죽겠어..’ 이런 사람한테 ‘나도 힘들어 나도.. 너만 어렵냐.. 사는거 다 힘든거야..’ 이건 모 정말 최악의 위로죠. 아니 위로가 아니라 상처에 소금물을 붓는거지요. 그런말 들으려고 힘들다고 하는게 아니잖아요.

그러니 뭐라고 대답하겠습니까. 거기서 설교를 하겠습니까. 붙잡고 앉아서 신앙상담을 하겠습니까. 아무말도, 아무 위로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분이 겪는 고통이 내가 아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걸 너무도 잘 알수 있는거에요.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함부로 위로할수가 없었어요. 

저는 장애인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목사입니다. 언젠가부터 저의 목회의 방향은 장애인을 향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 외로움과 좌절, 서운함과 우울함, 불편함과 괴로움을 제가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들이 겪는 고통이 제가 아는 것보다 훨씬 크다는 걸 전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뭐라고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겁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고통은 사실 타인이 이해하기엔 너무도 깊습니다.

그러기에 저는 그 고통에 대한 위로를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구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그 누구도 여러분을 충분히 위로해줄만한 그런  이해와 능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직 참된 위로는,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신바 되시는 (마태복음 10장30절),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나의 눈물과 나의 아픔을 아시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성경속에는 고통의 순간을 살아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위로하시는지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볼수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지못하고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여도 나의 모든 것을 아시며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여러분들도 들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외롭게 광야에 혼자 버려졌던 야곱은 여호와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상징인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를 그곳 광야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로의 말씀을 듣죠. 그 말씀이 창세기 28장15절에 나오는데 저는 그 말씀이 이렇게 들립니다.

‘야곱아 일어나라! 야곱아 울지마라!

나는 만군의 여호와니라. 나는 너의 조부 아브라함을 살린 하나님이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던지.

야곱아 왜 겁을 내느냐, 내가 너를 지키리라.

내가 네게 약속한 땅 바로 이곳으로 내가 네게 약속한 축복을 이루기 위하여 너를 돌보며 인도하여 반드시 돌아오게 하리라.

나는 절대로 네게 약속한 모든 축복을 다 이룰 때까지 너를 떠나 버려두지 아니하리라.

너는 결코 혼자가 아니니라.’

뭐가 더 필요합니까, 뭘 더 바랍니까. 좀 망했으면 어때.. 좀 아프면 어때.. 좀 불편하면, 힘들면, 외로우면 어때..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 잖아요. 여호와 하나님이 축복을 보증 하신다 잖아요. 여호와 하나님이 지켜주시며 떠나지 않으신다고 말씀 하시잖아요. 하나님이 이렇게 위로하시는데 어디서 더 낳은 위로를 찾겠습니까. 어디 누가 더 좋은 위로를 줄수 있겠습니까.

야곱은 신이났어요. 완전히 망했던 야곱은 힘이 솟았어요. 창세기 29장1절에 우리말로 “야곱이 길을 떠나”라고 해석되 있는 단어를 원문 그대로 해석해보면, “그리고 그가 신나서 발을 들어올렸다“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완전히 망해서 힘없이 터덜터덜 광야를 걸어갔던 야곱이 하룻밤 사이에 변해서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신나고 힘차게 걸어 나갔다는 겁니다. 완전하신 주님, 완벽한 위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하는 우리 장애인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그런 위로와 약속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한분이면 족합니다..’ 라는 고백이 여러분의 입술을 통하여 울려 퍼지길 소망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하박국 3장17-19절

야곱은 이제 고난을 넘어서는 힘을 얻었습니다. 축복을 위해 이익을 위해 자신의 지식과 능력에 의지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하던 야곱은 변화되었습니다. 그의 엄마 리브가에게 더 이상 의지할 필요도 없었졌습니다. 오직 나의 여호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통하여 야곱은 힘을 얻었습니다.

자 이제, 광야속에서 하나님을 통하여 힘을 얻은 야곱이 한 일은 무엇입니까? 야곱은 하나님의 위로와 약속을 얻었어요. 이제 두려울 게 없죠. 뭐가 두렵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냥 집으로 돌아가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냥 집으로 돌아가도 되잖아요. 하나님이 지켜 주실텐데.. 

그러나 야곱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그냥 쭉 라반이 사는 밧단아람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하던 일을 그냥 계속 한거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위로는 야곱의 인생에 어떤 변화를 가져온 걸까요. 사실 야곱이 떠나기 전 이삭은 이런 말과 축복을 합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창세기 28장 1-4절

그러나 목숨의 위협을 느껴 도망가는 야곱에게 이 말이, 이 축복이 다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지금 당장 죽게 생겼는데 새신부가 뭐가 필요하고, 축복의 땅이 당장 무슨 의미가 있었겠습니까.. 미래가 보이질 않는데요. 우리의 삶 속에서 커다란 위협과 견디기 힘든 어려움이 닥쳤왔을때, 당장 힘들어 죽겠을때, 너무 힘들어 어쩔줄을 모르겠는데, ‘예수님 잘 믿으면 천국간데.. 오직 예수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데..’ 하는 말이 들어옵니까. 지금이 지옥인데.. 미래를 생각하기에 너무도 막막한 현실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기란 참 힘든겁니다.

그러나 야곱과 같이 직접적인, 생생한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이 내 가슴속에 내 영속에 뚜렷하게 박힌다면, 그렇다면 아무리 막막한 현실속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고난을 이겨내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그랬어요. 그는 이제 더 이상 도망자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습니다. 야곱, 그가 가는 길은 똑같았지만 더 이상 그의 길은 고통의 길 실패의 길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아내를 얻기 위한 길을 떠나가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뚜렷한 목적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야곱은 이제 축복을 얻기 위한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망해서 도망하던 길이, 실패해서 울며 가던 길이, 고통으로 인해 힘든 그 길이, 이제 희망의 길, 사랑스런 아내를 얻으러 가는 길,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따뜻한 행복을 꿈꾸는 길로 바뀐겁니다.

야곱은 이렇게 무사히 라반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성경에는 특별히 라반이 리브가를 만나러 왔다는 이야기가 없는데 리브가가 이삭과 결혼하기 위해 떠난 뒤 야곱을 처음으로 보는 거라면 떨어졌던 친족을  97년만에 만나게 되는 겁니다. 얼마나 반가웠을까요. 창세기 29장13-14절에는 그 반가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창세기 29장 13-14절

반가움, 호의, 선의, 도움, 거져줌, 봉사, 그러나 사람의 순간적인 감동으로 시작된 이런 행동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어쩌다 한번 도울수 있어요. 잠깐 봉사할수 있습니다. 보통 아주 악하지 않으면 그 정도는 합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아주 오랫동안, 또는 평생 누군가를 돕고 선의를 베푼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죠.

특히나 라반에게는 더욱 그랬습니다. 딱 한달이 지나자 이렇게 이야기 하지요.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창세기 29장 15절

아주 굉장히 관대하고 너그러운 듯한 말투이죠. ‘아니, 어떻게 그냥 내 일을 해, 아무리 가족이라도.. 월급을 정하자고, 월급을. 가까울수록 셈은 정확히 해야하는 거야..’

누가 일한다고 했나요. 야곱이 지금 직업을 구하려고 라반에게 온 겁니까. 라반의 이 제안은 매우 공평하고 의로와 보이지만 사실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그 제안은 이런 겁니다.

‘내가 네 외삼촌이지만 더 이상은 안되. 나 더이상 공짜로 너 돌볼마음 없어. 너희 아버지가 무슨 돈을 보내온 것도 아니고.. 한달이 되도록 소식도 없는데.. 어떻게 거져 놀고 먹고 있니 너는..’

가족을 향한 선의, 베품의 종료를 알리는 말이죠. 친족의 위치가 상실되고 일꾼의 위치, 거래의 관계가 형성되는 야곱으로서는 참 기분 나쁜 순간입니다. 나에게 호의를 베풀던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차갑게 돌아서는 것을 보게 된거죠. 그러나 야곱은 그 순간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묵묵히,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갑니다. 창세기 29장18절을 통하여 우리는 야곱의 대답을 확인할수 있습니다.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창세기 29장 18절

유대인들에게 7은 완전수이죠. 아내를 얻기위해 유대인들은 모하르라고 불리는 지참금을 지불했었는데, 돈이 없으면 노동으로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7년은 조금 넘치는 댓가였어요. 하나님 앞에서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결혼, 믿음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결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완벽히 댓가를 치르겠다는 마음. 이것은 사기꾼 야곱의 마음이 아니라, 사기꾼 야곱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위로로 거듭남을 체험한 이스라엘의 행동이었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편법과 불의함을 사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남을 속이고 넘어뜨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야곱은 20년이라는 긴시간동안 라반 아래에서 어려움을 당하였지만 결코 예전의 야곱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위로함을 통하여 거듭난 야곱이 고난을 이기는 방법은 자신의 불의함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라반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작정한 야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대들도 알거니와 내가 힘을 다하여 그대들의 아버지를 섬겼거늘

그대들의 아버지가 나를 속여 품삯을 열 번이나 변경하였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막으사 나를 해치지 못하게 하셨으며

그가 이르기를 점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점 있는 것이요 또 얼룩무늬 있는 것이 네 삯이 되리라 하면 온 양 떼가 낳은 것이 얼룩무늬 있는 것이니

하나님이 이같이 그대들의 아버지의 가축을 빼앗아 내게 주셨느니라

창세기 31장 6-9절

하나님의 위로를 얻은 야곱이 고난을 어떻게 넘어갔습니까. 힘을 다하여 그 길을 넘어 섰습니다. 여러분 혹시 고난 앞에 서 있다면, 여러분 혹시 죽음을 생각할만큼 어려움속에 서 있다면, 야곱과 같이 힘을 내십시오. 힘을 다하여 싸워 이기십시요. 그러는 가운데 하나님이 야곱을 지키사 누구도 그를 해치지 못하게 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부어주신 놀라운 축복, 기적과 같은 축복 그 축복을 여러분도 야곱과 같이 똑같이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 고난의 끝에서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고린도전서 15장10절) 고백한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이긴 야곱을 기억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