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수 목사

마태복음 14장28-32절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마태복음 14장28-32절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저는 신체장애인으로 ‘뇌성마비’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이 뇌성마비는 출생 전이나 과정에서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자율신경계가 고장 나고 근육과 신경을 자신의 뜻대로 조절하기 어려운 장애입니다.

자율신경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온몸에 자신이 원하지 않는 불수의운동이 일어나고 근육이 경직되며, 얼굴 표정도 일그러지고 언어발음도 자연스럽지 못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증상은 특히 몸이 피곤하거나 긴장을 하게 되면 더 심해져서 낯선 환경에 놓이거나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 몸을 컨트롤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저를 첨 볼 때엔 장애가 아주 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가 차츰 만남이 이어질수록 제 모습에 익숙해지고 저도 그만큼 긴장을 덜하게 되어 불수의운동이 좀 완화되기 때문에 저의 상태가 점점 호전되고 있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또 제가 요즘 어깨통증을 자주 앓고 있는데 이것 역시 불수의운동으로 근육이 지나치게 경직되다 보니 근육표피 조직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뇌성마비 증세를 완화시키려면 무엇보다도 ‘몸에 힘을 빼고’ 긴장을 최대한 피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뇌성마비 증상들을 조금이라도 고치기 위해 저의 어머니는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각종 치료를 받게 하고 여러 가지 운동을 시키셨는데, 그때 가장 강조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설교제목인 “몸에 힘을 빼라”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걸음 걷는 연습을 할 때, 제가 좀 더 잘 걷기 위해 몸에 힘을 주고 빨리 가려고 하면, 어머니는 “준수야, 몸에 기운을 빼고 발 뒤꿈치 꼭꼭 딛고 또박또박 천천히 가라”라고 항상 지적해주셨습니다. 제 자신이 더 잘 걷겠다는 마음으로 몸에 힘을 주면 근육이 긴장되고 중심을 잃어 이내 넘어지며 쉽게 지쳐버리는 반면, 몸에 모든 기운을 빼고 발만 움직이면 밸런스가 잘 맞고 안정화되어 걸음 걷는 자세도 편할 뿐 아니라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오래 걸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몸에 힘을 뺀 채 천천히 발걸음을 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저 혼자 걷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런 훈련이 제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 저의 어머니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끊임없이 몸에 힘을 빼라는 말씀을 반복하셨으며, 지금도 어머니의 그 음성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까지도 그 강력하고도 신실한 당부를 잘 따르지 못하고 있으며, 요즘도 어머니가 우리 가족을 보러 미국에 오실 때면 나이 50을 훨씬 넘은 아들에게 그 말씀을 꼭 하십니다. 아마도 이 다음에 어머니가 천국에 가실 때에도 저에게 유언으로 남기실 듯 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본문 마태복음 14장 28-32절에 기록된,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장면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것도 바로 이 ‘몸에 힘을 빼라’였을 것입니다. 본문에 나와 있듯이, 제자들이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동안 심한 풍랑이 일어 배가 마구 흔들리고 뒤집힐 것 같았습니다. 극도로 위험한 상황에 모두들 공포에 질려 떨고 있었는데 멀리서 예수님이 물위를 걸어오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놀라워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자기도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드렸고, 예수님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긴가민가하지 않고 바로 배에서 내려와 물위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얼떨결에’ 호수 위를 몇 발자국 걸어갔습니다. 즉, 베드로는 ‘내가 과연 물위를 걸을 수 있을까?’라고 복잡하게 따지지 않고 인간적인 상식과 경험을 모두 내려놓은 채 오직 예수님의 능력만을 신뢰하며 풍랑이 이는 호수에 ‘용기 있게’ 발을 내디뎠기에 물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믿음과 용기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물위를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신기하고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내가 호수 위를 걷고 있다니…” 하며 가슴이 뜨겁게 벅차 오름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폭풍우가 세차게 몰아치는 광경을 보고 그는 크게 당황하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풍랑을 피해 물위를 좀 더 잘 걸어보겠다는 생각에 몸에 힘이 들어갔고 그 결과 중심을 잃고 물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처음에 배에서 내려올 때처럼 오직 예수님의 능력만 계속 의지했다면 물위를 좀 더 오래 걸었을 것이고 그대로 육지까지 가로질렀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자기 힘으로 걷겠다는 ‘교만’, 자신 앞에 놓인 장애물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 결국 그의 기적을 멈추게 한 것입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베드로를 건져주시며 예수님은 그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시는데, 이 말씀에서도 주님에 대한 신뢰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하고 교만과 두려움에 빠져 자신의 힘으로 이루려고 했던 베드로의 ‘반쪽 짜리 믿음’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행태는 바로 다음 장 (마 15:21-28) 에 등장하는 ‘가나안 여인’의 ‘완전한 믿음’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이미 주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했어도 그 은혜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던 베드로와 달리 가나안 여인은 자신의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예수님이 매몰차게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겸손하고도 끈기 있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여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룹니다. 서로 상반된 유형의 두 가지 믿음이 앞, 뒤 장으로 비교, 묘사되어 있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컬 합니다.

이와 같이, 베드로가 당했던 큰 환난, 그 환난 중에 받은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그 은혜에 응답하는 그의 반쪽 짜리 믿음과 어깨와 몸에 힘을 주는 신앙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 가운데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배를 타고 가다 심한 폭풍우를 만난 것처럼 우리도 인생을 살아갈 동안 큰 고난을 당해 우리의 삶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것 같은 위기에 처할 때가 많습니다. 이렇게 역경과 시련의 광풍이 휘몰아칠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간구하며, 그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가능성들을 부여해 주시곤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그 소중한 기회와 가능성들을 감사히 여기고 잘 활용하여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면 좋겠는데, 여기에 우리의 인간적인 탐욕과 교만, 두려움이 개입돼 일을 그르쳐버리곤 합니다.

마치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물위를 걷던 베드로가 밀려드는 풍랑을 피하려다 물에 빠져버린 것이나, 제가 좀 더 잘 걷겠다는 욕심으로 몸에 힘을 주어 결국 넘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만 의지하면 다 잘 될 일을 자신의 힘으로 이루겠다고 의욕과 욕심만 앞세우다가 큰 낭패를 보는 경우를 우리 주위에서 자주 접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하나님이 끝내시도록 완전히 맡겨드려야 합니다. 아무리 내 생각과 다르고 내 계획에 어긋나 보여도, 저의 어머니가 저에게 하신 말씀처럼 ‘몸에 힘을 완전히 뺀’ 채 그분이 인도하시는 대로 조용히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그것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우리의 자아가 교만과 욕심으로 꽉 차 있으면 하나님의 선물이 들어갈 공간이 없습니다. 오직 교만과 욕심을 모두 내려놓고 자아를 완전히 비울 때만이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통해 일하시며 당신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령 나의 그릇된 교만과 자존심으로 인해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놓치고 그분의 일을 그르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다시 나에게 기회를 주실 줄 믿고 결코 절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물에 빠진 베드로의 손을 잡아 ‘즉시’ 구원해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와 허물들을 모두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또 다른 새로운 은혜를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아니, 우리의 죄악과 연약함을 통해 보다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루어가신다고 믿습니다.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하늘 영광, 보좌 권세를 모두 버린 채 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과 용서를 증거하는 가장 큰 ‘약속’이요,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우리의 교만, 욕심, 두려움들을 모두 내려놓고 몸에 힘을 완전히 뺀 채로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곳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려가 남이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이적과 은혜들을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의 영광을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