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통한 삶이란>

이준수 목사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1-4

이인엽 목사님께서 지난 4회에 걸쳐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일생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짜임새 있는 말씀을 전해주셨는데, 저는 오늘 이 말씀들을 한꺼번에 종합하여 아브라함의 삶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은 과연 무엇인지, 또 이를 통해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형통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잠시 은혜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방금 읽은 성경본문 창세기 12장 1-4절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본문에 기록되었듯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주는 땅으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잘 믿고 순종하면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이름이 만방에 떨치며 모든 사람들을 위한 축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믿고 모든 것을 버린 채 75세의 나이에 전 가족을 이끌고 고향 하란을 떠나 오랜 세월 유목민의 생활을 영위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아브라함이 처한 현실을 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할 만큼 녹록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우선 그가 태어나 자란 집안 분위기는 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당시 ‘우르’ 지방에서 널리 유행하던 ‘달의 신(god of moon)’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장차 하나님에 의해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질 인물이 우상숭배를 일삼던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컬 합니다. 또 창세기 11장 끝 부분에 나와 있듯이, 아브라함의 형제 ‘하란’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어린 조카 ‘롯’을 돌봐야 했으며, 정작 그의 아내 ‘사라’는 임신이 안 돼 아이를 낳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이런 모든 어렵고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한 것을 보면, 주님께 대한 진정한 순종이란 모든 것이 잘 갖춰지고 풍요한 환경에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극도로 부족하고 불리한 조건에서 이루어질 때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부르심에 순종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땅을 향해 떠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커다란 축복을 약속하셨지만, 아브라함의 일생을 통해 이 약속은 결코 순조롭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외부로부터 오는 여러 고난과 시련으로 인해, 또는 그 자신의 실수 때문에 아브라함은 늘 하나님의 약속이 위협받는 긴장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주님과 언약을 맺은 직후에, 아내 사라의 몸을 통해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하갈’을 첩으로 취하여 ‘이스마엘’을 낳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또한 애굽에 갔을 때에도 ‘바로’의 거대한 권력 앞에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아내를 팔아먹는 비겁한 행위도 두 번이나 감행합니다. 그리고 험난하고 고달픈 이민생활에서 가족간에 내분이 일어나 자신이 정성껏 키웠던 조카 롯과도 남남이 되는 아픔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21장에 이르러 드디어 자손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이삭이 태어나지만, 이스마엘과 갈등이 일어나 또 한 차례 집안에 풍파가 일며, 급기야 하나님께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커다란 시험까지 당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수많은 자손과 넓은 땅을 허락하시며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언약으로 공식화되었지만, 그 약속이 성취되기까지는 너무나 길고 험난한 여정이었습니다. 인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아브라함은 너무나 연약했고 수많은 실수를 저질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주님만을 바라봤고 그분의 약속과 능력을 신뢰했으며,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사 그의 인간적인 연약함까지도 모두 사용하셔서 마침내 당신의 위대한 언약을 성취시키시고, 아브라함의 삶과 죽음을 넘어 수 백 년 이후까지 자손대대로 그 영원하신 섭리를 이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란 바로 이러한 언약의 하나님으로, 당신이 약속하신 말씀들을 지금도 우리의 삶을 통해 계속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우리가 가진 능력과 의로움, 기득권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창세기 49장에서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하나님의 은혜를 다르게 받은 것처럼, 야곱이 그의 형 에서보다 더 큰 축복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주권은 전적으로 그분께만 달려 있으며 하나님이 가장 적합하다고 여기시는 당신의 때에 그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형편과 상황에 놓여 있든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항상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으며,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책임을 다 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요셉 등 창세기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의 인생에서 보듯이, ‘형통한 삶’이란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탄하고 안락한 삶이 아니라 온갖 고난과 우여곡절, 풍지벽파를 겪으면서도 그 속에서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과 섭리가 이루어져 나가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비싼 보석인 다이아몬드를 통해서도 우리는 진정 ‘형통한 삶’이 어떤 것인지 그 의미를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땅속에서 막 캐낸 다이아몬드 원석만으로는 너무 투박해 보여 이 돌이 장차 값비싼 보석이 될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그 원석이 숙련된 세공가에 의해 54각으로 정밀하게 깎여져야만 비로서 아름답고 영롱한 빛을 발한다고 합니다. 54각까지 깎여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으며 세공가의 정성과 노력은 또 얼마나 크겠습니까?

더구나 깎여지는 순간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과 아픔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그 엄청난 고통을 참고 54각까지 완전히 깎여지고 난 후에는 보석계의 지존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싶어하는 선망의 대상이 됩니다. 여러분이 현재 어려운 고난과 시련을 겪고 계시다면 바로 여러분 자신의 원석이 너무도 귀해서, 하나님이 더욱 심혈을 기울여 정밀하게 다듬어가시는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54각이 모두 깎여진 후에야 찬란한 빛을 아름답게 발할 텐데, 그때까지는 힘들고 아프겠지만 주님의 손에 맡겨놓고 인내하고 견뎌내는 수밖에 없습니다. 보잘것없는 나의 인생을 통해 너무나 값진 다이아몬드를 만들어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만으로도 기쁜 일일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 나에게 있는 것은 오직 허물과 실수뿐인데 그 허물이 드러날 때마다 하나하나 다듬어주시고, 빚어주시고, 깎아주시며 마침내 새롭게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며 그 다듬으시는 손길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기에 희망의 내일을 바라보게 됩니다.

부디 우리 좋은친구교회 성도님들도 현재 당하는 모든 어려움과 절망, 좌절로부터 꿋꿋이 일어나 아브라함처럼 절대적인 믿음과 헌신적인 순종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언약을 받고 그 약속을 이루기에 힘쓰며, 정금보다 더 찬란한 다이아몬드의 영롱한 빛을 온누리에 발하는, 정말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