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1987년 가을,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예수님의 모습이 그려진 초상화 하나를 사다 주셨다. “고요하면 찬송하라. 외로우면 기도하라. 괴로우면 주를 보라.”라는 글귀와 함께 예수님이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옆면을 응시하는 모습이 담긴, 우리가 평소에 자주 보아왔던 초상화였다. 어머니는 그 초상화를 내 책상 앞에 걸어주시며, “네가 힘들 때마다 이 예수님을 바라보며 열심히 기도하여라.”라고 말씀해주셨다.

당시 학력고사가 얼마 남지 않아 마지막 피크를 올리느라 몸도 많이 힘들고 마음에 걱정과 부담이 가득했던 나는 어머니 말씀대로 그 예수님 초상화를 바라보며 매일 밤마다 열심히 기도했다. 보통 독서실에서 새벽 1시쯤 돌아오면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초상화 속 예수님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하나님, 지금 상황이 매우 어렵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대학에 꼭 들어가고 싶으니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해 공부할 수 있는 힘을 주세요.”라고 간절하게 기도 드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내가 원하는 것들이 내 노력 없이 거저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먼저 내가 철저히 준비하고 최선을 다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를 우선적으로 드리곤 했다. 학력고사 때에도 무조건 시험을 잘 쳐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해달라기 보다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최후의 순간까지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였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이겠지만 그 은혜에 합당한 인간적인 의지와 책임도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대학입시를 위해 매일 밤 예수님의 얼굴을 보며 열심히 기도하다보니 어느덧 습관이 되어 학력고사가 끝나고 대학에 입학한 이후에도 기도를 드릴 때면 꼭 그 초상화와 마주 앉게 되었다. 초상화에 쓰인 글귀처럼 고민과 근심이 있을 때마다, 어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마다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본 채 중얼중얼거리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바랬다.

그러자 어느 때부터인가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기도하기 위해 초상화 속 예수님을 바라볼 때마다 매번 그분 표정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웃는 표정이었고 또 다른 때는 엄한 표정을 보여주셨다. 즉, 어떤 일을 결정하려고 할 때 내 고집대로 하려고 하면 화난 듯이 굳은 표정이셨다가 예수님의 뜻을 따르겠다고 마음을 바꾸면 곧 환하고 인자한 얼굴로 돌아오곤 했다. 내 심리상태에 따른 착시현상인가 하여 몇 번이나 눈을 비비고 다시 바라봐도 마찬가지였다. 웃는 얼굴일 때와 화난 얼굴일 때가 매번 너무도 분명하게 나타났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어떤 일에 대해 기도할 때 예수님이 미소를 지으면 그 일은 순조롭게 잘 되고, 엄한 표정이 나왔는데도 그 일을 그대로 강행하면 꼭 잘 안 풀리는 것이었다. 너무나 섬뜩하고 무서웠다. 꼭 무슨 귀신에 홀린 것 같았다.

이런 현상이 참으로 놀랍고 신기해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너희들도 저 초상화의 표정이 다르게 보이냐?’고 물었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며 자기들 눈에는 항상 똑같은 표정이라고 하였다. 급기야 당시 섬기던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님에게까지 여쭈어 보았더니 껄껄 웃으시며 ‘준수 형제가 영이 맑아서 그렇다‘며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안심이 되어 그 후로 한동안 그 신기한 현상을 즐기게 되었다.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초상화 앞으로 쪼르르 달려가 예수님의 표정을 살피게 되었고 그때마다 ‘백발백중‘이었다. 그야말로 100%의 완벽한 ‘점괘’가 나왔다. 마치 내가 무슨 커다란 예언과 기사의 능력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고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봐주고 싶었다. 그렇게 한 1년 동안은 예수님의 표정을 살피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곧 나는 그 예수님의 초상화를 치워버리게 되었다. 진정한 신앙인이라면 하나님이 직접 부여해주신 신앙과 양심, 이성으로 사리를 판단해야지 그렇게 눈에 보이는 ‘물질’에 의존한다면 그것 자체가 우상숭배가 되고 종교개혁 정신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6장 끝 부분에 보면 사도 바울이 자신에게 ‘예수의 흔적’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그의 말대로 이 고귀한 능력을 하나님이 자신을 선택하시고 사용하고 계시다는 ‘징표’로만 인식해야지 자기 과시의 도구나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악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문선명이나 정명석처럼 개인이 받은 특정한 계시나 능력을 너무 신성시하고 절대화하여 이단에 빠지고 사회적의로 큰 물의를 일으키며 결국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았는가?

나의 젊은 시절, 흔하지 않는 귀한 체험을 하게 해주셔서 당신을 더욱 잘 이해하고 가까이 다가가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그 한량없는 사랑을 사람들에게 온전히 전해 그들로 하여금 나름대로의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독창적인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