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써 내가 미국 땅을 밟은지 28년이 되었다. 서울을 떠나 LA에 도착한 1993년 6월 25일이 금요일이었는데, 28년이 지난 오늘도 같은 금요일이니 감회가 더더욱 감회가 새롭고 그날의 일들이 모두 선명하게 떠오른다.

LA로 출발하기 전날 밤, 내일이면 미국에 간다는 기대감과 긴장된 마음에 이리저리 뒤척이다 새벽 2시에야 간신히 잠이 들었는데, 5시 반경 광림교회 새벽예배 때 ‘김선도’ 담임목사님께서 나를 위해 축복기도를 해주신다는 어머니 말씀에 잠이 깨어 세수도 못하고 어머니와 같이 교회까지 걸어갔다. 새벽예배 후 목사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며 LA에서 섬길 교회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말씀드리니, 그 자리에서 바로 미국에 계신 동생 ‘김국도’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우리 교회 이승환 집사님과 이영자 권사님의 장남 이준수 군이 오늘 UCLA로 유학가니 근처에 있는 좋은 교회 하나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셨다. 그렇게 해서 소개받은 교회가 바로 ‘송기성’ 목사님이 담임하시던 ‘나성한인감리교회’였다.

집으로 돌아와 준비를 하고 공항으로 가기 전 짐에 빠트린 물건이 없나 하고 마지막으로 책상을 확인하던 중 대학 시절 3년 동안 사귀다 1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의 사진을 발견했다. 순간 가슴이 뭉클하고 아련해졌으며 옆에 계시던 어머니도 사진을 미국에 가져가라고 하셨지만 나는 곧 사진을 찢어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족들과 함께 집을 나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서강대 불문과 동기들 몇몇이 나를 배웅하러 나와 있었다. 그들의 우정이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비행기 탑승 시간이 다 되어 출국장 앞에서 동생 경은이와 성욱이,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부모님과 함께 게이트까지 걸어가는데, 그제서야 집을 떠난다는 것이 실감났는지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했다. 항공사 직원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얼굴을 들지도 못한 채 계속 흐느끼자 어머니는 손수건을 건네주시며 “준수야, 하나님께서 널 지켜주실거야. 미국에서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어머니 모습을 보니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고, 아버지 역시 침통한 표정으로 아무 말씀도 안 하신 채 내 어깨만 쓰다듬고 계셨다. 그때의 부모님 모습은 28년이 흐른 지금도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비행기에 탑승해서도 계속 눈물이 멈춰지지 않자 사무장님이 다가와서 얼마나 맘이 아프고 서운하겠냐며 이코노미석이던 내 자리를 비즈니스석으로 바꿔주셨다. 또 내 옆에 탔던 손님도 나랑 얘기도 많이 나누고 식사할 때도 여러 도움을 주셔서 참 감사했다.

10시간을 날아 LA공항에 도착하니 5년 전 이민 와있던 내 베프 ‘조범진’이 여자친구와 마중 나와 반가운 해후를 했다. 함께 Irvine에 있는 범진이 집으로 가 점심을 먹었는데, 범진이와 여친이 함께 다정히 밥을 차리는 모습을 보니 ‘나는 방금 전 내 여친 사진을 박박 찢어버리고 왔는데…’ 하며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식사를 하고 좀 쉬다가 Garden Grove 한인타운에 가서 학교 기숙사에서 쓸 컴퓨터와 미니냉장고를 구입한 후 지금은 없어진 ‘황해도만두’란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만두가 엄청 크고 맛도 기가 막혀 집을 떠나온 서운한 마음을 풀어주기에 충분했다. 다시 범진이 집으로 돌아와 직장에서 퇴근하신 범진이 부모님을 뵙는 것으로 서울을 떠나 남가주에 첫발을 들인 1993년 6월 25일의 긴박했던 일정을 모두 마쳤다.

지난 화요일 밀알예배 때 ‘정주수’ 형제가 특송으로 부르려고 했던 ‘요게벳의 노래’ 찬양 가사를 보니 내가 28년 전 한국을 떠난 날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해지며 눈에 이슬이 맺혔다. ‘요게벳의 노래’는 출애굽기 1장의 내용처럼 애굽의 히브리민족 말살정책으로부터 아들을 지키기 위해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이 갓 태어난 모세를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울 때의 간절한 심정을 표현한 찬양으로, “하나님께서 널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일으키실거야. 오직 하나님께 너를 맡긴다”라는 가사 내용이 내가 한국을 떠나던 날 우리 어머니께서 공항 게이트에서 나에게 하셨던 말씀과 너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한 위대한 인물 모세와 별 볼일 없는 나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완전 어불성설이지만, 모세와 마찬가지로 나 역시 지난 28년 동안 미국에서 살며 큰 실패를 겪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광야를 방황했음에도 불구하고 요게벳이 모세를 위해 드렸던 기도를 우리 어머니도 날 위해 항상 간절히 드리셨기에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지 않고 주저앉고 싶을 때 주저앉지 앉으며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인생의 여정을 반듯하게 걸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의 그 엄청난 사랑과 정성, 희생에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나 역시 4년 후 부모님이 나를 떠나보내시던 같은 나이에 우리 쌍둥이 아이들을 대학으로 보내게 될 텐데, 부모님이 나에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널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일으키실거야. 오직 하나님께 너를 맡긴다”라는 말을 그들에게도 똑같이 해주어야겠다.

글 | 이준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