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민환기 목사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3-16

여러분 혹시 에릭리들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들어보셨습니까? 그는 어려서부터 영국 선교사님의 자제로 태어나서 먼 길을 왕래하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다 보니 어느새 그것이 하나의 재능으로 발전하여 달리기에 굉장한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영국 육상국가대표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실 이 사람은 100미터 달리기 부분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확실한 금메달 후보로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예선 경기가 치러질 날이 하필이면 주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에릭은 하나님 앞에 주일에는 결코 뛰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약속대로 그는 우승할 수 있는 자기의 주종목이었던 100미터 달리기를 주일을 성수하기 위해 포기했습니다. 그가 주님을 위해 100미터 달리기를 포기했을 때 그가 과연 사람들로부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칭찬 받았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옹졸하고 편협한 신앙인이라고 또한 조국의 명예를 저버린 위선자라고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비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해서 주일을 지켰습니다. 후에 에릭은 워낙 경쟁자들이 많아서 실제적으로 자신은 뛰어봤자 들러리 밖에 되지 않을 400미터 달리기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었고 에릭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뛰는 그를 보고 저렇게 400미터를 뛰다간 죽을 것이라며 불안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의 영예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에릭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달릴 수 있었나요? 그러자 에릭이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처음 200미터는 최선을 다해 달렸고, 나머지 200미터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달렸습니다.”

그렇게 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생애의 영광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사람은 주일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자신을 헌신할 수 있었을까요? 이유는 분명합니다. 에릭은 육상선수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분명한 자기의 신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에게 있어서 내가 누군가를 안다는 것은 나의 행동과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나의 삶 전체를 결정하고 바꿀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구인가를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아울러서 우리의 역할과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뚜렷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서 내가 누구인가? 그리고 내 삶의 역할과 목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내가 누구인가? 라고 하는 것입니다. 13절과 14절에 첫머리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3-14

다 함께 믿음으로 고백할까요?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이 말씀에서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 무엇입니까? 너희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세상이라는 말에 주목을 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무관하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대부분 많은 종교들은 자기 수양과 관련이 깊습니다. 그리고 수양의 높은 단계를 주로 세속과의 단절이라고 이야기들 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세상 속으로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요한복음 20:21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한복음 20:21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도 이제 당신의 제자들을, 교회를 세상 속으로 보내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세상과 담을 쌓거나 세상과 무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세상 가운데 높임을 받으시는 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세상과 마구 뒤섞여서는 안됩니다.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니깐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눈높이를 좀 맞춰야 되지 않겠냐 하면서 세상과 타협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은 비록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지만 단 한번도 아버지의 말씀의 기준을 완하시키거나 굽히거나 바꾸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의 뜻에 철저히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세상과 뒤섞여서 세상과 동화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과 분명하게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거룩한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13~14절 첫머리에서 볼 수 있듯이,

주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 될 것이다, 혹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하며 앞으로 되어야 할 미래의 일들처럼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혹은 너희가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만 한다, 세상의 빛이 되어야만 한다 노력해서 되어야 할 문제로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이처럼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분과 지위의 문제인데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지위라는 것은 노력하고 애써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는 그분의 존귀하신 보혈로 씻음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이미 세상의 소금과 되었습니다. 내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명이 빛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소금과 빛의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소금의 역할입니다.

13절 말씀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복음 5:13

소금은 적어도 세가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식의 맛을 내거나 부패를 방지하거나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는 소독약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께서 소금과 관련하여 맛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데 있어서 없어선 안될 절대적이고 필수적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소금이 적절히 들어 있지 않은 음식은 우리의 입맛을 잃게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처럼 자기가 처한 모든 처소에서 맛을 내게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소금이 음식 속에 녹아져서 맛을 내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다운 맛을 내야 합니다. 만약에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다운 맛을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맛을 잃어버린 소금에 대해서 말씀하시길,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복음 5:13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그리스도인다운 맛을 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결과는 버려지는 소금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상 가운데 있는 교회가 만일 마땅히 지녀야 할 복음적 신앙과 복음적 삶을 상실한다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조롱거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어떻게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다운 삶이란 우리의 믿음의 고백대로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삶, 곧 주님의 말씀과 뜻대로 사는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다운 맛을 내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 빛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14~15절에 보면 빛의 두 가지 역할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4절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14

빛은 비추어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아무리 빛이 작다고 할지라도 어둠 속에 있는 빛은 그 존재를 확실하게 드러냅니다. 그만큼 빛은 어둠 속에서 사람 눈에 확실하게 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빛은 어둠 속에서 못 보던 것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사물을 분간할 수 있게 해주고 그리고 안 보이는 것을 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빛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이야기하고 천국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지옥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영원의 세계는 없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에게 ‘봐라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분인지를 그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를 보게 만들어 주고 가슴 속 깊이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이 바로 빛의 자녀들인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들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만들까요?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한일서 4:12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사랑할 때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방법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거기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빛의 자녀의 모습대로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적이고 계산적인 조건을 뛰어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낼 때 사람들은 분명 놀라게 될 뿐만 아니라 감격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들에게 담대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만큼 아니 이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말이죠. 그러므로 그들은 비로서 우리 안에 계신 참사랑이신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15절에 보면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마태복음 5:15

이스라엘 집의 구조를 보면 벽면에 등경이라는 튀어나온 부분이 있습니다. 거기에 등불을 켜서 올려놔야 빛이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구석구석 비춰주고 밝혀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가 놓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등불을 켠 목적이 무엇입니까? 어두운 곳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말 아래 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이라는 어두움 가운데에서 빛으로서 세상을 밝혀야 합니다.

여러분 밤하늘에 가장 밝은 것이 무엇입니까? 달이죠. 그런데 중요한 건 달은 그 자체가 발광체가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태양의 빛을 반사해서 빛을 비추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처럼 나 자체는 빛이 아닙니다. 나한테 빛이 스스로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참 빛’되시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자체로 자연스럽게 빛이 나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의 빛을 받아서 비추는 것입니다. 마치 밤과 같은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서 어두운 밤길을 빛 춰주는 달과 같은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빛의 근원되시는 참 빛 되시는 주님을 늘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늘 주님의 빛을 받아야만 합니다. 빛의 자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주님을 늘 가슴에 담고 주님으로부터 온 빛을 비추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소금이 맛을 내려면 어떻게 할까요? 물에 녹아야만 합니다. 소금이 자신의 형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면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사악 녹아야지만 맛이 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공동체에서 맛있는 사람이 되고 공동체를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 되려면 주님 때문에 내가 사악 죽는 사람이 되야 합니다. 내 욕심, 내 생각, 내 자아 그것이 다 살아있으면 맛을 낼 수 가 없습니다. 그냥 나는 주님의 빛을 받아서 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생색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통해서 전해주시는 것이라고 나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뭔가 해서 내가 드러나는 삶이 아니라 나는 없어도 주님만 드러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그러한 삶을 가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6

주님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 빛이 사람들에게 비취게 하라. 빛이라는 것은 착한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서 그 착한 행실로 세상을 변화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착한 행실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킬까요? 도덕적인 삶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세상의 법을 잘 지키는 것을 의미할까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이러한 측면들에만 국한돼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겨우 세상의 도덕이나 법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의 도덕과 법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착한 행실이라는 것은 세상의 도덕보다 법보다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팔복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고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이러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착한 행실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다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간단하게 한마디로 정리하면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 닮은 모습입니다. 성도의 착한 행실은 예수님을 얼마나 닮았느냐와 직결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 닮기를 얼마나 힘쓰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생명이 나를 통해 드러나고 예수님의 성품이 나를 통해 얼마나 많이 드러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예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심기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생명이라는 것이 우리 안에 심겨지면 반드시 성장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이미 예수님의 성품이 심겨져서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착한 행실을 드러내려면 예수님의 성품이 드러나고 자라나게 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을 통해 결국 추구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붙잡아야 우리 신앙도 균형 있게 자라게 되고 교회를 위한 영성이 되고 세상을 위한 영성으로 자라갈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살고 있다는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긴다면 우리의 인생에서 결코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위대한 기도 우리가 예배 드릴 때에 드리는 주기도문 그 주기도문이 처음에 어떻게 시작합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님께서 이 땅에서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소원은 바로 아버지의 이름이 높임을 받으시는 것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그리고 우리 좋은친구교회는 바로 그것을 위해 달려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 함께 믿음으로 고백해 볼까요? 나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에릭리들은 주일을 주님 앞에 거룩히 지키려고 금메달의 영광을 포기했던 그는 400미터에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금메달을 딴 이후에 24세의 나이로 중국 선교사로 생애의 영광들을 포기하고 자신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말이죠.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된 이유는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 이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고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나를 불러주신 아버지의 그 부르심을 알고 소금으로서 빛으로서 거룩한 영향을 끼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존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