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의 면류관>

민환기 목사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고린도전서 9:24-27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모두가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훈련소에 입대하자마자 사복에서 군복으로 갈아입고 그다음 주민등록증을 반납한 후에 훈련병 몇 번이라는 번호를 부여 받고 그렇게 불리게 됩니다. 그동안 불려왔던 자신의 이름 즉 Identity가 사라지고 훈련병의 신분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훈련소에서는 총 6주 동안의 여러 가지 훈련을 실시합니다. 제식훈련부터 시작해서 각개훈련, 사격훈련, 수류탄 투척훈련 그리고 마지막 Climax로 화생방훈련과 행군이 있습니다.

제가 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처음 2-3일 동안은 사회와 현실을 분간 못하는 꿈을 꾸기도 하였습니다. 저에게 닥친 현실이 믿겨지지 않았을 뿐더러 받아들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군대의 유명한 슬로건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구절이 저로 하여금 ‘이왕 군생활 하는 거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다짐을 하게 했습니다. 매일 주어진 훈련에 열심을 다하다보니 6주의 훈련을 마쳤고 훈련병에서 진정한 군인 이등병이 되었고 또한 우수한 성적으로 사단장으로부터 표창 및 포상으로 1박 2일 휴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 모인 여러분 모두가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바 되고 성령으로 인치신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마치 훈련소에 입대하여 자기 이름 대신 크리스천이란 명찰을 다는 것과 같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 있듯 우리 크리스천의 신앙생활 또한 달리기 경주와도 같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이미 신앙의 경주에 나선 선수들입니다.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그 순간에 울린 것입니다. 직장과 사업 그리고 학위 등 세상의 여러 경주들에서도 포상을 받기 위해 우리는 모든 것을 걸고 죽기 살기로 도전하는데, 하물며 우리가 임하는 신앙의 경주에서는 어떠할까요? 신앙의 경주의 심판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자신을 헌신하기까지 최선을 다해 주님을 향하여 끝까지 달린 모든 선수들에게 영원히 썩지 않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이 신앙의 경주에 참가하는 데만 의의를 둘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영광의 금메달리스트가 되기 위해 결승점까지 모든 것을 걸고 있는 힘껏 죽기 살기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신앙의 경주에서 영원한 금메달리스트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달려야 할까요?

신앙의 경주에서 영원한 금메달 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우리는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린도전서 9:24

본문 24절에서 달리는 선수마다 오직 하나뿐인 상을 받기 위해 달린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 로마 사회에서는 운동 경기가 사회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했는데 고린도에서는 매 3년 마다 올림픽과 비슷한 “이스티미안”경기가 벌어지곤 했으며 주요 종목으로는 달리기, 권투, 경마 등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운동 경기에서 승리하면 상금을 주지 않고 명예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수여했는데, 모든 경주자는 이러한 명예를 획득하기 위해 경기에 참가했습니다.

본문에 제일 먼저 등장한 달리기 선수의 경우 무엇에 전력을 다할까요? 달리기 선수가 공 차는데 혹은 높이 뛰는데 온 힘을 다 쏟아 부을까요? 물론 아니죠. 당연히 달리기 선수는 자신의 종목 그대로 오직 달리는 데에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우승한 오직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월계관과 명예를 차지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있어 신앙의 경주의 종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크리스천으로 불리듯 바로 이 명칭에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크리스천은 명사 the anointed one과 형용사적 접미사 adhering to가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따라서 adhering to the anointed one이란 의미죠. 즉, 우리 크리스천들의 종목은 바로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찰싹 붙어 있는 것, 그것은 바로 만왕의 왕, 대제사장, & 구원자로 기름부음 받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전심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대로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죠. 따라서 사도바울은 본문 바로 전 23절에서 주님을 따르기 위하여 복음 전하는데 모든 것을 행한다고 하였습니다. 9장 1절부터 22절까지 나열된 것처럼 자비량으로 인종, 계층 그리고 문화를 가리지 않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전력을 다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함으로서 주님을 따르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까요? 그것은 바로 본문 전에 17절과 25절에 나와 있습니다 (봉독함). 17절에서 우리는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바 된 그분의 자녀들이기에 사도바울과 같이 Stewardship 청지기적 사명 즉, 주님의 종으로서 세상에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본문 25절 말씀에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린도전서 9:25

주님을 따르는데 전력을 다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히 썩지 않는 면류관이 상급으로 주어진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데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바 된 그분의 종이기에 복음을 전파해야만 하는 청지기적사명을 부여받았으며, 또한 주님을 따르는데 전력을 다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인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윈스턴 그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포레스트 검프란 영화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영화의 주인공 포레스트는 아이큐가 75인데다 소아마비로 다리마저 불편하여 보조기구에 의지하므로 생활해야만 했기에 주변 친구들과 사람들로부터 놀림과 무시를 당하였습니다. 어느 날 포레스트는 그를 괴롭히기 위해 쫓아오는 친구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친구 제니의 “검프, 뛰어!”라는 말에 철제보조기구를 부수고 달리게 되면서 자신이 잘 달리고 빠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후로 오직 달리는 것에 집중하고 열심을 다하다보니 어느덧 최고의 미식축구 선수가 되었으며, 또한 전쟁에서 부상당한 많은 전우들을 구출해내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두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크리스천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복음 전하는데 전력을 다했습니다. 현대 올림픽에서는 육상종목으로 단거리, 장거리, 마라톤, 그리고 장애물 달리기 등으로 많이 다양해졌습니다. 육상종목에도 이렇게 다양한 종목들이 있듯이 여러분과 저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에게 주님 사랑을 전파하는데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릇이 여러 종류고 다르게 쓰이는 것처럼 우리들 또한 다른 모양과 방법대로 쓰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그분의 소망을 이루시기 위해 각자에게 다른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유의 재능과 재주를 달란트 즉 은사라 할 때, 각자의 은사가 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1)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2) 즐거움과 만족을 줄 수 있는 것, 3) 은사에 대한 하나님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레스트처럼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 즉 은사를 발견하고 계발하므로서 우리에게 주신 청지기적 사명 즉 복음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신앙의 경주에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엄격한 자기 관리가 필요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고린도전서 9:25

본문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라고 표현했듯이, 달리기 선수들은 시합에 임하기 몇 달 전부터 자신의 몸과 마음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기 위해 엄격한 자기 관리에 들어갑니다. 그들은 체중조절을 위해 먹고 싶은 음식도 맘대로 먹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하고 개인여가시간을 반납한 채 오직 훈련에만 몰두합니다. 이 모든 절제의 이유가 상대 선수들을 이기고 자신이 최고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즉, 선수 자신의 성취감, 명예 혹은 부를 위한 절제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세상의 영예는 본문 25절에 “썩을 승리자의 관”이라고 명시했듯이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소멸되므로 생을 마감할 때 가져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사라질 영예를 위해서도 선수들이 이토록 절제하는데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위해서 우리 믿는 자들 또한 엄격하게 자기절제를 하고 있는지요? 우리 믿는 자들의 절제는 선수들과의 절제와는 동기부터가 달라야 합니다. 본문 전에 18절과 19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고린도전서 9:18-19

사도바울은 당시 유대인이었고, 바리새인이자 더 나아가 로마시민권을 가진 완전한 자유인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인하여 죄와 율법에서 해방되어 진정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사도로서 고린도교회의 설립자로서 마땅히 받을 수 있는 사례비를 거절하였고 Tent Maker로서 자비량으로 선교하였습니다. 민족이나 종교 등 그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었던 그는 기꺼이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믿음이 약한 자들과 같이 되기까지 주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토록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인이었던 그가 말과 행동을 절제함과 동시에 신앙의 자유를 절제한 이유는 스스로 그들의 신앙의 눈높이에 맞추어 복음을 전하므로 그들에게 있어 신앙의 걸림돌이 아니라 그들을 살리기 위한 도움닫기가 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자신의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보다는 오직 그리스도의 종 된 자로서 다른 이들을 구원시키는 것을 우선으로 여긴 것입니다. 이처럼 내 자신의 만족과 유익이 아닌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는 희생이 하나님 앞에 영원한 상급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희 가정에 사랑하는 아들과 딸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매일 눈에 띄게 자라가는 아이들의 모습에 너무도 감사할 따름이죠. 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다 따라하려고 합니다. 이전에 자녀가 태어나기 전에는 부부사이에 있어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자유로웠는데 아이들 앞에서는 모든 것을 조심하므로 절제하게 되더군요. 왜냐하면 아이들에게는 판단력과 절제력이 부족하여 무조건 보이고 들리는 대로 다 따라 하기 때문이죠. 자녀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게 하기 위해서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부모가 자식을 향한 눈높이 교육인 것입니다.

사도바울 또한 그의 갈라디아교회 영적 자녀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다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 또한 내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만 신앙의 자유를 내세우기보다는 다른 이들을 살리기 위해 바울처럼 어미가 자식을 낳기 위해 피를 쏟고 생살을 찢는 산고와 같은 희생을 감수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내 자신의 잣대가 아닌 우리 영적자녀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주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 신앙, 자유, 말, 생각 그리고 행동을 내세우기보다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주님의 말씀과 사랑으로 나를 절제하고 희생하므로서, 그들을 양육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께 인도하는 것이 바로 주님 앞에서 우리의 영원한 상급이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신앙의 경주에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는 목표를 바르게 인지해야 합니다. 본문 26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9:26

왜 여기에서 바울은 달리기 선수와 복싱 선수를 예로 들었을까요? 달리기 선수의 경우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게 달린다고 하였습니다. 목표가 불분명하게라는 뜻으로서 즉, 목표 없이 뛰는 것을 의미합니다. 달리기 선수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일등으로 경주를 완주하는 것입니다. 26절의 복싱 선수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허공에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라고 표현했듯이 엄한데 힘 낭비하지 말고 정확하게 상대가 있는 방향을 향해 펀치를 가해 쓰러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두 선수들을 통하여 목표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 것입니다. 달리기 선수의 경우 일등으로 완주하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결승선이 아닌 엄한 방향으로 달리면 허사겠죠? 또한 복싱선수의 경우도 아무리 힘이 세도 정확한 방향으로 상대를 가격하지 못한다면 상대를 쓰러뜨릴 수가 없겠지요?

선수들의 이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는 바로 코치의 훈련가르침과 경기규칙입니다. 때문에 선수들은 테크닉을 제대로 익히고 최상의 체력으로 단련하기 위해서 코치의 혹독한 훈련방침에 전적으로 따라야만 합니다. 또한 경기규칙을 제대로 숙지하고 이를 꼭 준수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선수가 아무리 뛰어난 기량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고 할지라도 규칙을 어기게 되면 실격패로 무효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믿는 자들의 신앙의 경주 또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목표를 바르게 인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27절에서 바울은 우리 믿는 자들의 목표에 대해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여기에서 “버림당할까”의 의미는 “테스트에 불합격하다”라는 것을 뜻합니다. NKJV, NASB, NIV 성경에서는 disqualified “자격이 없다”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주님의 심판대 앞에서 주님 보시기에 자격미달로 불합격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 보시기에 맘에 드는 자가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맘에 들게 신앙생활 한다면 주님 심판대 앞에서 당연히 영원한 면류관을 받는데 합격이겠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주님 맘에 들 수 있을까요? 만약에 우리의 목표가 주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거라면, 그러기 위해서 우리에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 말씀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본문 전 23절에서 “복음에 참여”한다고 했습니다. “복음에 참여한다.에서 “참여”는 NKJV에는 Partaker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복음에 참여한다”의 의미는 “복음과 함께 하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과 함께 한다는 것”은 단순히 복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대로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 또한 포함되는 것입니다. 복음만 전하고 복음대로 살지 않는 자들 즉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여전히 자기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자기 맘대로 살아간다면 주님 보시기에 그는 결코 참된 믿음의 소유자라 할 수 없기에 자격미달로 불합격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 27절을 다시 볼까요?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고린도전서 9:27

바울 또한 본문 27절 전반부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이라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쳐”에 해당하는 단어는 “눈”과 “아래”의 단어의 합성어로서 그 원래 뜻은 “눈 아래 부위를 친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싸울 대상이 바로 남이 아니라 자신이란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또한 “복종하게 함은”이란 단어는 “종”과 “끌려오다”의 합성어로서 그 원래 뜻은 전쟁에서 “패자가 종으로 끌고 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바울은 주님의 십자가 앞에 철저히 자신을 부인하고 그분의 십자가를 짐으로서 이제는 온전하 주님의 종이 되어 복음과 함께 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신앙의 코치이자 더 나아가 믿음의 주체 즉, 우리의 구원자이시며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을 우리의 구원자이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였다면 또한 주님을 우리 삶의 모든 것 되신 주인으로 모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종이 된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즉 그분의 말씀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말씀을 거울삼아 자신을 점검하고 하나하나 고쳐나감과 동시에 말씀을 하나하나 우리의 삶에 적용해 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약속의 말씀들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습 속에서 세상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광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예수님께서는 장차 심판대 앞에서 우리로 하여금 마음에 흡족해 하시며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난 그 순간부터 우리는 크리스천즉, 주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이미 신앙의 경주에 나선 선수들입니다.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 우리들은 다음 중 어느 선수에 속합니까? 1) 시합에 참여하기 위해 훈련만하고 뛰지 않는 선수 (말씀보고 기도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않고 복음도 전하지 않는 성도), 2) 훈련도 뒷전으로 미루고 관전만하는 선수 (말씀과 기도 모두 등한시할 뿐만 아니라 그저 판단과 정죄만 함), 3) 뛰다가 중도에 지쳐서 포기한 선수 (시험 받거나 혹은 자기만족과 유익을 위해 믿음을 져버림), 마지막으로 4) 목표를 향하여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선수 (주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고 행하는 크리스천) 중 어디에 속합니까?

신앙의 경주에 있어서 우리는 때때로 재정의 문제, 건강의 문제, 관계의 문제 등 여러 환경에 따른 시험과 유혹의 장애물들에 부딪혀 지치고 곤비해지기도 할 것입니다.

인생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고 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 먼저 연필로 스케치를 한 후 물감으로 칠합니다. 스케치를 하며 어떤 때는 지울 때도 있고 안 지울 때도 있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완성되는 그림에서는 밑그림은 나중에 별로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 유혹과 시험의 장애물들 또한 언젠가 반드시 지월 질 수 밖에 없는 밑그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의 완성된 그림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1-7

이것이 바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의 완성된 그림인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16:33)라고 주님께서 영원한 승리를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주님을 전심으로 믿고 끝까지 따르길 원하는 우리에게 또한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실 것이며,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살아서 역사하시는 전지전능하신 그분의 능력으로 이 땅의 썩어 없어질 유혹과 모든 장애물들을 능히 이기고 감당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훗날 신실하신 그분의 약속대로 하나님 나라에서 썩지 아니하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친히 우리에게 씌워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달란트 즉 은사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청지기적 사명, 즉 복음 전하는데 전력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의 만족과 유익만을 위한 신앙이 아닌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나 자신을 절제하고 희생하므로서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하나님과 화목케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우리의 목표가 주님 마음에 합한 자, 세상이 아닌 주님께 합격자가 되는 것이기에,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나를 통해 하나님의 소원을 꼭 이루어나가시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이 세상에서 우리 모두는 말과 혀로만이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아가는 주님과 세상이 인정하는 진정한 크리스천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분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로 친히 사용하실 것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도행전 20:24

이 사도 바울의 고백이 나를 죄악과 저주와 병과 죽음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앞에서의 우리 믿음의 고백이자 평생의 삶의 고백이 되기를 진정 소원합니다.

훗날 만왕의 왕 만주의 주님께로부터 “잘했다. 착하고 충선 된 내 마음에 흡족한 종아”라는 칭찬과 함께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