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초 아이들과 함께 오랜만에 ‘라구나 비치’에 다녀왔습니다. 1년 넘게 지속된 코로나19 사태로 아이들이 학교도 못 가고 친구들도 못 만나며 매일 집에서 온라인 수업만 받는 것이 안스러워 모처럼 동네를 벗어나 먼 곳까지 가 멋진 까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바다에 들어가 옷을 모두 적셔가며 신나게 노는 것을 보니 그동안 답답했던 내 마음도 탁 트이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함께 밖에 나가 길거리를 돌아다닐 때입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밖에 데리고 나가면 막 흥분들을 해 가로 뛰고 세로 뛰고 서로 다투기까지 하는 등 정신없이 난리를 쳤는데, 이제는 나이 좀 먹었다고 제법 의젓하게 걸어갑니다. 내 전동휠체어 양 옆으로 한 명씩 붙어 학교얘기, 친구얘기로 재잘거리며 신나게 거리를 활보하곤 합니다.

또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도 예전엔 음식을 쏟고 물컵을 엎지르며 식기를 떨어트리는 등 온갖 실수를 저질러 민망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아주 의젓하게 식사를 하며 내가 먹는 것까지 잘 도와줘 ‘얘들이 언제 이렇게 컸지?’하며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식당 종업원들이 내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들으면 ‘브라이언’이 혀를 굴리며 콧소리까지 내는 유창한 캘리포니아식 영어발음으로 대신 주문을 하고, ‘조애나’는 깔끔하게 테이블 정리를 하며 내가 먹기 편하게 음식을 나이프로 잘라주곤 합니다. 나이 40이 다 되어 쌍둥이가 태어나 얘들을 언제 다 키우나 하고 무척 염려했었는데, 어느덧 아이들이 크게 성장하여 자기 할 일들을 다 하며 몸 불편한 아빠까지 도와주는 것을 보니 참으로 신기하고 대견하며 감사하고 감격스런 마음 금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흔히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게 해달라”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현실적으로 보면 이렇게 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특히 요즘처럼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양극화가 날로 심화되는 시기에는 머리의 위치까지 오르는 경우가 지극히 드믄 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이들을 위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드리곤 합니다.

“제 아이들이 비록 머리가 되지 못하고 꼬리의 위치에 있어도, 평생 ‘흙수저’ 인생을 살더라도 자신의 처지에 결코 부끄러워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항상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며, 눈을 크게 뜨고 가슴을 활짝 펴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겸손히 섬기며, 자신보다 못한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위로, 소망을 전해줄 수 있는 삶을 살게 해주소서. 그러면서도 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항상 자신을 단련시키며 준비할 수 있도록 하여주소서.”

현재 금수저냐, 흙수저냐 하는 순간적인 존재론적 가치보다는,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항상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으며, 자신이 꾸는 꿈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사회적 소망으로 발전시켜 장차 우리의 후손들이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도록 작은 초석이라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꼬리의 위치에 있어도 머리로서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글 | 이준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