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끝이 아니다>

민환기 목사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7-28

백수를 누리며 오랫동안 사신 시어머니와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며느리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연로한 나머지 기력이 쇠해져 죽음을 앞두고 있는 시어머니의 임종을 며느리가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바라보며 어머니, 돌아가시면 안 되요. 손주들이 시집, 장가 가는 모습도 보셔야죠? 하염없이 흐느끼며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러자 시어머니께서는 아주 힘겹게 웃으면서 마지막 한마디를 며느리에게 귓속말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말이 과연 무엇이었는지 혹시 짐작하시는 분 계십니까?

그 말은 “그 동안 수고 많았다. 고맙다.”라는 말도 아니었고, “나를 햇빛 잘 듣고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묻어달라.”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아들을 잘 부탁한다. 잘 살아야 된다.”라는 말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그 말은 다름 아닌 “얘야, 울지 마라. 너도 곧 올 텐데 뭐.”라는 말이었습니다.

흔히 세월이 흐르는 속도는 나이와 같다고들 합니다. 맞나요? 여기 계신 성도 여러분들 중에는 “나는 이 땅에서 천년 만년 살 것이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혹시 계십니까? 아니면 문제와 걱정, 슬픔과 고통이 끊임 없이 계속 이어지는 삶인데도 불구하고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사시길 원하시는 분 계십니까?

무려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했었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는데 놀랍게 사용되어졌던 하나님의 종, 능력과 기적의 종 모세도 시편 90편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시편 90:10

이처럼 우리의 수명은 칠십 년, 힘이 있으면 팔십 년이지만, 우리 인생은 고생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인생은 화살이 날아가듯 빨리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들 중에 혹시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사실 수 있는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혹시 죽음은 지금의 나와는 동떨어져 있는 머나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시진 않습니까? 약 4:14절에 보면,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야고보서 4:14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인생이 우리 인생입니다. 때문에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어도, 세상을 떠나는 데는 순서가 없습니다. 언제 무슨 일이 나에게 다름 사람들에게 일어날 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음이란 문제를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기 계신 모든 분들께서는 이 땅에서도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 나라의 은혜와 평강 그리고 기쁨과 행복을 모두 누리고 나누시면서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믿음으로 확신하며 할렐루야를 힘차게 부르면서 떠날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죽음을 바라보면서 우리 성도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모든 인생은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서두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모든 인생의 여정은 반드시 끝이 있기 마련인데, 그 종착역은 바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단 한번의 인생이 주어지는 것이고, 그 인생은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던 속히 지나가게 되어 있으며, 결국엔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하거나 약한 것을 떠나서, 잘났거나 못난 것을 떠나서, 그리고 가난하거나 부한 것을 떠나서 모든 인생은 공평하게 단 한번만 주어지고 죽음을 피해가는 인생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 어떤 사람들은 마치 인생이 영원한 것인 양 이 땅에서의 삶에 연연하며 그것만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만은 그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듯 착각하고 죽음을 피하기 위해 어리석은 노력들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막상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게 되면 그들은 심각한 절망감과 슬픔, 그리고 당황감, 두려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많고 학식이 풍부하고 거대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찾아오는 죽음을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은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생명을 주관하시는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죽음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죽음을 바라보며 인생의 끝이 반드시 있음을 알고, 죽음을 이길 수 없는 우리 인간의 한계를 깨달아야 합니다. 평생에 어떤 왕들하고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 그리고 부와 영광을 누렸던 솔로몬 왕도 전도서 7:2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전도서 7:2

역사상 최상의 부귀영화를 누린 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그의 삶을 결론지었습니다. 솔로몬 그 또한 역시 모든 수고를 허무하게 만드는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쾌락에 빠져 사는 것보다 인생의 유한한 본질과 그 결국에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끝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잠시 잠깐 보이다가 사라질 안개와 같은 인생을 더 이상 목적으로 삼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죽음을 깨닫는 것이 곧 인생을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주권자가 바로 하나님이심을 발견하고 그분의 구원을 사모하며 의지하게 하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저와 여러분도 내 인생에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미 매일 죽음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왜 인간이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는지 그 원인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본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손수 빚으시고 영을 코에 불어 넣어주셔서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위임 받은 권위로 다스림의 축복,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기에 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축복, 그리고 영생할 수 있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순종과 사랑의 여부를 선한 뜻으로 선악과를 통해 시험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6-17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할 수도 있었고 따를 수도 있었던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은 불순종 때문에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를 통해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5:12절에 보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죄악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으며, 따라서 죽음이라는 형벌도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성을 갖고 죄인의 형상으로 태어나 죄를 짓고, 죄의 형벌로 죽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6:23에서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이 오는 근본적인 원인은 물질이나, 지식이나, 건강의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죄의 문제로 말미암은 죄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죄의 값으로 온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얘기할 때 일반적으로 육체적인 죽음만을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엔 세 가지의 죽음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이란 분리를 의미합니다.

첫 번째로, 영적 죽음입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에베소서 2:1, 4:18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알고,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살도록 창조되었으나 죄로 인해 그 마음의 눈이 어두워져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영적인 죽음이란 곧 영혼이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이 범죄했을 때, 하나님과 교제가 끊겨서 사람에게 영적인 죽음이 온 것입니다. 육신은 살아 있으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들, 곧 하나님과 관계없이 사는 사람들 모두가 바로 이러한 영적 죽음에 이른 자들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오늘 본문 서두에서 말씀하고 있는 육체적 죽음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창세기 3:19절에 보면,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창세기 3:19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인간은 저주 아래 놓여 영생할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거나,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기도 합니다.

그 때에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전도서 12:7

육체적 죽음이란 인간의 영혼과 육체가 분리 되는 것 즉 영혼이 떠난 육체가 심장이 멎고 숨이 끊어지며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 번째로, 영원한 죽음입니다.

오늘 본문후반 절에 보면,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27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 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관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관문으로 들어가기 앞서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10

우리 모든 인생들은 언제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존재들이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 이후에는 이 땅에서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하고도 공의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는 영원한 형벌과 멸망에 이르는 심판과 이와 정반대로 영원한 생명과 영광에 이르는 심판이 있습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0:11-15

12절에서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보좌 앞에 섰다고 말씀한 것처럼, 세상 끝 날이 이르면 성도나 불신자나 모두 다 부활하여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는 생명책과 죽은 자들의 이 땅에서 삶의 행위에 대해 전부 기록된 행위의 책들이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13절~15절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게 되는데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다 영원한 죽음과 지옥형벌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옥형벌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마가복음 9:47-48

구더기도 결코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지옥에 들어가는 자가 받을 형벌은 결코 끝이 없으며 또한 영원토록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기 계신 분들 중에 혹시 이전에 화상을 입어보신 적 있으십니까?살짝만 데어도 너무나 쓰라리고 고통스러운데, 그보다 비교할 수 없는 지옥불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고통이기에 몸서리 칠 정도로 생각 조차 하고 싶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처럼 영원한 죽음이란 곧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어 고통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우리 모두 죄 아래 있다고 했으며,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죄의 대가는 죽음이며, 바로 영적 죽음, 육체적 죽음, 영원한 죽음을 이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7절만 본다면, 모두가 죄인이고 죽을 수 밖에 없고 영원히 형벌 받을 수 밖에 없기에, 아무런 미래도 희망도 없는 두려움에 떠는 인생, 슬퍼하는 인생 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다음 절 28절 말씀을 보십시오. 다 함께 봉독하실까요?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할렐루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려 많은 사람의 죄를 사해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했고, 그 때는 죄를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기 위해 오신다고 했습니다. 믿으십니까?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히브리서 9:12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단번의 속죄야말로 모든 인류의 죄를 한꺼번에 해결하신 놀라운 능력의 속죄요,영원한 속죄인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3:24-25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고 그분께 진정으로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간구하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사실 때문에 우리 죄를 간과하시고 죄인이지만 의인으로 선포하신다는 것입니다. 또 여전히 죄를 짓고 살아가지만 의인으로 간주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좀 달리 표현하면,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을지라도 주님의 이름을 힘입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선포해 주신다는 것 입니다. 최고의 주권과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에 어느 누구도 다시 고소할 수 없고 변경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믿으십니까?

우리의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시고 우리를 의인의 반열에 서게 하셨기에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멸망 대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 3:16-18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며,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그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고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구원을 받은 것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죄인이었고 원수였던 자들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를  창세 전부터 택하신 은혜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바라보며 그것이 모든 것의 끝이라 생각하여 극도의 두려움과 슬픔에 빠져듭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죽음을 바라보며 그

너머에 있는 영원하고 복된 삶을 소망하며, 죽음 앞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찬양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빌립보서 3:20-21

우리의 시민권은 오직 하늘에 있음을 믿으십니까? 주님께서 하늘로부터 다시 오시는 때에 우리의 죽을 몸을 변화시키셔서, 그분의 영광스런 몸과 같이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며 우리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더 이상 슬픔도, 아픔도 죽음도 없는 천국에서 영생과 복 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세상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대하며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