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말초신경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양쪽 손과 발이 저리고 화끈거리며 따끔따끔한 증상이 계속 되고 있다. 심지어 발바닥 속으로 벌레가 꿈틀 기어가는 듯한 느낌도 든다. 아마도 뇌성마비 장애로 인해 근육이 항상 긴장된 상태에서 장시간 책을 읽거나 타이핑을  하는 등 같은 자세를 오래 유지하다 보니 신경이  압박되어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 하기야 지난 50여년 동안 정상적이지 않는 몸을 계속 혹사시켰으니 고장날만도 하다. 낮에도 괴롭지만 밤에는 증상이 더 심해져 잠을 쉽게 이룰 수 없다. 발바닥에 뜨거운 열감이 느껴져 벽에 대고 있거나 선풍기 바람을 쐬어야 한다. 잠을 잘 못 자니 몸도 항상 피곤하고 신경이 날카로워져 자꾸 짜증이 나곤 한다.

그래서 얼마전 신경과 병원에 가서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고 있다. 약을 먹으니 증상이 좀 완화되긴 했는데 신경 계통의 약이 배변에 영향을 줘 이번엔 화장실에 가는 것이 어렵다. 가뜩이나 고질병인 어깨근육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말초신경염과 그 부작용까지 겹쳐 오니 몸도 괴롭거니와 마음까지 자꾸 우울해진다. 나는 육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왔는데 노력한 결과가 겨우 이것인가 하며 회의감이 들고 서글퍼질 때가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해왔듯이 여기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오묘한 뜻과 섭리가 있을 줄 믿고 나의 고통을 통해 그 뜻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다시 기운을 내 앞으로 계속 나아가고자 한다.

내가 간증설교할 때 자주 인용하는 말씀, 고린도후서 12:7-10에 기록된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라는 구절에서 “온전하여 진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텔레오’라는 동사이다. 이 단어는 온전하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루다’(눅12:50), ‘마치다'(행20:24, 계11:7; 15:8), ‘마무리하다'(히12:2) 등의 뜻도 있다. 따라서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 진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약함이 강함으로 바뀌어진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주의 능력이 우리의 약함에서 비로소 ‘마치게 된다’ 혹은 ‘마무리된다'”는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연약한 우리가 갑자기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는 약하고 부족하지만 그 연약함과 부족함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온 세상에 드러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바울은 자신을 그토록 모질게 괴롭혀온 ‘육체의 가시’에 결코 낙심하거나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을 사랑하고 자랑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순교할 때까지 오직 그리스도를 위하여 겪어야 했던 모든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기뻐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강해진다는 강력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약함이 변하여 강함이 되는 것이 아니다. 십자가가 변하여 세상 정사와 권세와 능력이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약함은 벗어나야 할 대상이나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간직하며 지켜야 할 주체이다. 약함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다. 약함으로 인해 비로소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영적 세계로 들어갈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 역시 연약한 나의 운명을 사랑한다. 이 사순절 기간, 고난주간에 십자가의 참 의미, 약함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깊이 묵상하며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