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중풍병자들>

민환기 목사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 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마가복음 2:1-12

할렐루야, 먼저 좋은친구교회를 세우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리고 이시간 좋은친구교회에서 드려지는 처음 예배 가운데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영적인 중풍병자들 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마가복음 복음 2장 1 절로 12절 말씀을 갖고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말씀을 나누기 전에 이전에 아내랑 함께 보았던 영화 ‘십억’이라는 내용에 대해서 함께 나눌까 합니다. 영화의 내용은 한 무인도에서 생존 게임을 벌이는 내용이었습니다. 게임에서 경과가 좋지 않아 탈락하게 되었을 때 주어지는 벌칙은 바로 죽음이 얻습니다.

결국 맨 마지막에 남은 생존자에게 10억 이라는 상금이 주워졌고 그는 마침내 엄청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게임에 함께한 이들 모두가 촬영 감독의 고의적인 소집으로 참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 같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한날 한시 그들은 우연치 않게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서 한 여인이 괴한에게 습격을 당하였습니다. 그들 모두 현장에 있었고 그 상황을 목격하였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구해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녀는 결국 죽음을 맞이 하게 되었지요.

놀라운 사실은 죽임을 당한 그녀의 남편이 바로 촬영 감독이었던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모습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무엇이 그리 바쁜지 주위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개개인이 정해 놓은 목적지를 향해 무작정 나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우리 또한 살려 달라고 도움을 절실히 호소하는 누군가의 요청을 외면한 채 영화 속의 구경꾼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은 영혼이 마비되어 점점 죽어가는 우리 주위에 있는 영적인 중풍병자 들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첫 번째로 우리 주위에는 영적인 증풍병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에 보면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마가복음 2:3

중풍병은 내출혈로 몸의 일부분이나 전신을 움직일 수 없게 되는 증상을 말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이처럼 중풍으로 거동을 제대로 못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도움 없인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또한 우리 주위에는 영적으로 중풍을 앓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믿음을 갖기가 어려워 고난을 만나게 되면 스스로 믿음을 지키기가 어려워서 넘어지거나 쓰러지고 맙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까지 나왔지만 말씀으로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 말씀을 받았지만 내 안에 있는 십자가에 진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술로 증거하지 못하거나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영적으로 중풍에 걸린 사람들입니다.

또한 여러분 주위에 가족이나 친구들 그리고 이웃들 중에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지 못하여 영혼이 마비되어 점점 죽어가는 중풍병자들이 있지는 않나요.

여러분 누가 중풍에 걸렸습니까.

혹시 나는 아닙니까
혹시 내 사랑하는 가족들은 아닙니까
혹시 친구들이나 이웃들은 아닙니까

둘째로 중풍 병자들은 우리의 헌신적인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3절부터 4절 말씀에 보면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가지고 예수께로 올 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 내립니다.

본문에 나타난 4명의 친구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중풍병자 친구를 데리고 예수님께 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어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랑하는 친구를 들것에 눕힌 후에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내고 예수님 계신 곳으로 그 친구를 달아 내렸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친구들의 헌신적인 도움의 손길에 감동 하셔서 중풍병에 걸린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중풍병자 한 사람을 위해 4명의 친구들이 헌신적으로 봉사한 것처럼 한 영혼이 주님께로 나오기까지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마음을 가신 사람들의 헌신이 요구됩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주님의 사랑을 실천 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5절 말씀에 보면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지라” 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병자를 고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신 거죠.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매어 가시고 온 겁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나의 도움에는 비록 한계가 있지만 주님이라면 과연 주님이라면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는 그 어떤 문제도 능히 해결해 주실것을 믿었던 거지요. 이것이 이웃을 향한 사랑의 첫발점 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주님이라면, 주님만이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다 믿는 것이죠. 우리는 늘 넘어지고 쓰러져서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살 수밖에 없는 영적인 중풍 병자들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영혼이 마비되어 죽어가는 중풍병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에 걸린 그 환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바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이지요. 오늘날도 믿음으로 주님께서는 역사하시고 응답하시고 축복하시고 질병도 치료 하십니다. 믿음을 가지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으시길 또한 그 은혜로 치료함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이 시간 확인코자 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에게 주님을 향한 과연 온전한 믿음이 있는가 입니다. 그리고 내 믿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헌신적인 사랑을 품어서 그분을 향한 온전한 믿음을 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있었던 실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바닷가를 거닐고 있던 어떤 사람이 로프에 걸려 그만 바다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헤엄을 칠 수 없었던 그는 있는 힘을 다해서 구조 요청을 했습니다. 그를 구할수 있는 사람은 가까이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젊은이 한 사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입니까, 그 젊은이는 생사의 기로에서 간절히 도움을 청하고 있는 그 사람을 외면한 채 일광욕만을 즐겼고 바다에 빠진 사람은 결국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익사자의 가족들은 그처럼 무심했던 그의 젊은이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헌법상 그 젊은이에게는 법적 책임이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났습니다. 비록 그가 법적으로는 죄가 없는 사람일 지는 몰라도 사랑이 뭔지 모르는 양심 없는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무관심은 죄입니다. 여러분 혹시 가족이나 이웃에게 무관심 하지는 않나요. 여러분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재물에 있습니까 아니면 명예와 출세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서는 영혼을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하여 죄를 묻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후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만족에 빠져 잃어버린 영혼에게 무관심했던 거에 대해서 물으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후회할 일이란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온전히 믿지 않은 것 그리고 그 믿음으로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그 분의 진정한 사랑을 전하지 않는 것으로 판가름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는 일은 많아도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과 같은 주님을 향한 절실한 구원의 믿음이 우리에게 있을때 비로서 그분의 은혜 안에서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해결되고 모든 질병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깨끗이 나음을 얻을 뿐만 아니라 무관심과 자기만족에서 벗어나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킴볼은 교회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가 가르치던 한 아이가 교회에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사람들에게 물어서 그 아이가 일하고 있는 구두방으로 찾아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 그 아이는 생활이 어려워서 학교를 다니기가 어려웠고 어려서부터 구두수선으로 생활비를 벌어야 되는 형편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킴볼은 그를 기억하고 그가 일하는 곳까지 찾아와 주었습니다. 킴볼은 그 아이의 손을 붙잡고 그를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다시 교회를 찾아 왔고 훗날 목사가 되어 미국을 변화시킨 대 부흥사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가 바로 드와이트 레이만 무디 입니다.

한 아이에 대한 교사의 작은 관심, 그 교사의 기도가 또 다른 잃어버린 영혼과 상처받은 심령들을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섬긴 헌신적인 종을 낳은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한복음 15:12-14

이러한 크나큰 사랑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죠. 죄인되었던 우리에게 말입니다. 로마서 5장 8절 말씀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아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 주셨습니다. 심지어 이제 주님은 우리를 친구로 부르시길 원하십니다. 바로 그분의 십자가 사랑을 바라는 그 분의 진정한 친구로 말이죠.

제가 은혜받는 찬양 중에 하나가 소리엘 찬양사역자 분들이 부른 그날이란 찬양입니다. 제가 가사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 죽어가는 나의 백성들
절망과 굶주림에 갇힌 저들은 내 마음의 오랜 슬픔
고통의 멍에에 매여 울고 있는 나의 자녀들
나는 이제 일어나 저들의 멍에를 꺾고 눈물 씻기길 원하니
누가 내게 부르짖어 저들을 구원케 할까
누가 나를 위해 가서 나의 사랑을 전할까
나는 이제 보기 원하네 나의 자녀를 사랑하는 그 날
기쁜 찬송 소리 하늘을
웃음소리 온 땅 가득하네

좋은친구교회가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참 생명과 구원을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음으로 영적 육적 질병에서 구원받고 치유받는 은혜를 누리는 기회가 되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그분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주님의 진정한 친구가 되는 교회이자 주님 안에서 서로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는 그 또한 모든 이들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