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한국 사회와 미국의 한인교포 사회에서도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론적으로는 장애인도 우리와 똑같은 인격체이며 권리와 존엄성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 장애인과의 공존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직접 결부될 때는 심각한 거부반응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그들의 자녀들이 장애아동과 한 클래스에서 공부할 때 “애들 교육상 안 좋다”고 주장한다거나 장애인 시설이 주거지역에 들어올 때 “집값 떨어진다”고 아우성치는 것이 그런 좋은 예입니다. 이와 같이 총론과 각론 사이의 심각한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고, 장애인과 일반인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공동선’을 창출하는 것이 21세기 장애인 운동의 과제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을 포용하는 문제는 환경적 여건이나 방법론상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회 구성원 각자의 인식 전환과 의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때로는 자기 부정과 희생이 요구되기도 합니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너무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거창한 것들을 하려 하지 말고, 장애인을 만나면 그저 친근하게 다가가 말을 걸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면 됩니다. 혹 말실수를 하면 어떡하나, 상처나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고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궁금한 것들 모두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저 같은 뇌성마비 장애인이 하는 말은 첨엔 알아듣기 힘들어도 자꾸 듣다 보면 익숙해질 것입니다. 이렇게 가볍게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장애인들의 닫혀진 마음을 열 수 있으며 서로간의 인식의 폭이 넓어질테니까요.

아울러 장애인을 너무 일반인과 똑같이 생각한 나머지 그들의 장애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옳지 않습니다. 장애인은 장애인으로 봐야 합니다. 일반인들과 똑같이 대한다고 하여 장애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평생 지니고 살아가야 할 장애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일단 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인정해주고, 동등한 인격체 대 인격체로서의 대화와 교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장애인을 너무 일반인의 시각에서 대한다면 서로 기대에 못 미치는 일이 발생할 것이고 그러면 서로간의 관계가 힘들어집니다. 장애인을 무조건 동정하고 도움을 주려고 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일반인의 기준에 맞게 대하는 것도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잘했을 땐 칭찬과 격려를 하며 잘못할 땐 충고를 해주면 됩니다.

성경 요한복음 9장에서 예수님은 한 시각장애인의 장애가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그 자신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기 위함이다’라고 대답하시며 진흙을 발라 그의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구절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장애에서 고침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많은 경우 하나님의 일은 육체적 회복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비록 장애를 지닌 채 평생을 살아도, 여기에는 그분만이 아시는 특별한 계획과 섭리가 있음을 깨닫고 이 장애를 지닌 사람의 일생을 통해 세상이 변하고 주변 사람들이 행복해하며 갈등과 반목, 불신으로 가득 찬 사회가 신뢰와 통합, 그리고 서로 간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데 방해가 되는 인식의 장벽, 태도의 장벽, 의사소통의 장벽, 물리적 환경의 장벽 등은 끊임없이 과감하게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부디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존귀하게 지음 받은 사람들 모두가 그들의 육체적, 환경적 조건으로 인해 차별이나 편견, 소외를 느끼지 않고 창조주께서 부여해주신 사랑과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자신의 이상과 꿈을 실현하며 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직접 실천해나가는 우리 미주한인동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는 결코 개인적인 수치나 불행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의 공동의 노력으로 극복해 내야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회적인 질병과 부조리를 치유할 수 있는,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은혜요, 달란트인 것입니다.

글 | 이준수 목사 (남가주밀알선교단, 영성문화사역팀장)